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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박출명 저박장(人博出名 猪博壯)
김원율 안드레아 (송파동 )
 

 

인박출명 저박장(人博出名 猪博壯)이라는 고사는 “사람은 이름이 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이다. 살찐 돼지가 가장 먼저 잡아먹히고 인간의 명성이 높아지면 죽음이 가까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권세가 갖는 위험을 경계하는 말이다. 웬만큼 인격수양이 되지 않으면 만인이 올려다보는 권력을 지니고 겸손한 사람은 드물다. 결국 스스로 권력에 취하여 안하무인처럼 행세하다가 종국에는 몰락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명예욕과 권세욕은 인간이 갖는 본성이다. 특히 한국인은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고 이를 통하여 권세를 누리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유교적 전통에서 권세를 향유하는 입신양명과 출세는 가문의 영광이요, 한 인간의 삶의 모든 의미요 가치였다. 사농공상의 계급적 양반문화 아래에서 사회의 구성원은 평등한 인격을 지닌 것이 아니라 권력과 명예를 가진 사람이 분명 우월한 인격과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인정받아 왔다.

 

10월 31일 오후 3시 한동안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최순실 씨가 검찰에 출석하면서 검찰청사 앞은 밀려든 기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로 아수라장이 되다시피 하였다. 과거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들이 부정부패 의혹으로 검찰에 출석할 때도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법석을 떨지는 않았다고 한다. 최 여인은 한때 대통령보다 앞선 권력서열 1위라고 지칭될 정도의 권세와 안하무인의 교만한 처세로 일세를 풍미하던 여인이었지만 이날은 처참할 정도로 몰락한 한갓 가련한 노년의 여인에 불과하였다. 기자들에게 밀려서 벗겨진 신발이 프라다였음이 밝혀지자 마녀사냥을 하던 TV방송은 “최순실은 프라다를 신는다.” “한 켤레에 72만원의 명품”이라든가 영화제목인 “악마는 프라다를 신는다.”등의 네티즌 코멘트를 내보내면서 시청자들의 적개심과 분노를 부추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필자는 최여인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가 지은 죄가 있다면 엄중한 검찰의 수사와 심판을 받으면 된다. 그러나 목하 언론과 방송은 한 사람을 순전히 소문과 지인(知人)들의 ‘카더라’ 방송으로 난도질하면서 뼈를 가르고 살을 저미는 인격살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최여인의 딸의 사생활과 순전히 사적인 SNS상의 메시지를 트집잡아 아주 몹쓸 인간으로 폄하하면서 패악질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한 여인과 그 가족을 모질게 몰아붙이는 이들은 과연 그렇게 고결한 인품을 지닌 인간들일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필자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볼 때 남의 비행에 거품 물고 성토하는 인간들이 도덕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더욱 흠결이 많은 인간임을 알게 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나는 손바닥비비지 못해 출세 못했다고 술자리에서 비분강개하며 한탄하는 친구들을 보면 실제 처신이 그렇게 강직한 경우가 많지 않다. 진정으로 세상의 권세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아예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나는 비비지 못해 출세 못했다고 푸닥거리는 인간들은 남과의 비비기 경쟁에서 쳐져서 밀려났거나 비비는 기술이 부족해서 결국 자리경쟁에서 미끄러진 인간들이 대부분이라고 보면 된다.

 

