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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어느 영혼의 고백
김원율 안드레아 (송파동)
 

 

 

10월 1일은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소화 데레사)의 축일입니다. 저는 전에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영성에 대하여 소개한 책 ‘인간 데레사와 이웃’이라는 책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고 ‘교만과 허영’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소화 데레사 성녀께서 직접 쓰신 책을 읽어야겠다는 뜻을 갖고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을 사서 지니고 있다가 어제부터야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어린 시절 소화 데레사 성녀의 추억은 한없이 아름다운 메아리처럼 저의 가슴에 울려 퍼졌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비로소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영혼의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 교회는 왜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름다움을 나타내지 못하고, 다른 것에만 정신이 팔려있을까.’하는 슬픔이 저를 감싸는 것을 느꼈습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에 나오는 데레사 성녀의 글에는 다음과 같이 순수함과 아름다움이 녹아있어 읽는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엄마의 편지에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금발의 아기야, 너는 하느님께서 어디에 계시냐고 생각하니?’하고 물으면, ‘저 위 파란 하늘에 계시지.’하고 천사같은 표정으로 시선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는데, 그 모습이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단다. 그 시선 속에는 황홀할 만큼 신성한 그 무엇이 들어 있어.”

 

만일 하느님께서 당신의 어린 꽃에게 따뜻한 햇볕을 아낌없이 주지 않으셨다면, 이 꽃은 도저히 이 세상의 풍토를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꽃은 비바람을 이겨 내기에는 너무나 가냘파서, 온기며 단 이슬이며 봄바람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은혜가 저에게 부족했던 시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련의 눈 속에서도 그 은혜를 찾아내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임금님이 저를 데리고 낚시를 하러 가시는 날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저는 시골과 꽃과 새들을 몹시 좋아했으니까요! 어떤 때는 저도 작은 낚싯대로 고기를 낚으려고 해 봤으나, 그보다는 꽃이 핀 풀밭위에 홀로 앉아 있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묵상이 무엇인지 아직 몰랐지만, 어느덧 제 영혼은 깊은 생각에 잠겨 참된 기도를 드리곤 하였습니다.

 

주일에는 온 집안이 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아빠와 손을 잡고 미사 드리러 갈 때면 아주 즐거웠습니다. 주일에는 보통 날보다 훨씬 더 다정하게 저를 안아 주셨지요. 길 가는 도중이나 성당 안에서까지 ‘아빠의 작은 여왕’은 아빠의 손을 잡고 곁에 앉았으며 강론을 들으러 내려갈 때에는 의자 두 개를 나란히 얻어야만 했습니다. (중략) 강론에 데레사 성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아빠는 제게 몸을 굽히고 가만히 “작은 여왕님, 잘 들으렴. 네 수호성인의 이야기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강론도 잘 들었지만 사실 아빠의 얼굴을 더 자주 보았습니다. 때로는 아빠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눈물이 가득 차,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리실 때도 있었습니다. 또한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영원한 진리 속에 즐겨 잠기기도 하였습니다.

 

그 분이 만드신 모든 꽃이 아름답다는 것, 장미의 화려함이나 백합의 순결함 때문에 작은 오랑캐 꽃의 향기나 들국화의 순박한 매력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을 읽으면서 어릴 때 첫영성체 받으면서 마음이 설레였던 추억도 되살아났으며 언젠가부터 제 마음이 겸손과 순수함보다 미움이나 세속적인 감정으로 가득해져있음을 깨닫고 놀라게 됩니다. 첫영성체를 할 때 금박을 입힌 조그마한 성경책을 받았을 때의 행복감, 수녀님의 사랑을 받았던 추억이 아직도 제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제 영명축일에 ‘주님의 용사 안드레아에게’라고 쓰신 예쁜 상본을 주시던 수녀님은 저에게 바로 성모 마리아같은 분이었습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가르멜 수도원에 입회하여 9년의 지극히 평범한 수도생활을 거친 후 폐결핵으로 24년 9개월의 짧은 생을 마쳤습니다. 그녀의 자서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성녀 역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 것입니다. 저는 이 평범했던 한 수녀가 이토록 ‘프랑스의 수호성인’, ‘교회 학자’, ‘33인의 역사 상 가장 위대했던 성인’의 반열에 올랐던 사실이 놀랍고 불가사의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하느님에 대한 그녀의 지극하면서도 순결무구한 사랑이 담긴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그 비밀을 깨닫게 됩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자꾸만 강경해지려고 하며 오로지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사랑을 잃어가는 요즈음 10월 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축일을 맞이하여 성녀가 쓰신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을 신자 분들이 꼭 한번 읽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첨부> 교만과 허영

-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가르침 -

 

교만과 허영이 지닌 위험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세상이 지닌 갖가지 유혹 중에서도 교만과 허영, 즉 자신이 이웃의 눈에 돋보이려는 욕망을 우리가 극복해야 할 가장 큰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교만과 허영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허영은 외적인 화려함이 있으나 교만은 내적인 화려함을 지향합니다. 영적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교만이 허영보다 훨씬 집요하고 교묘합니다. 따라서 허영보다 교만이 훨씬 다루기 어렵고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교만은 남의 결함을 발견함으로써 자신이 남들보다 영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이에서 만족을 찾는 것입니다. 성직자들도 이러한 유혹에서 자유스럽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도 영적인 교만에 빠진 사람들이 수없이 있습니다.

