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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와 공동선 Investment and the Common Good
Christoper Blum  
 

 

회칙 ‘100주년 선포된 20년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회칙이 적절하게 수용되기보다는 이에 대한 유보 조치만이 행해지고 있다. 위대한 회칙의 결론 부분에서 교황성하께서는 교회의 사회교리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행동의 지침이요 동기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20년간 회칙에 대한 토론은 거의 이론에만 머물러왔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회칙 ‘100주년에서 자유시장이라는 이름을 부정적으로 보시지 않으셨는가?  회칙은 그가 지닌 경제 자유주의의 증표로 보아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흥미있는 것이며 아마도 긴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질문들이 회칙을 뒤의 이음부분에서 중단시키는 것은 아니다. 서방에 대해 이야기하실 교황성하께서는 우리의 소비주의 습관을 바꿀 것과 구체적 행동으로 진정한 인간의 선을 추구할 것을 주창하셨다. 그는 또한 이는 기존의 생활방식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생활 방식을 바꾸어야 할까?  교황 성하의 가장 뛰어난 스승이셨던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 , 교황교서 주님의 ”(Dies Domini), 그리고 교황권고 아메리카 교회”(Ecclesia in America) 같은 문서에서 그의 메시지를 가다듬고 전하신 있다. 그러나 아직 질문이나 토론, 행동의 필요성이 존재한다. 특히, 교황성하의 관심의제 별반 주목을 받지 못한 분야는 투자라는 편치않은 주제이다. 우리의 주식포트폴리오 문제에 부닥치면 우리는 “Mater si, Magistra no” (어머니는 yes, 교사는 no)라는 합창에 동참하고자 하는 준비가 되어있다.

 

21세기의 금융분야는 엄청나게 복잡하다. 지난 세기에 금본위제를 포기한 ,  , 다른 말로 화폐는 없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투자에 대한 도덕적 성실성을 평가할 있을까?  평가는 어렵겠지만 상대적 원칙은 분명하다. 논문의 목적은 이에 관한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삼단논법의 두가지 전제로 귀결된다. 토마스 성인은 공동선이라는 마지막 목표를 지향하지 않는 , 실천적 이유와 관련해서  어느 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우리에게 가르쳤다. 교황께서는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결정할 , 도덕적이며 문화적 선택을 우선시해야 한다 덧붙히셨다.  이러한 두가지 전제에서 우리는 우리의 투자가 굳건한 입장을 취하기 위해서, 도덕적으로 흠잡히지 않게하기 위해서는,  투자는 공동선을 지향해야한다. 우리는 결론의 결말을 끌어내기 전에 먼저 두가지 전제를 자리에 두어야 한다.

 

공동선이라는 용어는 자주 사용되지만 이해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이는 대단히 깊은 신학적인 주제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공동선은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우리의 관심사로서 가톨릭 전통은 매우 명료하다. 우리는 우선 토마스 성인이 우리의 도덕적 생활의 근본으로서 이야기한 공동선은 물질적이거나 경제적 지평을 넘어서 존재한다고 깨달아야 한다. 참으로 공동선을 적절히 이해한다면, 우리의 목표로서의 재화의 배분과 추구에서 부는 그리 역할을 하지 못한다. ()보다 위에 저넘어에 건강, 도덕적 덕성, 우정, 사색직이며 신학적인 ,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느님이 존재한다. 보다 진실된 인간은 선이며, 이는 공동선의 보다 중요한 부분이 된다.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우리가 보다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 아니다. 잘못된 것은 존재보다 소유 더욱 집착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는 보다 많은 존재가 아니고 보다 많은 소유에 집착하고 쾌락을 자체로서 목적으로 삼는 삶의 방식이다. 이러한 소유와 존재에 대한 구분은 소크라테스 시대 만큼 오래된 것이며 인간의 외부에 있는 재화와 인간 내부에 있는 재화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 후자, 존재의 재화는 전자, 소유의 재화를 능가한다. 존재의 재화는 보다 완벽하게 나눌 있고 또한 이들을 공동선의 보다 나은 부분을 형성하게 하는 것이다. , 자동차, 구두, 포도주는 불완전하게 나누워 뿐이다. 그러나 레오 13세께서 말씀하셨듯이 선은 인간의 공통된 유산이며 가장 비천한 사람이나 가장 힘센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같이 가질 있는 것이다.

