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신학은 가톨릭 교리에 반한다.
거대한 거짓: 사회주의에 관한 교황 베네딕트 16세의 회..
투자와 공동선 Investment and the Commo..

Pope proposes serenity of Mary..
On The Unfolding of God's Self..
Pope Says Liturgical Abuses De..

종북(從北)구조의 본질과 수술법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이사장 문재인)'
서울수복 기념식에 불참한 골수좌익분자 박원순 서울시장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복거일
삼성경제연구소
임광규..

기사 확대 기사 축소
세상의 인정이나 관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십시오!
김원율 안드레아  (송파동 )
 

세상의 인정이나 관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십시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 남으로부터 인정받고 관심을 끄는 것을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정당한 노력과 성실성에 따른 결과로 남의 인정과 존경을 받는 것에는 어떠한 비난도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목적이 오로지 남으로부터 받는 인정이나 관심, 나아가서는 세상의 갈채나 명성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사실 타인의 인정이나 관심은 주관적이며 매우 유동적인 것입니다. 나아가서 세상의 명성이나 갈채 역시 어느 순간 찾아왔다가 밤안개처럼 사라지는 허망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인정이나 관심을 순리에 따라 추구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바라고 매달린다면 자신의 인생은 상처로 가득하게 되고 종국에 파멸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흔히들 남의 인정이나 사랑을 받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스스로 명상하면서 자신에게 가만히 물어보십시오! ‘나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자유로운 삶인가, 아니면 남의 인정이나 관심인가?’ 남의 인정이나 관심, 세상의 명성, 어느 것도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없으며 본래부터 나의 것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본질적으로 바라는 것은 세상의 인정과 명성이 아니라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삶’입니다. 그리고 성탄절에 아기예수로 오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신 것도 바로 ‘자유’였습니다.

 

우리가 진실한 삶을 산다면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쳐지는 가를 의식하면서 끊임없이 나를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남에게 보여주는 자유로운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당대의 지식인들인 바리사리들을 왜 질책하셨는지를 한번 묵상해보십시오. 세리나 창녀들이 길거리에서 인사받기나 좋아했던 위선자들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최근 젊은 사람들이 한 시도 SNS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도 나를 누군가와 연결시키는 끈이 떨어지면 자신이 남의 애정과 관심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하는 강박관념 때문입니다. 오늘 인정받고 관심을 끌다가도 내일이면 인간은 다시 허기를 느낍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의 인정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이 인정을 받지 못해 상처받는 경우가 많이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나 관심에 초연한 사람들이 오히려 더욱 존경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이를 이루지 못하면 불안, 초조의 감정에 휩싸이고, 자신보다 인기있는 사람에게는 시기심과 분노를 느껴 주위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최근 대한민국의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어떻게 급변하는가를 본다면 세상의 인기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느낄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에서 권세를 가진 사람들과 얼마나 친밀한 가를 과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는 ‘상처의 텃밭’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대통령과 매우 친밀한 관계에서 국정을 농단하였다는 의혹을 받는 한 여인에 대하여 그동안 권력의 단맛에 젖어있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그 여인을 알지 못한다고 증언하고 있음을 보십시오! 친밀한 관계에 대하여 우리는 ‘천도무친(天道無親)’이라는 경귀(驚句)를 마음속에 새겨야 합니다. 이는 ‘진리를 추구하는 삶은 친밀함을 바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를 마음속에 새긴다면 한국 사람들처럼 권세를 가진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온갖 추태를 부리는 행태는 없어질 것입니다. 40여년전 최태민 자제의 결혼식에 당시 권력자, 재벌 400여명이 하객으로 참석하였다고 합니다. 권력의 냄새만 피워도 쉬파리처럼 들끓는 한국인의 인생관을 보여주는 단막극입니다.

 

예수님은 자주 외딴 곳으로 물러나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초기 교회 교부들은 사막에서 고독한 구도의 길을 걸었습니다. 고독은 반성과 성찰, 자기성장의 시간이 됩니다. 우리가 사람들과 떨어져 세상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있을 때에 창조주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서게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이 없으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환상 속에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남에게 애정과 관심을 요구할 권리도 없으며 구한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왜 남이 주고 싶으면 받고 주기 싫으면 받지 않으면 되는 것에 대하여 그토록 안달하고 목을 맵니까? 왜 나의 가치를 변덕스러운 남의 판단에 맡깁니까? 주님공현축일을 앞두고 1월 2일자 독서 (요한1서 2, 22-28)에서 사도 요한은 ‘자녀 여러분, 이제 하느님 안에 머무르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말씀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은 세상의 인정과 관심, 그리고 세상의 명예나 권세에 있지 않습니다.


입력날짜 : 2017-01-02 (10:08), 조회수 : 1322
 백자평쓰기
 * 성명 * 비밀번호
 * 내용
 
*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기사와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원수를 사랑 하여라~
성령은 비둘기처럼 내려 오..
성령님은 어떻게 우리에게 오..
하느님은 인간을 하느님의 형..
하느님은 존재 하시는가?
글이 없습니다.
중국 전교여행을 회상하며
원수를 사랑 하여라~
성령은 비둘기처럼 내려 오..
하느님은 존재 하시는가?
성령님은 어떻게 우리에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