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신학은 가톨릭 교리에 반한다.
거대한 거짓: 사회주의에 관한 교황 베네딕트 16세의 회..
투자와 공동선 Investment and the Commo..

Pope proposes serenity of Mary..
On The Unfolding of God's Self..
Pope Says Liturgical Abuses De..

종북(從北)구조의 본질과 수술법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이사장 문재인)'
서울수복 기념식에 불참한 골수좌익분자 박원순 서울시장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복거일
삼성경제연구소
임광규..

기사 확대 기사 축소
구마신부의 댓글에 대한 답글
김원율 안드레아 (송파동 )
 

 

구마신부님의 댓글을 잘 읽었습니다. 우선 구마신부님께서는 대단히 상상력이 풍부하신 것 같습니다. 타자상의 실수를 가지고 그토록 장황하게 한 사람의 성서실력을 평가하고 난도질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좌파들의 습성을 그대로 빼어 박은 듯이 닮으셨군요. 지금이라도 매일미사 8월 22일자 복음말씀을 한번 찾아보십시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말씀입니다.’ 다음에 ‘23,12-22’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제가 입력하면서 ,12를 빠트리고 ‘23-22’라고 쳤는데 이걸 가지고 건수 하나 잡았다는 듯이 ‘흠 ...성서 표기도 제대로 못하는 것 보니, 김원율 씨는 성서를 그리 공부하지도, 읽어보지도 않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봅니다.’라고 하셨는데 제가 보기에는 ‘합리적인 의심’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폄하하고자 하는 ‘악의적인 의심’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구마신부께서 좀 더 성서에 대해 공부하도록 하십시오. 처음부터 끝까지 근거 없는 해석을 하면서 제가 성서에 대하여 무지하다, 성서를 좀 더 공부하라는 말씀을 반복하였는데 평신도인 제가 성서를 모르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래도 예언직과 사제직을 평신도보다 주도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사제가 성서에 대하여 무지하다는 평가를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마태오 복음 23장의 말씀은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은 말씀입니다. 당시 이 사람들은 구마신부께서 말씀하셨듯이 사제가 아닌 신분이라는 점에서 평신도일지 모르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율법을 해석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대사제들과 함께 최고의회를 구성하는 유대교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사두가이파의 사제가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는 오늘날 새로운 계약에서 이루어진 교회의 제사가 아닙니다. 사두가이파의 사제들은 영혼의 존재, 부활, 내세도 믿지 않았습니다. 당시 양과 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제사를 지냈던 사두가이파의 사제나 대사제가 어찌하여 오늘날 새로운 계약의 미사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축성하는 주교, 신부와 같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습니다. (히브리서 9,12)

 

그리고 예수님께서 평신도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에게 이 말씀을 하셨으니 주교와 신부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과 어떠한 관련도 없다는 말씀입니까? 구마신부님 어디에서 이런 성서해석을 배우셨습니까?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바로 사제와 주교들만 지칭한다고 생각하니 성서를 완전히 모르는 무식한 발상이다?’ 제가 어디에서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사제와 주교들만 지칭한다는 말을 하였습니까? 함부로 남의 글을 비틀고 왜곡하지 마십시오. 구마신부님,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반성하시기 바랍니다. 평신도 역시 다른 신자들을 잘못 인도하면 하늘나라의 문을 신자 앞에서 잠그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구마신부께서 가슴에 손을 얹고 잘 생각해보십시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제대위에서 신자들에게 분노와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강론을 하면서 신자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평신도입니까? 아니면 정치사제입니까? 정부가 고심 끝에 민족의 보존과 안전을 위해 결정한 고고도미사일(THAAD)배치에 대하여 8월 29일 성주 군민들과 수도자들을 명동성당에 모아놓고 정부의 결정을 비난하고 북한을 옹호한 사람은 주교입니까? 아니면 평신도입니까?