 

토마스 성인은 공동선은 공동의 행복더하여 정의와 평화의 공동선이라고 말하였다. 행복은 선에 따라 행하는 영혼의 행동이며, 공동선은 공동체의 선의 실천이다. 정의는 인간에게 그들이 남에게 갚아야 것이 무엇이냐를 가리키며, 이는 이성적인 피조물로서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뜻하는것이기도 하다. 평화는 질서의 온존이며 공동선은 사회가 이성적 피조물인 인간에게 존엄성을 지키기 위하여 행해야 하나의 질서를 뜻한다.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인간의 권리의 시작과  결합이란 결국 신앙의 자유이며, 또한 인간으로서의 초월적 존엄성에 따른 사람의 믿음의 진실속에서 사는 권리로 이해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토마스 성인의 가르침, 실천적 이유에서 마지막 목적으로서 공동선을 지향하지 않는 , 우리가 확고하게 주장할 있는 것은 없다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대체로 답은 우리가 매번 결정을 내릴 때마다 궁극적인 목적으로서 공동선을 떠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결정할 , 우리 이웃의 물질적, 육체적, 도덕적이며 영적인 행복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면 이러한 이론을 어떻게 투자에 적용할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우리는 투자의 본질을 알아야 하며 또한 투자가 전적으로 선인지 알아야 한다. 투자는 자본의 공급이며, 자본이란 우리의 물질적 욕구를 보다 효과적으로 충족하기 위한 인간 노동에 필요한 자원을 뜻한다. 우리가 투자할 , 우리는 잉여의 부를 자본으로 전환시킨다. 이러한 생산적 저축은 자체로서 인간의 물질적 진보에 필요한 부분이다. 엄청난 물질적 성장을 이룩한 12세기에 투자는 잉여자원을 이용하여 새로운 땅을 개간하며 보다 창고를 짓거나, 울타리를 정원을 만드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현재에 투자는 일반적으로 우리의 잉여의 부를 공동 주식회사에 투자하는 형태로 행해진다. 이는 자본의 소유가 주식의 일부를 나눠 갖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투자가 보다 많은 자본을 공여하는 , 투자는 선한 것이다. 레오13세께서는 회칙 새로운 사태에서 노동과 자본은 서로를 완벽하게 필요로 한다. 노동없이 자본은 일할 없으며, 자본없이 노동은 아무 것도 없다.” 말씀하셨다.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자본 공급의 중요성에 관하여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면서 투자는 선이라고 확고히 말씀하셨다. 자본은 노동이 중심인 생산시스템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효과적으로,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갖춘 방법으로 일할 있게 하는 수단이라고 하셨다.  그는 경제체제에서 창의성과 기업가적 능력은 주의깊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나의 발전이라고 말씀하시기까지 하셨다.

 

이러한 원칙들과 회칙 100주년을 우리 앞에 놓고 , 투자의 긍정적인 면을 확인할 있다.  우리가 잉여의 부를 우리의 쾌락을 위해 소비하기보다 생산적인 자본에 투자하기로  결정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이웃 사람들에게 그들의 재능과 선을 일을 통해 발전시킬 기회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주식시장은 개인들이 그들의 잉여의 부를 손쉽게 효과적으로 생산적 자본으로 전환시키는 수단이다. 투자로부터 얻어지는이익은 우리의 부를 사회발전에 공헌시키기로 우리의 당초 결정에서 나온 합법적인 결과이다. 투자에 대한 찬사를 조금 늘어놓도록 하자. 미국인들은 그들의 돈을 사회의 장기적인 발전과는 하등 관계없는 덧없는 쾌락과 헛된 놀이에 써버리는 악습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적게 소비하고 더많이 투자한다면 우리는 공동선에 대한 보다 관심과 개인적인 쾌락에 대한 보다 적은 소비를 통하여 우리의 도덕적 생활을 더욱 증진할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가난한 사람에게 기부한다든지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을 대접함으로써 관대함이라는 선을 행할 수도 있다. 투자가 단순한 개인적인 소비보다 긍정적인 특성을 갖는다는 것은 여전히 진실이다.

