오늘 복음은 (루카 9,28-36)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타볼산에서 기도하시는 동안 거룩하게 변모하신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상의 수난과 죽음의 결과인 부활을 미리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모든 공관복음에서 기록되고 있으며, (마르9,2-10 ; 마태 17,1-9) 예수님 부활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사건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단순히 고통과 죽음만을 향해 가는 여정이 아니라 부활의 기쁨과 영광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임을 의미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지상에서 드러난 하늘나라의 모습입니다.
이 사건에서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하는 모습으로 발현한 엘리야와 모세는 구약의 대표적인 예언자입니다. 그리고 이들 예언자들은 한때 예수님의 신원(身元)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받아들여집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고 제자들에게 물으셨을 때 그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엘리야라고 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마태 16,14) 또한 신명기 18장 15절은 “주 너희 하느님께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하여 제2의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실제 마태오 복음이 헤로데의 유아학살, 예수님 가족의 이집트로의 피신과 탈출을 기록한 것은 예수님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2의 모세로 자리매김하기 위하여 삽입한 것이라고 합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신명기 18,15의 말씀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거룩하게 변모하실 때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고 구름속에서 하느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또한 엘리야와 모세는 육신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엘리야는 열왕기 하권 제2장에서 승천하고 엘리사가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예언자가 됩니다. 또한 전통적인 유다교의 가르침에서 모세는 육신이 땅에 존재하지 아니하고 승천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모세의 죽음을 묘사한 신명기의 마지막장에서 ‘오늘날까지 아무도 그가 묻힌 곳을 알지 못한다.’ (신명 34,6)는 구절은 모세의 승천을 암시하는 대목이라 하겠습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그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고 말한 것은 예수님이 천상적 형상으로 변했음을 뜻합니다. 이는 또한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면 천상의 몸으로 부활할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 사건은 제자들이 종말 때 누릴 구원의 은총을 앞당겨 보여 주는 사건임과 동시에 그러한 은총이 언젠가 반드시 일어날 일임을 증거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하셨듯이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도 영광스럽게 변화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변모는 외적 변화에 머무르지 않으며, 우리의 내적변화로 연결됩니다. 사도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내적 변화를 촉구합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로마서12,2) 이는 우리가 현세의 삶의 형태가 아니라 다가올 시대의 삶의 형태를 따라야 함을 나타내며,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가야 함을 나타냅니다. (2코린 3,18 참조).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고귀한 존재입니다. (창세 1,26)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또 바뀌어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 이것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일이자, 부활 때 충만하게 누릴 구원의 은총을 미리 맛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변모 사건은 이렇게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로 엮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모습으로 창조된 존재이고(과거),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현재), 내세에 부활함으로써 이 변화가 완성됩니다(미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바뀐다는 것은 이룰 수 없는 헛된 소망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계명이며 꼭 이루어지리라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이 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2025. 3. 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