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 자 부산교구의 주보에는 조욱종 신부의 글 ‘속된 표현과 상식적인 반응’이라는 글이 실렸는데 그의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국가의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기준으로 한 나라의 정치제도를 구분하면 민주주의, 독재주의로 나눌 수 있고 경제체계를 기준으로 구분하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눌 수 있다. 국가의 권력이 일반 국민에게 있으면 민주주의요, 개인이나 일당(一黨)이 국가의 권력을 독점하고 있으면 독재주의이다. 일반적으로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사람을 속되게 ‘빨갱이’로 부른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반독재를 외쳐도 ‘빨갱이’라고 몰아 붙인다면 이는 개념이 없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한 가지는 분명하게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다른 시민단체의 논객들은 어떤지 모르나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대수천)의 회원들은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들에 대하여 종북사제(從北司祭)나 정치사제로 칭하였을망정 ‘빨갱이’로 칭하지는 않았다. 또한 민주주의는 하나의 사상체계가 아니라 의사결정 제도를 뜻하므로 Democracy의 정확한 번역은 민주체제이며 마찬가지로 독재주의도 독재체제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조신부가 지칭하는 독재는 어느 정부를 말하는 것인가? 만약 2300만 인민을 혹독하게 착취하며 이들에게 고통을 안기고 있는 김정은의 독재에 반대한다면 이는 ‘빨갱이’가 아니라 당연히 애국지사(愛國志士)로 불리어야 한다. 그리고 40년 전 유신체제(維新體制) 하에서 신부님들이 반독재를 외쳤을 때 어떤 교우도 신부님에 대하여 ‘빨갱이’, ‘종북사제’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유 민주체제를 배격하고 북한의 공산 독재체제를 따르기 위하여 현 정부가 독재, 유신회귀, 공포정치를 펴고 있다고 주장하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들이 있다면, 이에 대하여 ‘종북사제’라고 표현하는 것은 통찰력 있는 판단이지 개념 없는 주장이라고 할 수는 없다. 북한의 조국통일전선은 1945년 10월 북한 정권 수립 이후 한차례도 한반도 적화야욕을 버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의 예를 들면 김인국 신부를 위시하여 12명의 신부가 10월 23일부터 27일까지 북한을 방문하고 귀국한 뒤 한동안 뜸하던 정치사제들의 길거리 미사가 교과서 국정화와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명분을 걸고 시청 앞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11월 15일 서울의 광화문 일대를 무법천지로 만든 거의 테러에 가까운 과격시위에서 이들의 목적은 최종적으로 정권의 붕괴임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이러한 진보연대의 ‘민중총궐기’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같이 연대하는 단체가 그리스도교의 성직자로 구성된 정의구현사제단이다. 이들 진보연대가 내거는 3대 테마는 자주, 민주, 통일이며 자주라 함은 반 파쇼이고 그 대상은 미 제국주의(帝國主義)이다. 이들의 타도 대상은 파쇼 정부와 외세와 결탁한 매판자본(買辦資本), 반동관료이며 연대해야 할 대상은 노동자, 농민, 빈민 등의 무산계급이다.
