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믿음에 있어 성경과 성전이 증언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주님을 믿는다면서 하느님의 피조물인 천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천사의 현존을 부인하는 한 본당의 신부가 있었다. 그는 임의로 미사에서 감사송 끝에 나오는 거룩한 천사에 대한 찬미를 빼버리곤 하였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천사는 없다”면서 그 이유를 말했다. 결국 그는 성직을 포기해버렸다. 교회가 하느님과 천사에 대한 찬미를 언급하고 있음에도 이를 믿지 않는다면 교회가 신자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뜻이다. 교회는 하느님 계시의 올바른 보호자이므로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성서에서는 천사로 불려지는 천상 영신들의 현존에 대한 확신이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공적으로 위임받은 가톨릭 신앙의 전달자들 중에서도 근본적인 교리상의 진리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성모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 성체 안에 실재하는 그리스도의 현존 등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부인하거나 의심하는 일이 있음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런 현상은 계시된 진리이며 교회에서 명백히 가르치는 천사들의 존재에 대한 가르침 -하느님을 믿었던 착한 천사들과 타락하여 쫓겨난 나쁜 천사들에 대한 - 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매우 슬픈 일이며 교회의 신자들에게도 해(害)가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밝힌 ‘교리의 순서’(Unitatis redintegratio 11항)에 따를 때 교회의 천사론의 진리는 최우선적인 교리상의 진리는 아니지만 처음부터 내려온 고귀한 신앙유산(Depositum fidei)이다. 더구나 신앙의 건물에서 돌을 뽑아내듯이 빼낸다면 그것은 결국 신앙 진리 전체를 흔들리게 한다. 또 천사, 수호천사에 대한 진리는 많은 신뢰와 존경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그 진리의 부인은 신자 개인에게 해로운 것이 된다. 수호천사의 존재를 부인하는 신자에게 수호천사는 임할 수 없게 된다.
창세기에서 하느님은 첫날 어둠과 빛을 가르셔서 낮과 밤을 만드셨고 둘째날 물사이를 갈라 하늘을 만드셨고 셋째날 물을 한데 모으셔서 바다와 땅을 만드시고 온갖 식물을 만드셨다. 넷째날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고 다섯째날 물에 있는 생물, 물고기, 새를 만드셨고 마지막 날 땅위의 동물과 인간을 창조하셨다. 하늘과 땅을 만드실 때 창조 기록의 ‘하늘’이라 함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천사들의 세계로 보았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없이 천사는 인간보다 먼저 존재하였다. 이는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년)의 해석과 일치한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모든 존재의 근원이시며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존재, 영적 ‧ 물적 존재의 창조주이시라는 것을 확고히 믿으며 공언한다.’
창세기에서 인간의 선조인 아담과 하와와 천사의 친교에 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인간과 천사의 첫째 만남은 불행히도 타락한 천사인 사탄과의 잘못된 만남이다. 당시 뱀의 모습을 하고 있던 타락한 최초의 천사와 단 한번 있었던 접촉이 인간의 타락에 관한 장면에서 언급된다. 사탄의 유혹으로 죄를 범한 인간은 낙원에서 추방되었다.
외경 ‘아담과 하와의 생애’ (Leben Adams und Evas)에서는 사탄이 아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아담, 내 증오, 내 질투와 고통은 너로 인한 것이다. 나는 너로 인하여 천상에서 쫓겨났고 천상의 영광에서 멀어졌다.” 아담이 대답하였다. “내가 너에게 무슨 일을 했느냐? 왜 우리를 못살게 구느냐?” 사탄은 대답한다. “너는 지금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 하느님이 너에게 숨을 불어넣고 너를 당신의 모상대로 만들었을 때 미카엘이 너를 나에게 인도하여 너에게 경배하도록 명령했다.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내 모상대로 아담 너를 만들었도다.’ 그러자 미카엘이 모든 천사들에게 ‘하느님께서 명하신 대로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이를 찬미하라!’하고 외쳤다. 그리고 미카엘이 제일 먼저 그에게 공경을 표하였다. 내가 말했다. ‘나는 아담에게 찬미를 바칠 필요가 없다. 나는 그보다 먼저 태어났으며 그가 태어났을 때 나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가 나에게 공경을 표해야 한다.’ 미카엘이 다시 명령했다. ‘하느님의 모상을 찬미하라. 그렇지 않으면 주 하느님의 노여움을 얻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 분이 나에게 화를 내신다면 나는 내 옥좌를 하늘의 별 위에 놓고 지존하신 분과 똑같이 되리라.’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 몹시 노하셔서 나와 나를 따르는 천사들을 모두 우리의 영광으로부터 추방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살던 곳에서 추방되어 너로 인하여 땅으로 쫓겨났다. 그래서 나는 너의 아내에게 올가미를 씌었고 내가 내 영광에서 쫓겨난 것처럼 너를 너의 기쁨과 희열에서 쫓겨나도록 했다.”
아담은 악마가 하는 말을 듣고 슬피 울었다. “오, 주여! 하느님, 저를 타락시키려는 이 적을 저로부터 떼어놓으시고 그가 잃게 만든 당신의 영광을 저에게 허락하소서!” 아담의 간절한 기도는 하늘에 통하여 사탄은 사라졌다. 아담은 하와를 위해서도 기도하였고 수호천사들이 하와를 축복하고 하와의 후예인 성모 마리아께서 뱀의 머리를 부수는 형상으로 우리에게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이루어주셨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제2의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낳아 주셨다.
인간의 역사는 사탄과의 투쟁으로 나타난다. 구약에서 악의 세력은 인간의 가슴 속에 숨어든 뱀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성서 마지막 편에서는 (요한 묵시록 12, 4) 크고 붉은 용이 하늘의 별의 3분의 1을 휩쓸어 버린 것으로 나타난다.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독서말씀) 인류의 역사는 이 사탄과의 투쟁으로 나타난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바로 사탄의 지배영역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의 전투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날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하십시오.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에페소 서 6, 12~17)
예수님의 일생 역시 죽음의 세력인 사탄과의 투쟁의 역사였다. 그분은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악마의 유혹을 받으셨으나 (빵에 대한 유혹, 하느님을 시험하고자 하는 유혹, 세상의 부귀영화에 대한 유혹) 어둠의 세력에 승리하셨고 (마태오 4,1-11) 또한 사람들로부터 악령을 쫓아내셨다. (마르코 3,11 5,8; 루카 6,18) 그리고 십자가 상의 수난과 죽음으로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이 이 세상의 싸움에서 패배하신 것으로 보였으나 마침내 영광스러운 부활로 죽음의 세력에 승리하셨다.
일부 성직자들이 유물론적인 성서해석에 매몰되어 인간의 죄악이 사탄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인간세계의 악인 기득권 세력이 선한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는 사회구조적인 악에서 모든 죄악이 잉태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음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혹자는 기득권 세력이 사탄의 지배를 받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의 해결책은 더 더욱 기도가 되어야지 세상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이 되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영적 전투의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바로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 하늘에 있는 악령이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는가? 인간이 사탄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결국 그 대척점에 있는 수호천사의 존재도 믿지 않는다는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 그렇지만 수호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천사가 인간의 본성이며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상으로 되돌리고, 영적인 도움을 통하여 인간을 본래의 고향, 낙원으로 인도할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대신하여 보내주신 성령이야 말로 하느님이 보내신 사자, 수호천사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