 

감독직으로서의 주교와 보조자로서의 사제는 초기교회에서는 봉사직이었고 자신의 직업을 영위하는 평신도들 중에서 선정하여 미사의 집전을 맡겼습니다. 주교와 사제가 하느님의 백성 중에서 전적인 봉사에 전념하는 성직으로 거듭 난 것은 대체로 기원후 2세기경이었습니다. 이러한 성직자의 출현은 당시 이단의 출현과 관계있습니다. 초대교회의 교부들은 이단과 맞서 성삼위의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교리를 확립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굳이 구분한다면 예언직을 수행하는 사제들은 사두가이파의 제사장보다는 하느님의 율법을 전하고 해석하였던 바리사이들과 더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구마신부께서 장황하게 예거하신 당시 유다인의 3개 파인 사두가이파, 에세나파, 바리사이파를 구분할 것 없이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에게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 사제나 대사제, 지금으로 따지면 신부나 주교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은 논리적인 오류이며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 들에 빗대어 사제들과 주교들을 비판하였던 본인의 비판논리는 완전히 무너지게 됩니다.’고 하였는데 그릇된 출발점에서 시작된 논리가 어떤 웃기는 결론에 도달할 것인지는 구마신부의 궤변이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지금 이 순간 성당에서 강론대를 잘못된 정치논리로 물들이면서 궤변을 일삼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평신도입니까? 사제입니까? 자신들의 반성서적이고 반교회적인 행실에 대하여는 일언반구 반성의 언급도 없이 어쭙잖은 성경지식으로 남의 견해를 비틀고 왜곡하면서 근거없이 비난하는 것이 바로 정치사제들의 상투적인 수단입니다. 에제키엘 예언서는 바빌론 유배기간 중에 씌어졌으며 이는 유배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유배시기를 하느님께 돌아가기 위한 정화와 쇄신의 기간으로 에제키엘 예언자는 여겼습니다. 그래서 과거 양들을 돌보지 못했던 자신들의 과오를 뉘우치고 이 정화의 시기에 흩어진 양들을 다시 모으려는 각오를 나타내었던 것입니다. 구마신부께서 에제키엘 예언서의 정신에 대하여 조금의 이해라도 있다면 지금이라도 정화의 시간을 갖고 흩어진 양들을 모으는데 힘을 쏟으시기 바랍니다.

 

예언이라고 함은 구마신부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예언자가 하느님의 말씀을 내적인 은총으로 받아들여 이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계시와 은총을 통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자발적인 응답이 바로 신앙입니다. 예언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하는 것도 아니며, 죄에 대한 고발과 심판도 아닙니다. 예언은 하느님의 말씀 없이는 인간이 살아갈 수 없다는 하느님 말씀에의 초대였습니다. 평신도가 분개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제대위에서 도구적 집전자에 불과한 사제가 원집전자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인 고정관념과 아집에서 빚어진 견해를 마치 하느님의 정의를 선포하는 것처럼 읊어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마신부께서는 댓글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양들의 인권이 짖눌려 아파한다면

양들이 공권력에 의해 부러지고 깨지고 찢어졌다면

양들이 신앙을 잃고 흩어져버렸다면

목자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 대상이 아무리 대단한 대상일지라도

목자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양들을 위해 가만히 있으면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서 이 구절을 통해 정의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사제들을 비판하기에는 논리적인 모순이 있어 보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 말씀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며 많은 오해와 미움속에서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실망입니다. 과거 군사정권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이 민주화를 외쳤을 때 신자들은 사제들을 지지하였습니다. 지금 정의를 위해 희생하는 사제들이 누가 있습니까? 그 예를 들어보십시오. 박창신 신부입니까? 문규현 신부입니까? 함세웅 신부입니까? 이들은 자신들이 정부에 무조건 반대하면 정의의 사도라고 떠받들어줄 줄 알고 모든 친북 반미 반정부활동에 생사결단, 넘나드는 사람들이며 북한의 인권탄압에는 한결같이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그간 정치사제들이 어떤 악행을 저질러 왔습니까? 정부가 하는 모든 국책사업에 대하여 반대하고 민족의 안전과 생명을 위하여 사드미사일 배치를 결정한 정부를 비난하고 사드배치 지역 앞에서 평화미사라는 명목으로 군민들을 선동하였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노골적으로 친북후보를 편들다가 실패하자 ‘유신의 후예 박근혜를 청와대에서 쫓아내라’는 김정은의 지령에 마치 호응이라도 하듯이 댓글 100여 편을 빌미삼아 전국을 돌면서 대통령 퇴진 시국미사를 드리면서 대통령에게 저주와 막말을 퍼부었습니다. 이런 행동이 바로 일제 시절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민족을 괴롭혔던 사람들과 다를 게 무엇이 있습니까? 그래서 평신도들이 ‘친일파’라는 이름 대신에 ‘종북사제’라는 명칭으로 이들 정치사제들을 부르는 것 아닙니까?

