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국군의 날은 6‧25전쟁 당시 국군이 반격하여 수도서울을 탈환한 뒤, 북진하여 38선을 돌파한 날을 기념하여 정한 날이다. 그리고 국군의 날에 이어 천주교회는 10월 첫주일을 군인주일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천주교회는 군인주일을 재소자의 날과 더불어 기념하더니 올해에는 재소자의 날이라는 단어는 빠졌다. 재소자란 죄를 지어 감옥에 갇힌 사람으로 국법을 어긴 사람들이다. 어찌해서 국가방위의 의무에 임하는 충성스러운 군인과 국법을 어겨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동열에 두고 군인과 재소자를 위한 기념일을 같이 지낼 수 있었단 말인가? 재소자가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있으므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다는 뜻은 있겠지만 군인은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소외된 사람들이 아니다. 청년들이 나라의 부름을 받아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좌익에게는 감옥에 갇혀 사회와 격리된 것으로 보이는가? 또한 군인주일은 어려움 속에서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의 충성심을 기리고 교우들의 애국심을 함양하는 계기가 되어야 함에도 기껏 군종신부와 장병들을 위한 2차 헌금을 받는 것이 고작일 정도로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그동안 교회의 신자들은 교회의 사회참여라는 명분아래 주로 정부를 비난하는 반국가적인 내용을 가톨릭 언론이나 인쇄물에서 접하여 왔다. 가톨릭 언론이나 교구의 주보 등에서 북한 공산주의와의 전쟁 중 나라를 위하여 희생하면서 충효사상을 몸으로 실천한 충신열사를 칭송하는 글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기 어려웠다. 이는 대한민국의 천주교회가 충신열사(忠臣烈士)들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어찌 보면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장악하고 있는 교회라는 반증(反證)이 된다.
그런 중에 10월 4일 군인주일, 유수일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군종교구장의 담화문은 가뭄에 단비처럼 신자들의 마음에 와 닿는 글이었다. 유주교님의 담화문은 연평해전에서 나라를 위하여 적과 싸우다 산화한 6명의 용사들, 북한의 목함지뢰 폭발로 부상한 수색대원들과 이들을 구한 동료 장병들의 애국심을 극진히 칭찬하였다. 유주교님은 또한 담화문에서 광복 후 70년간 조국이 이룩한 놀라운 경제적 성장과 그 결실을 칭송하였고 연평해전에서 산화한 조타장 한상국 하사는 관통상을 입고도 조타키를 움켜진 채 서있는 자세로 40일 후에 발견되었다고 하면서 그의 애국심을 격찬하고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교구의 주보나 대부분의 성당에서 유 주교님의 담화문이 소개된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가톨릭 신문이나 평화신문에서도 유 주교님의 담화문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조국의 발전상에 대한 찬양과 애국장병들의 충절에 관한 내용은 단 한줄도 소개되지 않았다. 이들 언론은 피상적이거나 오히려 그 취지와는 동떨어진 내용으로 담화문을 설명하고 있다. 평화신문은 ‘군인은 평화가 인류를 위한 우선적 선익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는 피상적인 담화의 내용만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가톨릭 신문은 담화문 말미에 거론한 극히 지엽적인 내용인 ‘최근 군 내외부의 여러 사건으로 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아지고 군의 사기도 저하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군에 대해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형제애가 필요합니다’는 내용을 중요한 부분으로 기사에서 소개하고 있다. 참으로 교활한 편집이요 의도적인 군에 대한 폄훼가 아닐 수 없다. 유수일 군종주교님의 담화문 중 핵심인 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충절과 지뢰사건의 군 수색대원들을 찬양한 내용을 다음에 싣는다. (담화문 전문은 별도로 첨부)
6 25전쟁 중에도 수많은 군인이 조국수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았으며, 이후 최근까지 이어진 수많은 도발과 국지전 속에서도 우리 군인들은 숭고한 희생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최근 영화로 상영되기도 한 연평해전에서도 6명이 전사하고 여러 명이 부상을 당하는 가운데도 모든 장병이 각자의 책임을 다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 싸웠습니다. 특히 조타장 한상국 하사는 관통상을 입고도 조타키를 손에서 놓지 않은 채 전사했습니다. 40일 후 심해에서 발견된 함정에서 그는 조타키를 움켜쥔 채 서 있는 자세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달전에는 군 수색대원들이 북한이 남측에 몰래 설치한 목함지뢰를 밟아 두 명이 중상을 입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저는 이 긴급한 순간 배운 수칙대로 훌륭히 대처하여 중상자들을 즉시 후송해 이들의 목숨을 구한 수색대원들을 칭송하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초등학교 때부터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는 지극히 당연한 가치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전교조의 교사와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들과 같은 난신적자들이 학교에서 또는 신학대학에서 학생이나 후배 사제를 가르치면서 지극히 우려되는 풍조가 나타나고 있다.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면서 조국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의 3대 세습 체제를 정당화하는 내용을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치고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들이 신학대학에서 후배 사제들에게 사회구조의 변혁을 주장하는 해방신학을 가르치면서 이 나라는 50년 만에 모든 것을 이룩한 자랑스러운 조국이 아니라 ‘태어나서는 안 되었던 나라’라는 개탄스러운 인식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 세력이 득세한 역사’로 대한민국 건국 이후의 역사를 깔아뭉개었으며 이런 사고가 마음속 깊이 뿌리박힌 정치세력과 뜻을 같이 하는 사제들이 바로 정의구현사제단이다.
북한은 몇일 전 교육위원회(한국의 교육부에 해당)명의로 방송에서 자신들의 존엄을 모독하기 위하여 남조선 괴뢰도당이 역사의 국정화를 도모한다고 격렬하게 비난하였다. 이미 양식을 갖춘 사람들은 교과서 국정화만이 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 이유는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학생에게 좌익 공산주의 사상을 반드시 심겠다고 하면서 장차 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학생들에게 조국을 배신하고 적을 동경하도록 하는 반역적 역사교육을 학교에서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종북사상에 물든 천주교 사제들이 신자들마저 그들의 반역적인 사상으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제정한 것이 ‘사회교리학교’이다. 이들에게 종교의 사회참여를 이끄는 교회의 가르침, 즉 사회교리를 이용하여 적진에 침투하기 위한 ‘트로이의 목마’가 바로 사회교리학교인 셈이다.
이명박 정부 중 정의구현사제단과 정의평화위원회가 연대한 천주교 연대는 사회교리의 환경논리를 내세워 4대강 사업을 극력 반대하였다. 이들이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이유는 보수정부인 이명박 정부가 이를 행하였기 때문이다. 최근 가뭄에서도 4대강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으나 이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녹조같은 사소한 트집을 잡아서 그 효과를 깎아내리고 있다. 그런데 같은 돈 22조원을 들여 건설한 세종시는 길에서 비용과 시간을 허비하는 등 참으로 재앙수준의 부작용을 공무원에게 끼치고 있음에도 이들은 일언반구 말이 없다.
이들 난신적자들은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를 의사로 칭송하는가 하면 6‧25를 일으켜 수많은 생명을 죽이고 천만이산가족의 가슴을 멍들게 한 김일성에 대하여는 영생을 빈다고 하였다. 제주도 해군기지를 해적기지라고 부르는 신부가 있었는가 하면 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수령독재체제로 한반도를 통일하고자 하는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히틀러의 폭정에 비유한 주교도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북한에서 수령의 노예로 비참하게 살고 있는 2천3백만 북한의 인민들을 외면하고 배신한 난신적자들의 교회가 바로 대한민국의 천주교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