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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의 글, “‘올바른 사회교리’라는 이름의 ‘잘못된 사회교리’”에 대한 반론
김원율 안드레아  (송파동 )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에 게재된 우리신학연구소 박문수 프란치스코 형제의 글 “‘올바른 사회교리’라는 이름의 ‘잘못된 사회교리’”라는 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반론을 제시한다. 그의 글 중에서 대수천에서 펴낸 ‘올바른 사회교리’책에 대하여 ‘일독의 가치가 없는 시간이 아까운 책’이라는 독선에 가득찬 평가는 오히려 많은 분들이 책을 찾게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신학연구소가 신학이라는 이름아래에서 각 교구의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행한 유인물에서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주장을 해왔는가를 아는 독자라면 이 연구소가 행하는 평가를 진실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선 형제께서 ‘학문적 한계’ 운운 하셨는데 그 근거가 참으로 웃기는 것이다. 간추린 사회교리가 430페이지인데 이 책은 불과 몇 십쪽(실제 책은 160페이지임) 운운 하는데 그렇다면 613개에 달하는 율법의 조항을 주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집약하신 예수님은 당연히 율법에 대하여 학문적 한계를 지니신 분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떠한 문학작품에 대하여 책의 분량으로 문학성을 따진다면 헤밍웨이의 위대한 단편소설 ‘바다와 노인’은 그의 장편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한참 못 미치는 문학성을 지니는 것으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도 ‘바다와 노인’이 책의 분량이 적다고 하여 장편소설에 비하여 문학성이 떨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올바른 사회교리’ 책을 일부러 쓰지 않아도 이미 신자들은 정의구현사제단의 비성서적이고 비상식적인 반정부 정치활동에 염증을 내고 있으므로 평신도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학문적’으로 정의구현사제단을 공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아직도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고 ‘정의’를 입에 올리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사제들에게 참된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려는 목적에서 씌어진 책이 ‘올바른 사회교리’이다. 참고로 1988년 가톨릭 교육성이 제정한 ‘사제양성에 있어서 사회교리의 연구 및 교육지침’에 대하여도 일독하시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는 교회의 보편적 가르침에 어긋나는 사회교리는 그 의미가 없음을 가르치고 있다.

 

베네딕트 16세 교황이 가장 위대한 교황이라는 주장은 이 책 어디에도 없다. 다만 20세기를 비참한 파괴와 질곡으로 몰아넣은 사회주의에 대하여 치밀하고 신학적인 분석을 하셨다는 관점에서 그가 ‘위대한 스승’이라는 말을 한 것이며 이런 면에서 가장 뛰어난 사목교서로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를 이야기한 것이다. 교회의 사회적인 가르침을 주신 교황님 모두는 영적인 위대함을 지녔던 분들이었다. ‘견강부회가 가장 심한 부분’ 운운 하셨는데 ‘모든 회칙이 당시의 사회교리의 정신을 집대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견강부회를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견강부회’ 같은 말을 하려면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인간을 잊었고 인간의 자유를 잊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러한 교황의 주장이 어찌하여 억지인지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한 다음 견강부회 운운해야 맞지 않을 가 생각된다.

 

사회교리 교재라 하면서 사회교리는 8장 가운데 2개장 만 다루었다고 하는데 올바른 사회교리를 전개할 때 당연히 정의구현사제단이 주장하는 논리가 왜 올바른 교리가 될 수 없는가를 다루는 것이 논리전개에 필연적인 순서일 것이다. 독재시절 군대에서 쓰는 ‘정훈교재’라고 보는 것이 더 어울릴 정도라고 했는데 자신들과 반대되는 말을 하면 당신들은 언제나 독재정권의 하수인으로 모는 습성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도 아니고 남한의 극우파라고 말씀하셨는데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한국은 남한이고 북한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인가? “극우파가 가톨릭 신자의 탈을 쓰고 교회의 예언직무를 공격하는 내용에 불과했다”? 누가 극우파이고 누가 가톨릭 신자의 탈을 쓰고 있단 말인가? 필자가 생각할 때 이 표현은 우리신학연구소에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인민공화국을 추종하는 극좌파가 가톨릭 신자의 탈을 쓰고 교회의 올바른 예언직무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신학연구소이다.’ 몇년 전 성탄 대림기간 중 대림절 성경퀴즈 라는 문제지를 우리신학연구소에서 만들어 서울 시내의 성당에서 신자에게 돌린 적이 있었다. 가관인 것이 내용 중 일부는 정부와 정부의 4대강 공사를 공격하기 위하여 자의적으로 만든 질의를 대림절 퀴즈로 둔갑시켜 신자들에게 묻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극좌파가 가톨릭 신자의 탈을 쓰고 신학의 이름을 빌려 반정부 활동을 한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필자는 유아세례를 받았고 어린 시절 복사를 하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예식에 따라 라틴어를 외어서 복사를 하였다. 복사할 때 첫 기도의 구절이 ‘앗떼움귀 레띠피갓 유벤뚜뎀 메암’ (‘나 이제 천주의 제대 앞에 나아가리이다’)이었음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당시 신자들도 공의회 이전이었으므로 미사 때 라틴어로 미사하면서 ‘도미누스 보비스꿈’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엣꿈 스피리투 뚜오’(또한 사제와 함께) 라고 미사 중 외우곤 하였다. 지금 프란치스코 형제 나이가 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세상을 만만히 보고 ‘극우파가 가톨릭 신자의 탈을 쓰고’ 처럼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제3장은 역대 교황의 회칙을 원문 그대로 소개하고 이에 따라 약간의 설명을 부가하였는데 어떻게 균형적인 태도 운운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3장의 내용이 균형을 갖추지 않았다면 역대 교황의 회칙이 어떻게 객관적이 아닌지를 이야기 해야지 아무 근거없이 이념적 색채 운운 하는 것은 의도적인 폄훼이며 독자의 인식을 일부러 왜곡시키고자 하는 것 밖에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복음없는 사회교리’이다..... 자신들의 이익과 상충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생각 등은 이미 복음과 거리가 있다.”고 하였는데 책의 어떤 부분이 그러하다는 말은 전혀 없다. 사람이 남을 평가할 때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남에게 적용하여 남들도 그러리라는 전제에서 남을 평가한다. 프란치스코 형제는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이 글에서 자신의 정체를 그대로 드러내었다. 자신들의 이익과 상충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생각은 바로 교회내 좌파들의 전유물이 아닌가?