지금 박대통령과 최여인을 지근지근 씹고 국정농단 등, 마치 거대한 죄악의 불구덩이처럼 온갖 비난을 다하는 인간들을 보면 박대통령의 냉담하고 청탁에 초연한 모습에 한자리 못하고 이를 갈다가 최여인의 국정개입 의혹이 일어나자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물어뜯고 있는 인간들이라고 보면 된다. 조선일보를 비롯, 보수정론이라고 자처하던 신문, 종편, TV 방송이 모두 터진 봇물처럼 한 여인과 그 가족, 언니, 동생 모두를 의혹의 집적체인 것처럼 침소봉대하고 부풀리기에 모든 땀과 시간을 퍼붓고 있다. 이들은 확실한 기억도 검증도 없으며 소설과 진실이 뒤범벅된 것을 Fact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설이 설을 만들고 배신이 배신을 부르면서 추정에 불과한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이에 어긋나는 결론을 앞으로 검찰이 낸다면 이를 조작과 얼버무리기로 규정하고 포장하려고 작정하고 덤벼든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간음한 여인이지만 “죄 없는 자부터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자신은 얼마나 깨끗한가? 우리 자신은 얼마나 권력욕과 명예욕에서 자유로운가? 나 자신부터 성찰하고 최여인에게 돌을 던져도 던지도록 하자. 한국인의 권력에 대한 추종과 욕망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강하다. 권력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한국인들의 권력지향 의식이 최여인이라는 교만과 탐욕의 화신을 만들어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40년전 최태민 목사의 자녀 결혼식에는 권력자, 재력가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당시 “권력의 냄새만 피워도 쉬파리 떼처럼 몰려들었던 당시의 단막극”이라고 종교연구가 탁명환 씨는 말하였다. 권력자의 ‘권’자만 들어도 알아서 기는 한국인들의 행태는 외국인들 사이에 거의 불가사의한 행태로 지적받는다. 국회의원이나 권력자들이 해외에 출장이라도 가면 어떻게 하든 이들과 자리를 같이 하면서 눈도장을 찍고자 하는 파리떼들이 극성스러울 정도이며,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의 관료나 공무원들은 한국인들의 이러한 극성스러운 접대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청와대의 청소부만 팔아도 다단계 사기를 쳐 몇십억을 챙길 정도로 한국인이 권력에 대해 설설 기는 행태는 상상을 초월한다.

 

분명히 최여인의 위세를 엎고 호가호위하면서 고위직에 올랐던 사람들이 최순실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고 잡아떼는 파렴치한 행동에서 염량세태를 느끼게 된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간이 미어터지지만 정승이 죽으면 개새끼 한 마리 얼씬 거리지 않는다. 국회의원이라는 엄연한 선량(選良)이요, 나라의 헌법기관이라고 뽐내는 인간들이 최여인 집에 돈싸들고 드나들었음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최여인이 80년대 부친을 잃은 박대통령을 위로하면서 곁을 지킨 것은 분명 순수한 의도로 행한 것일 것이다. 그때 박대통령은 정치에 입문하기도 훨씬 전이며 더구나 후일 대통령이 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최여인의 얼굴을 보면 풋풋한 외모, 해맑은 미소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박대통령이 집권당의 대표, 그리고 대통령이 되면서 그의 측근, 비선 실세가 되고 권력을 좇는 부나비들이 최여인에게 엎드리면서 최여인은 점점 교만해졌고 얼굴도 표독해진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며 권세에 초연한 삶을 살았더라면, 이 사회가 온전하게 양식에 입각하며 굴러가는 사회였다면 국정개입을 일삼았던 안하무인의 최여인은 이 세상에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몇 일전에 보니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무국장이라는 분께서 대통령 퇴진 시국선언에 동참할 사제들의 서명을 인터넷을 통해서 받고 있었다. 그리고 최여인의 국정개입의혹이 본격적으로 언론에 다루어진 후, 10월 30일 성당의 주일미사에서 신부님들이 최여인 사태와 관련하여 박대통령 비난강론을 일제히 시작하였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신부님들에게 간곡히 말씀드리는데 나라가 있고 종교가 있는 법이다. 지금 북한 핵과 경제위기 등 이 나라가 끝모르고 추락하는 시점에서 참된 성직자라면 신자들의 분노를 달래고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자제하도록 타일러야 옳다. 그것이 교회의 일치와 화해, 관용을 말해야 할 교회의 성직자로서의 올바른 길이다. 언제까지 분란의 씨앗이 있으면 이를 확대하고 조장하며 사회의 혼란을 부추기려는 일만 계속하려는가? 신부님께서도 스스로 성찰하시기 바란다. 과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내가 최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신부님들이 정말 죄없는 자인가? 신부님들은 진정 이 세상의 명예와 욕심에 초연한가?

 

신부님들 역시 세상에 이름이 나면 온갖 세속의 유혹에 휩쓸리다가 결국 살찐 돼지가 되어 도살장으로 끌려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인박출명 저박장(人博出名 猪博壯)이라는 고사는 성직자에게도 예외없이 적용되는 교훈이다. 성직자들이 거짓 예언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한다면 결국 천상의 삶이 아니라 땅위의 삶으로 일관하게 된다. 복음에서 사랑의 뜻도 깨닫지 못하며 주님 말씀을 읽어도 돼지가 진주를 보는 것과 같고 결국 죽음의 길을 가다가 불구덩이 속으로 떨어질지 어찌 알겠는가?

 

 


입력날짜 : 2016-11-01 (01:02), 조회수 : 1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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