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시펀 22,2 마태 27,46)
이 기도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 속에서 하느님을 향한 탄식의 표현이었지만,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 체험(體驗)의 정점(頂点)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수많은 패러독스를 믿음의 신비 속에 체험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전적으로 홀로였으나 하느님 아버지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그는 파멸의 순간에 하느님의 구원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비참하게 무너진 수치스러움 속에서 그는 하느님의 영광을 이루었습니다.
죽음의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을 보았습니다. 완전한 비움 속에서 모든 것이 채워졌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는 인류에게 구원의 빛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십자가의 역설은 십자가 상, 고통스러운 하느님의 부재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이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이 모든 역설의 해답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이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인간의 영광(榮光) 속에서, 부와 명예(名譽)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現存)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은 부서지고 울부짖는 순간입니다. 온종일 불러봐도 대답없고, 밤새도록 외쳐도 하느님이 모른척 하는 순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인간과의 만남을 뛰어넘는 그 무엇입니다. 하느님은 이미 오셨으나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고통스러운 ‘비어있음’속에 우리에게 남겨져 있습니다. 그순간 하느님의 현존은 하느님이 계시지 않음, 하느님의 부재로 우리가 체험합니다.
어느 여인이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외아들을 뒷바라지하며 온갖 고초와 세상의 풍파 속에 삶을 꾸려나갔습니다. 그녀는 그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려움 속에서 믿음을 지켜온 보람도 없이 불치의 병, 암(癌) 진단을 받기에 이릅니다. 이때 그녀의 아들은 절규합니다. “어머니가 믿는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왜 하느님은 어머니의 기도를 외면하십니까?”
그녀는 하느님을 애타게 찾았지만 하느님은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 절망 속에 계셨습니다. 그녀는 완전한 절망 속에 부활의 희망을 떠올렸습니다. 그녀는 그리하여 이세상이 끝났을 때에 사랑하던 남편을 저 세상에서나마 만나 행복했던 날로 되돌아가 아련한 옛추억을 되살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계시지 않은 하느님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의 발자국을 발견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나라를 잃고 이천년을 방황하면서 엄청난 고난과 핍박속에서도 하느님을 애타게 찾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참을성이 없습니까? 하느님은 초월적인 분이십니다. 그분은 부재와 현존, 고통과 기쁨, 절망과 희망, 떠남과 돌아옴, 이 모든 구분을 초월하십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십자가의 신비는 이 모든 구분을 건너뛰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의 죽음속에 생명이 있으며, 절망속에서 인간은 구원을 보았습니다. 어둠속에 빛이 있었고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밑바닥에서 더 없이 고귀한 천상의 영광이 자리하였습니다. 파스카의 신비는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건너뛰게 하였습니다.
이 모든 초월, 건너뜀의 정점(頂点)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 자리하였습니다. 인간이 어떠한 희망도 없이 세상을 살았을 때, 예수님은 바로 부활의 희망을 우리에게 전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전한 것은 이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구원은 이 세상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을 때, 죽는 몸이 죽지 않은 것을 입을 때, 죽은 이들 가운데 일어서신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는 순간,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코린토1서 15장)
부활이 지닌 이 위대한 역설을 깨달은 우리는 하느님의 부재 속에서도 하느님의 현존을 믿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건너뛰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부활의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이들, 곧 믿음을 가진 우리는 이 세상의 명예와 구원만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일깨워주신 부활의 희망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2024. 3. 31. 그리스도 부활의 아침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