 

우리의 투자가 베네딕트 16세께서 이른바 완전한 인간의 개발” (진리안의 사랑)이라는 것에 대하여 종국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우리의 투자를 손상시키고 망치는 명백한 투자의 폐단에 대하여 고찰할 필요도 있다. 이러한 폐단에는 두가지 범주가 있다: 하나는 주식시장의 부적절한 이용이며 또하나는 투자의 잘못된 선택이다.

 

첫번째 것에 관하여 교황성하께서는 다음의 명제들이 납득이 된다는 전제에서 원칙을 설정하셨다.

 

 공업이든 농업이든, 생산수단의 소유가 유용하게 운용된다면 이는 정당하고            합법적이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소유가 제대로 활용되지 않거나 노동기회나 사회의 부의 확대라는 결과와 무관하게 얻어지는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노동기회나 사회의 부를 저해한다면 이는 비합법적인 투자라고 해야 것이다. 또한 노동기회나 사회의 부의 확대를 억제하고 노동자에 대한 사악한 착취, 투기, 노동자간의 연대를 단절시키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공동주식회사의 지분을 소유한다는 것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이다. 귀절이 우리가 양심의 고찰에 대하여 생각해야 한다고 일깨워주고 있음은 명백하다. 귀절은 인간의 개발에 유용하지 않은 수단을 통한 이익추구의 폐단에 대하여 명백히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흔한 실패의 예는 주식시장을 외관을 아름답게 꾸민 카지노 취급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로 돈을 영리하게 운용하여 이익을 얻는다면 우리는 투기를 남용하는 것이 된다. 주식시장의 목표는 개인이 자본의 축적에 공헌하고 이를 통해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므로 투기는 폐단이 된다. 지난 십년간 금융 스캔들이나 금융위기는 많은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을 습관적으로 남용한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시점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어떤 형태의 투자가 투자로서의 가치가 있는가를 결정하는 데는 금융산업에서의 일반적인 사업거래에 대한 도덕적 고찰이다.

 

두번째 폐단은 투자할 기업을 어떻게 사려깊게 선정할 것이가에 관련된 것이다. 이에 관하여 교황성하께서 원칙을 제시하셨다. “다른 어떤 기업보다 기업을 선택한다는 것은 언제나 도덕적이며 문화적인 선택이다.”  그가 염두에 것은 진실, 아름다움, 선함, 그리고 공동의 발전을 위한 타인과의 친교가 소비자의 선택과 저축 투자를 결정하는 요인이 되는 생활 방식을 만들어야 하는 필요성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투자대상을 결정하는 것은 제대로 이해되는 공동선의 목적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투자결정 시에 단지 이익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제시하셨듯이 우리가 투자하는 기업의  종업원의 복지, 소비자 태도와 생활방식, 환경문제, 인류생태학의 도덕적 조건과 같은 여러가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복자 요한 바오로2세는 생명의 복음에서 보다 집요하게 같은 관점을 피력하셨다. “한마디로 우리는 모두가 새로운 생활방식을 택하도록 하는 용기를 요구하는 문화적 변화가 필요합니다. 문화적 변화는 개인적 차원에서, 또는 가족이나 사회 그리고 국제적 차원에서 올바른 가치관에서 우러나오는 실질적 선택을 뜻합니다.  올바른 가치란 소유보다는 존재, 물질보다는 사람을 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실질적 선택에서의 변화가 우리의 투자결정의 변화를 포함한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있을까요?

 