 

“정의구현초기 멤버들도 해방신학을 배웠으되……민중신학과도 교류는 있었으되 따르진 않았다.” 이는 프란치스코 형제의 독자적 생각인가? 아니면 누가 그렇게 프란치스코 형제를 세뇌시킨 것인가? 필자는 분명히 근거를 가지고 이 말을 한 것이다. 정의구현사제단 4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분명 이들은 민중신학, 민중복음을 논하였고 반외세, 반 매판자본, 독점적 소수를 제외한 다수가 빈곤의 틀에 갇혀 버린 종속경제 등의 민중신학적인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2015년 행해진 부산교구의 사회교리학교에서 출애급 사건은 정치적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며 기독교 역사의 전통은 수천 년동안 기독교가 노예의 종교였다는 것을 강조하는 입장과 이를 애써 무시하는 입장으로 나위어져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적 의미에서 출애굽은 죄악의 근본예속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것임을 뜻한다. (1986년 신앙교리성 훈령 자유의 자각 23항 참조) 부산교구의 사회교리학교의 가르침이 해방신학이 아니면 무엇인가? 그리고 설사 그들이 표면적으로 해방신학이라는 표현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그 내용이 해방신학에서 주장하는 것들을 따르고 있으면 최소한 해방신학의 아류이지 무엇인가? 이들이 말하는 ‘진정한 구원을 위해서는 하느님의 창조물인 사회적 구조의 변혁을 성취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해방신학의 주장이 아니란 말인가? 필자는 매일미사 묵상의 글에서 박기호 다미아노 신부의 글을 예로 들어 그들이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질의를 분명히 근거를 들어 논하였다. 분명히 근거를 가지고 말하는 데 아니라면 그기에 따른 뚜렷한 근거와 사례를 제시하여야지 아무 근거없이 아니라고 해서야 되겠는가?

 

“예언직무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가 선동하고 나머지는 수동적으로 동원되는 그런 존재들이 아니다. 대수천은 그런 조직일지 모르지만 이 활동에 참여하는 이들은 모두가 주인 의식을 가지고 신앙의 양심에 따르고 있다.” 필자가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의 행태에 대하여 한 가지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이들은 어떤 사안이 있으면 신부님들에게 이 메일을 보내어 ‘찬성하는 분들은 답변 주십시오’ 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회신이 없으면 이에 서명하신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한다고 한다. 이는 필자가 직접 어느 신부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이것이 모두 자발적으로 주인 의식을 가지고 신앙의 양심에 따르는 것인가? 그리고 신앙의 양심에 따르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님들이 왜 사제단의 명단은 극비로 하며 왜 자신이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이라는 점을 숨기는가? 이는 무얼 말하는가? 이들 스스로도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신자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대수천은 회원들 모두가 나라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여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운영되는 기구이다. 대표라고 해서 무슨 권력을 지닌 것도 아닌데 회원들이 무엇 때문에 수동적으로 마지못해 참여하는가?

 

일부러 가난을 선택한 사제로서 가장 현저한 예는 꽃동네의 오웅진 신부님 같은 예를 들수 있다. 대수천 회원들은 오웅진 신부님이나 이태석 신부님 같은 분을 존경하며 따른다.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은 왜 교황님의 꽃동네 방문을 극력 저지하고 틈만 나면 꽃동네를 중상모략하고 음해하는가? ‘230년 순교의 역사를 가진 교회가 허투루 흐르지 않았음’을 아신다면 제발 길거리에서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 시국미사하는 신부님들에게 자제하시도록 청하시기 바란다. 물론 지금 우리신학연구소가 하는 행동을 보면 이들 신부들과 동류의식을 가진 분들이라 생각되어 그렇게 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되지만 말이다.

