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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고통은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는 은총의 과정입니다.
김원율 안드레아 (송파동)
 

9월 14일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이며 다음날인 9월 15일은 고통의 성모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어제와 오늘, 주님께서 돌아가신 십자가의 고통에 이어 성모님의 고통을 기억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고통은 우리가 피해야 할 부정적인 것, 고통은 고통으로 끝난다는 점을 우리로 하여금 깨우치게 하기 위하여 기념일을 정하였을까요? 아마 아닐 것입니다. 고통의 저 깊은 아래에는 은총과 영광이 숨겨져 있다는 진실, 즉 고통의 참뜻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려는 뜻이 있습니다.


그 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으며,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라고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되었습니다(필리피 서 2, 6-11). 9월 15일 복음(요한 19, 25-27)에서 성모 마리아께서는 십자가 아래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자신의 아드님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성모 마리아는 고통을 고통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 순간 고통은 은총으로 승화되었으며 성모님은 우리 모두의 복된 어머니가 되시는 영광을 누리셨습니다.


십자가의 성요한은 1577년 가르멜 수도회의 수도자들에 의하여 끌려가서 똘레도의 수도원의 한 다락방(감옥)에 약 9개월간 갇히게 됩니다. 그는 그곳에서 고통과 저주의 밤을 보냈습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면 같은 수도자끼리 자신이 수도회의 쇄신과 개혁을 주장하였다 해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질문을 수백 번 수천번도 되새겨본 암흑과 고통의 밤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일 십자가의 성요한은 그 밤이 없었다면 고통의 터널을 거친 후 가장 높은 곳에서 진정한 하느님과의 일치와 사랑을 맛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회상하였습니다. (어둔밤 54-55쪽)


찰스 코우먼이라는 여성 곤충학자가 어느날 나비의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는 과정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갓 태어나려는 나비는 고치 사이 좁은 틈을 뚫고 나오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가련하고 안타까워 그녀는 가위로 틈을 잘라 더 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나비는 쉽게 고치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였습니다. 고치를 쉽게 빠져 나온 나비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땅바닥을 버둥거리고 다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죽어버렸습니다. 나비는 고통을 겪으며 고치의 껍질을 뚫고 나오려고 버둥거리지만 그 고통 속에서 세상을 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고통의 시간이 후일 아름다운 날개로 창공을 비상할 수 있는 축복의 순간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크고 작은 고통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고통을 고통으로만 받아들여 절망하고 어둠 속에 머문다면 고통 속에 은총이 숨겨져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고통의 표면에만 머문다면 고통의 참뜻을 알 수 없으며 하느님의 사랑의 얼굴을 영원히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힘드십니까?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고난의 시간을 나비가 날개에 힘을 얻기 위한 비축의 시간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 분의 십자가를 나누어짐으로써 하늘나라로 비상할 수 있는 영혼의 힘을 기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고통은 은총의 시간이요 축복의 순간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어둔 밤을 지나면서 고통을 정화의 시간으로 승화시켰듯이 우리도 고난의 시간을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여 이 시간이 은총과 영광의 순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2017. 9. 15.)


입력날짜 : 2017-09-15 (16:41), 조회수 :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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