복자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에 대하여 실질적인 결과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우리의 투자방식에 있어 우리는 먼저 주식시장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투자를 카지노의 슬롯 머신, 또는 비인간적이며 기계적인 이익의 원천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대신 우리는 시장의 진정성있는 목적, 개인이 생산적인 자본에 대한 사회의 합법적인 요구에 부응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잉여의 부를 가장 생산적으로 이를 이용할 있는 합당한 상대에게 투자한다면 우리는 투자를 단기 도박보다는 특정기업과의 장기적인 유대관계로 생각하는 것이 된다. 또한 우리는 대다수의 뮤츄얼 펀드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게 것이다. 이러한 펀드의 목적은 투자결정권을 우리의 손에서 빼앗아서 전문가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공동선을 추구하는 우리의 권리를 포기한다면 우리는 근본적인 책임을 포기하는 중대한 실수를 하게 된다. 우리가 뮤츄얼 펀드를 이용한다면 우리는 투자에 대한 합당한 이해에 따라 운용되는 펀드를 선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특정한 투자에 대한 결정에 있어서 전보다 더욱 많은 연구와 주의를 기울여야 함이 명백해졌다. 교황성하께서는 이러한 결정은 도덕적이며 문화적 결정이라고 주장하신다. 그는 또한 우리로 하여금 생활문화를 재정립하고, 이에 따라 우리사회의 공동선을 재정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활동이 생활의 문화를 파괴하는 기업의 소유주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많은 가톨릭 신자이면서 투자자들은 포르노나 낙태도구를 생산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신중하게 생각하고 피해야 한다. 또한 보다 많은 자제와 분별이 요구된다.  종업원에게 대우하고 창조의 선량한 관리인으로 활동하면서도 인간의 진정한욕구를 충족함으로써 적절한 이익을 올리는 기업에 투자하는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러한 기업을 발견하고 이에 투자하며 그들의 일에 동참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과업이다.

 

기사는 원래 StAR(The St. Austin Review)지의 2011 9/10 판에 게재된 것입니다.

 

크리스토퍼 O. 블럼 박사(Dr. Christopher O. Blum) 햄프셔 메리맥에 소재한 토마스 모어 문과대학의 특별연구원(Fellow) 이면서 학장을 역임하고 있다. 블럼 박사의 글은 서구의 문화, 현대유럽의 지성의 역사 주로 개혁과 계몽 관한 다양한 주제, 그리고 철학의 몇가지 문제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는 다음의 프랑스어 책을 번역한 두권의 책이 있다.

 

계몽의 비평: 프랑스의 반혁명 전통과 국가의 참되며 유일한 부에 관한 글들: 가족과 경제, 사회에 관한 논문들

 

 

 

April 27, 2012

by Christopher Blum

It is now twenty years since the publication of Centesimus Annus, yet only halting steps have been made towards an adequate reception of it. In his concluding remarks to that great encyclical, the Holy Father warned that the Church’s social teaching was no mere theory, “but above all else a basis and a motivation for action.” For two decades, however, discussions about the encyclical have remained largely theoretical. Did Blessed John Paul II baptize the free market in Centesimus? Should the encyclical be seen as evidence of his economic liberalism? Questions such as these are interesting, and per- haps even pressing, but they do not cut the document at the joints. When speaking to the West, the Holy Father admonished us to change our habits of consumerism and to seek the authentic human good through concrete actions. He even told us that this “may mean making important changes in established life-styles”.

How ought we to change the way we live? Here John Paul II was his own best commentator, refining and extending his message in documents such as Evangelium Vitae, Dies Domini, and Ecclesia in America. Yet there is still more need for inquiry, discussion, and action. In particular, one area of the Holy Father’s concern that has received scant attention is the uncomfortable issue of investment. When it comes to our stock portfolios, we are all too ready to join the chorus of Mater si, Magistra no.

The financial world of the twenty-first century is daunting in its complexity. Since abandoning the gold standard in the last century, wealth, or rather money, has taken seemingly limitless forms. Amidst such confusion, how are we to evaluate the moral integrity of our investments? While the application may be difficult, the relevant principles are clear enough. The object of this essay is to explore these truths. In the end, they reduce to the two premises of a syllogism. “Nothing stands firm”, St. Thomas teaches us, “with regard to the practical reason, unless it be directed to the last end which is the common good.” “The decision to invest in one place rather than another,” adds the Holy Father, “is always a moral and cultural choice”. From these two premises it follows that if we wish our investments to “stand firm”, that is, to be morally defensible, they must be directed to the common good. Let us take up the two premises in order before exploring the consequences of the conclusion.