 

그리고 주교회의에서 어떤 사안에 판단을 내리려면 전문가의 자문과정을 거친다고 했는데 어떤 전문가의 자문을 얻었단 말인가? 시민단체가 전문가도 아니지만 그들의 결론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어떤 사안으로 인해서 피해자가 발생하면 그 피해를 정부가 온전히 지급하도록 촉구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요 찬성할 일이지만 아예 정책시행 자체를 못하게 막는 것은 문제가 아닌가? 고속철, 송전탑, 사패산 터널, 해군기지, 새만금, 4대강 등 정부정책 사업에 대하여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은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피해자의 권리에 대하여 발언하고 저항하는 것은 당연히 국민의 권리이지만 이러한 곳에서 신부들이 몸소 당사자가 되어 한없이 갈등을 키우고 극렬 저항을 하는 것이 피해자의 권리보상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만일 이 논리대로라면 국민투표는 왜 하는가?” 이 책에서는 주민들의 투표로 결정된 해군기지를 온갖 억지를 쓰면서 막무가내로 반대하는 제주 교구의 교구장 이하 신부들의 반 정부활동에 대하여 쓴 바 있는데 정말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프란치스코 형제가 대신 하고 있다. 주민투표는 왜 하고 민주주의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지 신부들에게 묻고 싶다. 독재시절에 향수를 느낀다고 했는데 현 정부에서 행하는 무엇이 독재인지 구체적으로 짚어서 이야기 해주시기 바란다.

 

분명 책에서도 말했듯이 주교나 사제들이 남북화해를 위하여 노력한다면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이 역시 교리의 범주를 벗어나거나 교회법을 벗어나서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이 14년간 최악의 그리스도교 탄압국이라는 보도가 있으며 5만에서 7만의 그리스도교 신자가 수용소에 갇혀있다는 통계까지 발표되어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북한의 인권에 대하여 일언반구 말도 없이 북한의 선전용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서 평양교구장 서리의 교도권을 어기면서까지 평양에서 미사를 드려야 하는가, 최소한 성체를 신앙의 집약으로 생각하는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사제들의 절반이 마르크스 주의자이자 종북주의자들이라고 믿는다면” 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찾은 말인가? 그리고 국정원이 가만히 있는 이유를 몰라서 묻는가? 박창신 신부를 왜 사법당국에서 사법처리하지 않는 줄 아는가? 이미 신자들로부터 신망을 잃은 썩은 볏집같은 신부는 건드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하느님을 찾으려 교회에 가는 것이지 신부들 보러 성당에 가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어찌 인간의 알음알이로 재려 하는가?” 좋은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씀을 사사건건 세속사에 끼여드는 신부들에게 좀 해주셨으면 좋을 것 같다.

 

또 한가지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의정부의 전 교구장이신 이한택 주교님은 역대 교황의 회칙의 사실관계에 대하여 필자를 지도하신 것이고 그기에 하등의 틀린 부분이 없다. 현직 교구장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노선에 충실하다면 이는 전임 교구장의 노선에도 충실하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 주교님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에 대하여 격찬하시면서 대수천 회원에게도 반드시 일독을 권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인은 이기헌 주교님이 종북 좌파인지 마르크스주의자인지 알지도 못하며 이 책 어디에서도 그런 표현이 없다. 함부로 책의 내용을 마음대로 왜곡하지 마시기 바란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형제가 30년 이상 사회교리를 공부해왔다면 진정한 사회교리의 정신이 무엇인지 잘 아실 것이다. 이기헌 주교님께서 복음적이고 사회교리의 정신에 충실하시다면 앞으로 의정부 교구의 일부 성직자들의 사회교리에서 벗어난 행동에 대하여서는 잘 지도하실 줄로 믿는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대부분의 신부님들, 신자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전하는 대부분의 사제들에 대하여 대수천 회원들 역시 지지와 존경을 드린다. 다만 김현희를 가짜로 몰고 전국을 돌면서 대통령 퇴진시국미사를 하면서 심지어는 대통령에게 저주와 막말까지 내뱉는 일부 정치사제들에게 대하여 절제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신학자들을 비난하는 책에 감수자로 나선 주교 몬시뇰 사제가 이시대의 예언자여야 할 터인데” 하는 표현은 전적으로 틀린 표현이다. 주교님이나 몬시뇰 님은 대부분의 사제, 성직자들에 대하여 애정을 가지고 계시며 좌파들처럼 편가르기 하기 위하여 이 책을 감수하신 것이 아니다. 다만 필자의 어떤 물음에 교리적으로 신학적으로 답하시면서 자문하신 것이다. 무엇이든지 자신들에게 조금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편가르기하면서 적으로 돌리는 그 버릇부터 고치시기 바란다. 이 책은 ‘교회가 인가한 출판물이 아니다’라고 하는데 필자는 교회가 책을 인가하는 제도가 있는지를 알지 못하며 이에 대하여는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학문을 위하는 것인지 사회교리는 어떤 맥락에서 어떤 자세로 하는 것인지’ 프란치스코 형제께서도 배우시기를 바란다.

 

 

 


입력날짜 : 2016-03-03 (03:55), 조회수 :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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