 

교만과 허영이 이웃사랑에 크게 반대된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교만한 자는 하느님의 기쁨과 너그러운 눈길을 찾지 않고, 그 대신 사람들의 눈길과 찬사에 신경을 씁니다. 이런 영혼은 하느님을 생각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대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합니다. 교만한 자는 즐겨 이웃의 결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가치를 좀 더 부각시키는 데서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성모 마리아의 완덕

 

성모 마리아의 완덕에서 우리가 가장 깊이 느끼는 점은 성모 마리아의 순명과 더할 수 없는 겸손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인류의 여성 중에서 가장 하느님의 은총을 받으신, 여인 중에서 가장 복된 여인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녀, 그리고 피조물의 신분으로써 하늘에 부름을 받아 들어 올려지셨음은 마리아에 대한 우리 교회의 찬사와 존경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잉태시기를 제외하면, 예수님이 열두살 되던 무렵 예수님을 잃으셨다가 성전에서 찾으셨던 일,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바로 전,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첫 기적을 행하시던 일을 제외하면 거의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는 성모님이 이 모든 일을 가슴에 간직하시고 여느 주부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신데 있습니다. 성모님은 단 한번도 자신의 아드님 예수가 하느님과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임을 입 밖에 내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오로지 여느 주부처럼 남편 요셉 성인을 도우고 아들 예수를 키우시며 집 안에서 빨래하고 밥하시면서 평범한 주부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이 얼마나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일인가요?

 

오로지 가난한 영성만을 원했던 소화 데레사 성인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poor in spirit)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오로지 영적으로 가난하게 해주실 것을 하느님께 청하였고 그 표지로 모래알 영성을 지니셨습니다. 성녀는 해변 가에 쌓인 하찮은 모래처럼 사람들에게 밟히면서 잊혀져가기만을 주님께 청하였던 것입니다. 성인은 늘 잊혀지는 영성, 가난한 영성을 갖게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데레사 성녀는 항시 두 가지를 하느님께 청하였습니다. 하나는 이웃으로부터 존경을 받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연약하고 작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의 것은 이웃 앞에 선 인간의 태도이고 둘째의 것은 하느님 앞에선 인간의 태도입니다.

 

이웃의 눈에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을 원치 않고 주위의 시선을 끌려고 애쓰지 않는 것은 곧 자신을 더욱 하느님의 현존 안에 살게 하고 그분 앞에서 자기가 작다는 것을 의식하게끔 이끕니다. 이웃으로부터 불완전하다는 말을 듣고 오히려 기뻐한다는 것은 영적 가난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다면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참된 영광이라는 것은 영원한 것이며, 이에 이르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눈부신 업적을 쌓는 것이 아니라, 숨어살며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듯이' 덕행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데레사 성인이 이를 깨닫도록 허락하신 것은 그녀의 나이가 열 살이 되기 전이었습니다. 또한 참된 영광은 지상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나타납니다. 이를 깨달았음은 데레사 성인이 받은 은총 중 가장 큰 은총이었으며 이 은총은 그녀에게 참된 겸손의 덕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데레사 성인은 자신의 공덕에 의지하지 않고 성덕 자체이신 하느님께 의지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녀가 가진 겸손의 두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의 눈에 숨어 있고 싶다는 소망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도움없이는 연약하고 불완전하다는 자기인식입니다.

 

데레사 성인은 언제나 영원에 대한 큰 갈망, 영생에 비해 이 세상의 기쁨이나 칭찬 따위는 참으로 하잘 것 없다는 신념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이미 아홉살 때에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위대한 성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데레사 성인이 가르멜 수도원을 동경한 이유는 교만과 허영이 지닌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성녀가 되고 싶어서였습니다.

 

가톨릭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성인 33인 중 한 분

 

데레사 성인은 24년9개월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죽고 그녀의 회고록 <한 영혼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자 그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급속도로 세상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대한 짧고 겸손한 이 글이 어떻게 이처럼 영적인 힘을 내뿜게 되었는지 참으로 놀라울 뿐입니다. 그녀의 글은 사람들의 마음을 한없이 감동시켰습니다. 사망한지 28년 후 1925년 그녀는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그녀의 사망 100주년인 1997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성하께서는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포함된 33명의 최고 엘리트 성인에 데레사 성인을 올렸습니다. 또한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에게 교황성하께서는‘교회의 박사’라는 칭호를 부여하였습니다. 오로지 사람으로부터 잊혀지기만을 원했던 가난한 영혼에게 이 얼마나 놀라운 영광입니까? 하느님께서만 알아주시는 작은 희생의 꽃송이만을 바치기 원했던 이 겸손한 믿음에 대하여 이 얼마나 위대한 보상입니까? 우리가 비록 광야에 핀 작은 들꽃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하느님만이 아시는 작은 희생을 통하여 얼마든지 위대한 성덕을 이룰 수 있으며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될 수 있음을 작은 꽃 소화(小花) 데레사 성녀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입력날짜 : 2015-09-27 (19:57), 조회수 :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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