The phrase “common good” is often used, but little understood. Moreover, it points to a subject of great theological depth,

for in the last analysis the common good is God. Still, for our present concern, the Catholic tradition is sufficiently plain. We should first notice that the common good spoken of by St. Thomas as the foundation of our moral life extends beyond the material or economic plain. Indeed, any adequate understanding of the common good assigns wealth a minor role within the goods shared and sought by men as their end. Above and beyond wealth are health, the moral virtues, friendship, the speculative and theological virtues, and finally, God. The more truly human is the good, the more important a part of the common good it is. Consider John Paul II: “It is not wrong to want to live better; what is wrong is a style of life which is presumed to be better when it is directed towards ‘having’ rather than ‘being,’ and which wants to have more, not in order to be more but in order to spend life in enjoyment as an end in itself.” This distinction between having and being mirrors the distinction, as old as Socrates, between goods external to man and goods proper to or within man. The latter, the goods of being, are better than the former, the goods of having. They can also be more perfectly shared, which is what makes them more important parts of the common good. Houses and cars, shoes and wine can only be shared imperfectly, but, as Leo XIII affirmed, “virtue is the common inheritance of man, attainable equally by the humblest and by the mightiest, by the rich and the poor.”

St. Thomas speaks of the common good as the “common happiness” and “the common good of justice and peace”. Yet happiness is an activity of the soul in accordance with virtue, so the common good must be the virtuous activity of the community. Justice involves giving men what they are owed, that is, the respect for their dignity as rational creatures, and peace is the tranquility of order, so the common good must involve a kind of order in which society attempts to put first what is owed to man in his dignity as a ration- al creature. Thus John Paul II says of human rights that “the source and synthesis of these rights is religious freedom, understood as the right to live in the truth of one’s faith and in conformity with one’s transcendent dignity as a person.”

How then are we to take St. Thomas’s teaching that “nothing stands firm with regard to the practical reason, unless it be directed to the last end which is the common good”? In general, the answer is that each one of our choices must be able to be referred to the common good, rightly understood, as its last end. We must be able to intend the material, physical, moral, and spiritual well- being of our neighbor in each of our concrete decisions. How is such a doctrine to be applied to investment?

To answer this question, we must first determine the nature of investment and ask whether it is a good thing at all. Investment is the provision of capital, that is, the resources required by human labor in order more effectively to provide for our material needs. When we invest, we transform our excess wealth into capital. This kind of productive savings is in itself a necessary part of human material progress. In the twelfth century, a period of tremendous material advancement, investment took the form of using extra resources to clear new land for the plow or to build a larger barn or walled garden. In our day, investment generally involves sending our extra wealth to a joint-stock corporation, which recognizes our ownership of its capital in the form of shares of stock. In so far as our investments provide more capital, they are a good thing, as Leo XIII indicated in Rerum Novarum: “Each needs the other complete- ly: neither capital can do without labor, nor labor without capital.”

John Paul II seems to have been even more confident that this kind of investment is good, speaking repeatedly of the importance of providing the means, the capital, that will allow people to “take their place in an effective and humanly dignified way within a productive system in which work is truly central.” He even spoke of the role of “initiative and entrepreneurial ability” in our present economy as a development that “should be viewed carefully and favourably.”

With these principles in mind and Centesimus Annus before us, a positive doctrine of investment may be affirmed. When we decide to invest our extra wealth in productive capital rather than consuming it for our own enjoyment, we provide opportunities for our fellow men to develop their talents and virtues through their work. The stock market, therefore, is the means by which individuals may easily and effectively transform their extra wealth into productive capital. The profit that follows from such investments is a legitimate effect of our initial decision to dedicate our wealth to the advancement of society. Let us go still further in our praise of investment. Americans are notoriously guilty of spending their money on fleeting pleasures and vain amusements that contribute little or nothing to the long-term advancement of our society. Were we to consume less and invest more, we would arguably be improving our moral lives by acting more with an eye to the common good and less to our private pleasures. We would, of course, improve our moral lives still more by giving alms to the poor or exercising the virtue of liberality by giving the gift of hospitality to our family and friends. Yet it remains true that investment has a more positive character than mere personal consumption.

It remains for us to consider the obvious abuses that damage and even cripple our investment decisions, and which, in the long run, prevent our investments from contributing to what Benedict XVI has called “integral human development” (Caritas et Veritate). These abuses fall into two broad categories: the improper use of the stock market and the poor choice of investments.