11월 초에 김포의 한 고교에서 여학생이 ‘이 사회의 구조와 모순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프롤레타리아 레볼루션(무산계급 혁명)뿐입니다’라고 말해 사람들을 경악하게 하였다. 지금 웃을 일이 아닌 것이 이미 전교조들이 장악한 학교에서는 이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여학생이 공산혁명을 해야 무산계급이 살 수 있다고 외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 신부표현을 빌리면 ‘개념 없는’ 신부들이 무산계급 혁명의 미망(迷妄)에 빠져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편가르고 계급투쟁에 몰두함은 종교계(宗敎界)마저 계급투쟁의 허황된 논리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교과서 역시 나라의 정통성을 합리적으로 서술한 보수적인 교과서 채택은 2300여개 고교 중 부산의 부경고등학교 만이 유일한 지경이다. 김정일의 농담인지 탄식인지 모르겠으나 한반도는 ‘적화는 되었는데 통일은 되지 않은’ 이상(異常)한 상황에 놓여 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 162명은 2003년 11월 KAL폭파범 김현희를 가짜로 몰았으며 뒤에서는 김현희에게 TV에 출연하여 자신이 가짜라고 밝히도록 회유하는 천인공노할 악행을 저질렀다. 사제단의 신부 162명 중 여태까지 김현희에게 사과한 사제는 한명도 없었지만 이들은 성직자로서 양심의 가책도 없이 신자들에게는 회개와 반성을 말하고 있다. 수원 교구 조한영 신부는 2014년 1월 6일 기산성당에서 거행된 대통령 퇴진 시국미사에서 ‘박근혜 율리아나 자매는 하느님 앞에서 회개하고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말하며 마치 나이어린 평신도에게 하대하듯 막말을 퍼부었다. 누가 누구에게 회개하라고 말한단 말인가? 자신들이 NLL과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며 보안법철폐, 미군 철수를 부르짖은 과거는 잊고 반독재를 외치는데 ‘빨갱이’소리가 왠말이냐?고 항변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철면피(鐵面皮)함과 무개념(無槪念)의 절정(絶頂)을 보는 듯하여 씁쓸하기까지 하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들은 왜 이처럼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어떤 경위로 이처럼 뻔뻔스러워졌을까? 필자는 그 연원(淵源)을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들이 자라온 환경과 결핍에서 찾고자 한다. 신자들의 말을 듣고 종합해보면 강론 시간에 부자를 저주하고 빈민을 부추기는 정치사제들은 거의가 어린 시절 가난했거나 불우하게 자란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엇인가 화려하고 풍요롭고 남들이 감탄하는 것을 보면 이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적개심과 분노를 느낀다. 인간의 탁월해지고자 하는 노력에 힘업어 부(富)를 이룬 것에 대하여 이들은 배아픔을 느끼며 풍요로움에 대하여 소비의 무절제, 물신주의(物神主義)의 악령(惡靈)이 지배하는 사회 등으로 목소리를 높이며 비난한다. 이들은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에 대하여는 무언가 자신들과 비슷한 정신을 가졌을 것으로 짐작하고 동류의식(同類意識)을 지닌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는 증오심(憎惡心), 적개심, 시기심을 부추기며 이러한 심리에 편승하여 계급투쟁을 선동한다. 노동자, 농민이 주인이 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기도(企圖)하는 복음이 민중복음(民衆福音)이요, 이러한 세력의 집합이 정의와 평화를 부르짖는 천주교회 내의 정의구현사제단이다.
쿠바,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오늘 날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가를 직시한다면 이들의 궁극 목적은 풍요로운 사회가 아니라 가난으로 찌든 모습의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이들은 가난한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강변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자본과 기술이 전무한 폐허에서 엄청난 어려움 끝에 일군 경제 성장과 번영에 대하여 이들은 민족과 민중을 억압한 암흑의 시대였다고 폄하하고 강변한다. 민주화 역시 이러한 번영의 기초위에 이루어진 것임을 이들은 부인한다. 이들은 가진 자들의 풍요로운 모습에서 말할 수 없는 열등감과 배 아픔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들이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세속의 명예욕에 사로잡혀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날뛰는 모습에서 이 나라의 불행이 배태되고 있다. 안된 이야기이지만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들에게서 평신도의 존경을 불러일으킬 만한 영적인 감화력이나 신학적인 소양은 똥개 목에 진주만큼이나 찾기 어렵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 속은 텅 비어있고 오다 가다가 주워 들은 반독재, 유신회귀, 공포정치, 민중해방 등 운동권, 반국가(反國家)세력들이 지껄이는 몇 마디외에는 머리 속에 든 것이 없다. 그러니 이들은 텅빈 머리 속에 겨우 쑤셔넣은 이 몇마디 말로 자신들과 같은 삼류 인생들로부터 ‘예언자’ 소리나 듣고 사는 것에 인생의 보람을 느끼는 저질군상에 불과하다. 이들 저질인생들에 대하여 ‘빨갱이’나 ‘종북’ 소리를 퍼붓는다고 하여 무개념의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