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2월 14일은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학자 기념일입니다. 16세기 위대한 영성신학자였던 그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가르멜의 산길’, ‘어둔 밤’ 등 불멸의 묵상집을 남겼습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신이 결합되어 완전한 인간을 이루게 되며 영혼을 통해서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게 됩니다. ‘영혼’은 인간의 영적근원을 가리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며 육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약 단 한 번도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한 적이 없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존재하신다는 나의 생각을 믿는 것이라고 합니다. 역사 상 어떤 성인도 자신의 삶에서 단 한 번도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해본 적이 없었던 분은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영적 공허(空虛)를 느끼며 진정 하느님이 존재하시는가 하는 의혹과 불신으로 밤을 샌다면 그것이 바로 ‘영혼의 밤’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함께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을 위하여 애썼습니다. 1577년 12월 어느 칠흑같이 어두운 밤, 십자가의 요한은 아빌라의 육화의 수녀원에서 개혁이전의 가르멜 수도회 수도자들에 의해 체포되어 얼굴에 두건이 씌워진 채 끌려갑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9개월 동안 똘레도 수도원의 다락방(감옥)에 갇힙니다. 그는 여기에서 ‘영혼의 밤’을 겪게 됩니다. ‘영혼의 밤’은 분명 십자가의 요한에게는 고통과 저주의 밤이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면 자신과 같이 살았던 수도자들이 수도원의 개혁을 주장하였다는 이유로 이토록 자신을 박해할 수 있단 말인가?’ 등의 수많은 질문과 함께 수백, 수천 번을 되새겨본 밤이었을 것입니다. 이때의 경험과 묵상을 바탕으로 십자가의 성 요한은 ‘어둔 밤’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어둔 밤’이라는 체험에서 하느님과의 일치와 영혼의 정화(淨化)를 경험하였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 ‘어둔 밤’ 54쪽~55쪽)
어두운 밤은 십자가의 요한에게 분명 부정과 박탈(剝奪)의 동의어였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밤, 어둔 밤은 단순히 부정적인 의미만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의 요한은 그런 밤이 있었기에 진정한 자유인의 상태에서, 즉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에서 완덕의 삶을 살아가면서 어두운 밤의 고난을 되새길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밤이 없었다면 과연 가장 높은 곳에 올라 하느님과 사랑의 일치를 맛보면서 기나긴 고통의 터널에서 사랑과 정화를 경험할 수 있었을까?’ 이 어두운 밤에서 그는 설명하기 어려운 행복을 맛보았던 밤이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엔도 슈삭쿠의 소설 ‘침묵’에서는 로드리게스 신부가 고문으로 죽어가는 신자들을 보면서 하느님께 절규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침묵합니다. 그는 이 어둔 밤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배교의 표시로 성화를 밟는 후미에(踏繪)를 합니다. 그는 그리고 하느님에게 묻습니다. 그 기나긴 고통의 터널에서 당신께 울부짖을 때 당신은 어디 계셨습니까?’ 하느님은 대답하십니다. ‘나는 그때 너와 같이 있었다. 너와 같이 아파하고 고뇌하고 울며 어두운 밤을 너와 같이 지새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도 영혼의 밤을 지내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수난 전날 피땀 흘리며 ‘아버지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이 저에게서 비켜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밤을 지내신 후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피로써 인간의 모든 죄를 속량하셨으며 자신을 못 박은 병사들의 용서를 성부(聖父)께 청함으로써 천주 성부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부활하셨습니다.
콜카타의 성인 마더 데레사도 영혼의 밤을 겪었습니다. ‘마더 데레사, 어둠 속 믿음’이라는 책은 데레사 성인이 느꼈던 하느님의 부재, 닫힌 천국에 대해서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 어둠은 너무 길고 저는 혼자입니다. 사랑을 갈망하는 마음의 외로움을 견딜 수 없습니다.’라고 데레사는 고백합니다. 마더 데레사는 영적 공허함을 겪는 어둔 밤을 겪었지만 그는 영적 공허마저도 ‘하느님의 더 크신 계획 안’에 있음을 받아들이고 어둔 밤의 고뇌를 하느님께 맡깁니다.
월남의 주교였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구엔 반 투안 추기경은 1975년 월남이 적화되고 얼마 안있어 성모승천 축일에 공산당원에게 붙잡혀 영어(囹圄)의 몸이 됩니다. 그는 13년을 감옥에서 지냈고 그중에서 9년을 독방에서 지냈습니다. 만약 하느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그는 감옥에서 저주와 분노, 회한과 자책으로 참으로 어두운 밤을 지냈을 것입니다. 수많은 날과 달 안에서 수많은 감정, 곧 서글픔과 두려움과 긴장이 그의 정신을 초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사람들과 떨어져 있어 찢어지듯 아팠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수많은 밤을 보내면서 성덕(聖德)에 이르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길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확신에서 이런 기도가 나왔습니다.
“예수님 이제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사랑으로 채우면서 살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75쪽)
그는 그 어려운 순간을 사랑으로 승화시켰으며, 순간순간을 사랑으로 채우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13년의 감옥생활을 끝내고 1988년 석방되어 로마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구엔 반 투안 주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영에 의하여 간추린 사회교리를 집대성하고 2001년 추기경으로 서품된 후 이듬해 2002년 선종하였습니다.
우리는 영혼의 짧은 ‘어두운 밤’을 이겨내지 못하고 하느님을 떠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하느님께 나를 맡기고 이 ‘영혼의 밤’을 이겨 내어야 마침내 주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자신의 모습을 감추심으로써 우리를 더욱 깊은 신앙으로 이끄십니다. 하느님이 우리 눈에 보인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단지 ‘아는 것’에 불과하며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 비록 끊임없이 의심과 의혹이 일어나더라도 우리의 의지를 굳게 하여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여야 합니다. 그 때 ‘영혼의 밤’은 우리에게 축복이 될 것이며 우리는 더욱 높은 곳에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2019. 12. 14.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학자 기념일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