As to the first, the Holy Father has set out the principle on the basis of which it may be understood: “Ownership of the means of production, whether in industry or agriculture, is just and legitimate if it serves useful work. It becomes illegitimate, however, when it is not utilized or when it serves to impede the work of others, in an effort to gain a profit which is not the result of the overall expansion of work and the wealth of society, but rather is the result of curbing them or of illicit exploitation, speculation or the breaking of the solidarity among working people.”12 Since to own shares of a joint-stock corporation is to own the means of production, it should not be doubted that this paragraph is meant to lead us to an examination of conscience. The passage clearly points to the abuse of seeking profits through means other than those which promote human development. Our most common failing in this regard, it seems, is to treat the stock market as a glorified casino. When we use the stock market to gain profits primarily through the clever manipulation of money we are committing the abuse of speculation. Since the purpose of the stock market is to allow private individuals to contribute to the accumulation of capital and through that to the development of society, speculation is an abuse. The various financial scandals and crises of the past decades surely suggest that many investors habitually abuse the stock market. What is badly needed at this point is serious moral reflection upon the common business practices used in the financial services industry in order to determine whether certain forms of investment are deserving of the name.

The second abuse concerns our discrete choices to invest in this corporation or that one. Let us recall the Holy Father’s principle: “The decision to invest in one place rather than another is always a moral and cultural choice.” What he has in mind here is the “necessity to create life-styles in which the quest for truth, beauty, goodness and communion with others for the sake of common growth are the factors which determine consumer choices, savings and investments.”14 In other words, our decision to invest here rather than there should be made with an eye to the common good, rightly understood. We should pick our investments not simply with a view to profit, but also with respect to the concerns laid out by John Paul II: the good of the employees of the firms in which our investments make us part-owners, the problem of “consumer attitudes and life-styles . . . which are objectively improper”, the “ecological question”, and the “moral conditions for an authentic ‘human ecology’”. In Evangelium Vitae, Blessed John Paul II repeated these same points, with still more insistence: “In a word, we can say that the cultural change which we are calling for demands from everyone the courage to adopt a new life-style, consisting in making practical choices—at the personal, family, social and international level—on the basis of a correct scale of values: the primacy of being over having, of the person over things.” Can it be doubted that this change in our practical choices is to include our investment decisions?

It remains to examine a few practical consequences of Blessed John Paul II’s teaching. With respect to our way of investing, we should first change our view of the stock market. It should not be seen as a slot machine or an impersonal and mechanical source of profits. Rather, we should consider the market’s authentic purpose, which is to allow individuals to serve the legitimate need of society for productive capital. If we see our investments as a service to society by putting our extra resources in the hands of those best suited to make them most productive, then, it seems, we would be more likely to think of investment as a long-term partnership with particular corporations instead of short-term gambling. Moreover, we might begin to look with skepticism at the majority of mutual funds. The purpose of these funds is to take investment decisions out of our hands and put them in the hands of professionals. Yet if we thus abdicate our duty to pursue the common good, we have failed gravely in our fundamental responsibilities. If we are to use mutual funds, we should choose those managed in conformity with the proper understanding of investment.

Finally, with respect to the choice of our particular investments, it is certain that we need to exercise more study and care than before. The Holy Father insists that these decisions are moral and cultural choices. He also calls us to work to rebuild the culture of life, which is to say to rebuild the common good of our society. It seems evident that we ought not choose to become an owner of a business whose activities destroy the culture of life. Many Catholic investors, therefore, already scrupulously avoid investing in corporations that produce pornography and abortifacient birth-control devices. Still more restraint and discernment is called for. It is possible to invest in corporations that make an adequate profit by fulfilling authentic human needs while treating their employees well and acting as good stewards of Creation. It is an honorable task to discover these companies and, by investing in them, to join them in their work.

The article was originally published in the September/October 2011 edition of StAR (The St. Austin Review)

Dr. Christopher O. Blum is Fellow and Dean at the Thomas More College of Liberal Arts in Merrimack, New Hampshire. Dr. Blum’s writings have grown from his reflection upon the tasks of teaching such subjects as Western Civilization, various themes in modern European intellectual history—notably the Reformation and the Enlightenment—and a number of topics in philosophy. He has published two volumes of translations from the French: Critics of the Enlightenment: Readings in the French Counterrevolutionary Tradition and The True and Only Wealth of Nations: Essays on the Family, Economy, and Society.


입력날짜 : 2012-08-31 (15:22), 조회수 : 3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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