 

얼마 전에 제가 다니는 성당에서 민족화해위원회의 신부님이 오셔서 강론한 적이 있습니다. 민족화해위원회를 위한 후원금을 호소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신부님 말씀이 자신이 북한에서 가장 많은 미사를 올린 신부 중 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님이 북한에서 신자로 생각되는 분은 딱 한분 보았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미사 중에 원래 신부도 일체 신자들에게 말을 못 걸게 되어있지만 하루는 용기를 내어 성체를 주면서 신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씀을 걸어보고 하였는데 한 할머니가 모기 소리만 하게 ‘신부님 제 본명은 마리아입니다. 저는 어려서 세례 받았습니다.’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민화위의 신부님은 아마 그 할머니가 자신이 북한에서 만난 유일한 신자였을 거라고 말하였습니다.

 

1920년대 독일 베네딕토 회의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가 북한에 원산 대목구를 열고 성당과 수도원과 학교를 많이 지었지만 북한 정권이후 신부, 수녀, 수도자들은 모두 순교하였고 지금 성직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대수천 지도신부이신 김계춘 도미니꼬 신부께서 바로 수도자들 학살의 생생한 증인입니다. 지금도 정치범 수용소에는 6, 7만의 그리스도인이 수용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북한의 폭압적인 인권말살과 종교탄압에는 일언반구 말없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흠집내고 정부의 정책에 대하여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같은 소리를 내면서 갖은 트집을 잡는 것이 정치신부들입니다.

 

정하상 바오로 성인은 천주께서 계시는 증거가 세 가지가 있는데 천지만물과 성경, 또 하나는 인간의 양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구마신부님,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으시다면 이상의 엄연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하늘나라의 문을 잠그는 사람들이 진정 누구인지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십시오. 제대에서 자신만의 정의를 위하여 아집과 편견에 빠져 저주와 분노의 소리를 뱉어내는 것이 천국의 문을 여는 것인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사랑,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 진정 하늘나라의 문을 신자들 앞에게 여는 것인지 생각해보십시오.

 

제가 구마신부의 말씀을 그대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이 글을 통해 당신 스스로가 얼마나 무지한 사람이고

당신의 신앙 안에 얼마나 사랑이 없고, 얼마나 악이 가득한지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얼마나 큰 악으로 대하고 있는지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많은 신자들에게 교회를 떠나게 선동하고 있는지를 잘 느끼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루 빨리 회개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의 성경에 대한 지식이 무지하다, 논리가 빈약하다는 주장을 하기에 앞서 좀 더 성경공부를 하도록 하십시오. 하느님 말씀은 정부나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을 비판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영혼의 생기를 불어넣기 위하여 사용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마음속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입력날짜 : 2016-09-12 (18:00), 조회수 : 1374
 백자평쓰기
 * 성명 * 비밀번호
 * 내용
 
*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기사와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원수를 사랑 하여라~
성령은 비둘기처럼 내려 오..
성령님은 어떻게 우리에게 오..
하느님은 인간을 하느님의 형..
하느님은 존재 하시는가?
글이 없습니다.
중국 전교여행을 회상하며
원수를 사랑 하여라~
성령은 비둘기처럼 내려 오..
하느님은 존재 하시는가?
성령님은 어떻게 우리에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