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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신자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며 한국의 천주교회를 생각합니다
김원율 안드레아 (송파동)
 

 

10월 20일(토)의 오늘의 제1독서는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편지에서 에페소 신자들에게 ‘기도 중에 여러분을 기억하며 끊임없이 감사를 드린다’고 하면서 에페소 신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또한 그는 에페소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 일으키시어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에페소 서 1, 20-21)

 

최근 많은 신자들이 바오로 사도 선교의 발자취를 따라 터키와 그리스 등으로 여행을 떠나고 있습니다. 터키 서부해안의 에페소는 바오로 성인이 서기 50년경 2년 이상 머물면서 전교하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코린토 신자에게 첫 번째 서신을 썼고, 61년에는 로마에서 갇혀있는 바오로 성인이 사랑하는 에페소 신자에게 편지를 써 성령의 일치 안에서 평화를 이룰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0장을 보면 바오로 사도는 마지막에 성령에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그곳에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저는 모릅니다.” 라고 고백하며 에페소 원로들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합니다. 그는 에페소 원로들에게 “성령께서 여러분을 양 떼의 감독으로 세우시어, 하느님의 교회, 곧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얻으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라고 말하며 무릎을 꿇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다시는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고 한 그의 말에 가슴 아파 흐느껴 울며 바오로 사도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이후 바오로 사도는 예루살렘에서 유다인에게 체포되고 로마로 압송된 후 로마에서 용감하게 주님을 증거하다가 순교하게 됩니다.

 

본당에서 사목하다가 떠나는 사제에게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과 이별하는 장면은 꿈이며 사제들의 로망입니다. 가장 모범적인 목자와 신자와의 관계로 거론되기도 합니다. 떠나는 사제를 붙잡고 울음을 터뜨리는 신자들을 오늘 우리 한국의 천주교회에서 얼마나 볼 수 있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부산 교구의 어떤 신부님은 본당을 떠나면서 “어디서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도시를 떠날 때에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버려라.” (마태오 10,14) 라는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내 발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떠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신부님은 대단히 독선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성당운영으로 성당 신자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던 신부님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를 돌보며 하느님의 말씀을 열정적으로 전해야 할 사제가 하느님의 말씀보다는 현세의 즐거움에 빠져 사목을 등한시하는 신부님들이 있습니다. 그기에 더하여 현세에서의 구원을 논하며 정치판에 끼어들어 끝없이 분란을 일으키는 신부님들을 보면서 한숨 쉬는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10월 20일 오늘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 위에,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다’ (에페소서 1, 20-21)라고 에페소 신자에게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세속의 권세와 권력이 우리의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리스도의 이름이 현세와 내세의 모든 힘의 원천입니다.

 

사제들이 주제넘게 현세에서의 권력과 명예에 연연하여 신자들의 비난을 받는 것을 바오로 사도가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합니다. 어떤 신부님은 한국의 천주교 신자처럼 사제를 위하여 기도하고 순명하는 교회를 다른 나라에서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한국의 천주교 신자들이 에페소의 신자들처럼 떠나는 목자를 껴안고 이별을 슬퍼하지 않습니다. 시기심과 증오심에 가득차서 입만 열면 저주의 굿판을 벌리는 신부들에게 신자들이 치를 떨며 ‘왜 저 신부는 빨리 가지 않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온 신부를 보니 또 똑같이 자신이 예언자나 된 것처럼 정치이야기를 해서 아예 성당에 나가지 않는다는 신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기도가 부족해서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은 아닌가 생각되고 참으로 순교자의 피로써 세워진 한국의 천주교회가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절망하기도 합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성하께서 2007년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을 이 나라의 성직자들이 새겨들었으면 좋겠습니다.

 

“19세기, 20세기에 엄청난 불의와 무고한 고통으로 정의를 이루는 하느님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인간 자신이 정의를 세우도록 부름 받았다는 생각들을 사람들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고통 앞에서 하느님께 반항하는 것이 납득할 만하다 해도, 하느님이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일을 인간이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주장은 주제넘고 본질적으로 거짓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엄청난 잔인함과 정의에 대한 침해로 이어진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스스로 정의를 이루어야 하는 세상은 희망이 없는 세상입니다.”

 

(2018. 10. 20.)

 


입력날짜 : 2018-10-21 (19:06), 조회수 : 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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