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레지아 지역의 유태교 라비의 손자이며 유태교 부모밑에서 자란 그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에 대하여, 이스라엘의 아슈케니지 선임 라비는 그를 자기 민족의 배신자라고 불렀고, 예루살렘 포스트지는 배교자라고 비판한 일도 있다.
한편 가톨릭측 일부에서는 뤼스티제 대주교가 진정한 프랑스인이 아니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2차대전 중에 유태인으로서 오르레앙의 어느 천주교 가정에 피신하던 때에 성 목요일과 성 금요일에 몰래 오르레앙 대성당에 들어 가서 그 예절의 광경을 보고 감격한 14살의 뤼스티제는 성세를 받겠다고 요청하였다.
그는 그 14년 후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의 유태이름인 아아론을 첫 세례명으로 간직하고 크리스천 이름을 추가하였다.
1984년 그는 파리의 대주교로서 F 미테랑 대통령의 가톨릭하교의 비종교화 시도에 항의하는 백만명 데모에 앞장섰다.
1954년부터 1969년까지 파리대학교 지도신부를 담당하면서, 잠바를 걸치고 오토바이를 붕붕거리고 타고 다녔지만, 그는 보수주의 지성인이다.
그는 파시즘, 공산주의, 반유태주의를 포함한 세상의 많은 악들의 원류가 계몽주의와 이성신앙이라고 본다.
1968년의 학생운동이 상대주의와 도덕가치붕괴에서 나왔다고 보고 그는 운동학생들을 두둔하기를 거절하였다.
뤼스티제신부를 눈 여겨 본 요한 바오로 2세는 단 5년 기간에 그를 주교, 대주교, 추기경으로 올려 서임하였다. (2007. 8. 18. 이코노미스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