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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서울예수
김원율 안드레아 (송파동 성당)
 2015년 1월, 시청 앞 광장 벤치에는 살을 에는 듯한 겨울바람 속에 초라한 행색의 노인이 앉아 있습니다. 찌든 모습, 인생의 모든 회한이 그의 모습에서 배어나오고 있으나 한낮의 태양같이 이글거리는 눈빛만이 광장의 저편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광장을 가로질러 맞은편 대한문 앞에서는 사제단이 S자동차 회사의 해고자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그 때 자애로운 모습의 초로의 신사가 노인 곁으로 다가와 옆자리에 앉습니다.
 
“형제님에게 평화를!”
 
초라한 행색의 노인은 초로의 신사에게 말을 걸어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습니다. “저는 몇 년전 금융위기를 맞아 제가 다니던 은행을 퇴직하였습니다. 저는 그 후 아이들 등록금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온갖 고생을 했으며 이제는 몸과 마음이 지쳤습니다. 은행 재직 당시 저는 S자동차의 사업성을 검토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회사의 현금흐름을 예측한 결과, 앞으로 2~3년 동안 자동차매출 현금수입이 회사 종업원의 급여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니 은행 이자를 포함한 영업외 비용 지급이나 연구개발은 꿈도 꿀 수 없는 지경이었지요. 원래대로 한다면 회사는 문을 닫고 청산절차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회사가 가진 토지, 재고 등의 잔여재산을 매각하고 매출채권을 회수하면 은행도 최소한의 손실로 회사에 대한 채권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축적된 기술이나 노우하우, 시장개척 가능성 등 모든 요인을 최대한 높게 평가하여 저는 회사를 살리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은행은 부채를 탕감하여 손실을 분담하고 회사 문을 닫는 대신 최소한의 구조조정으로 가능한 회생방안을 마련했습니다. 그것이 고통을 서로 나누어 짊어지는, 우리 몸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최소한의 인원감소를 택한 결과로 은행도 상당한 손실 분담을 해야 했고 이로 인해 은행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했기 때문에 저는 그 후 정든 직장을 떠나서 지금까지 온갖 힘든 일을 하면서 생활을 꾸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길이 고통을 분담하며 위기를 극복하고, 한편으로 회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어려운 길을 갔던 것입니다.” 
 
초로의 신사는 찌든 표정을 지닌 노인에게 묻습니다. “나의 형제여, 그대는 소외된 형제들과 어려움을 나누었고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분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회한이 가득한, 분노의 눈빛을 지니고 있나요?”
 
“지금 길 건너 저 곳을 보십시오. 제 마음을 분노케 하는 것은 평생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고생해본 적이 없는 신부들, 경제에 대하여 쥐뿔도 모르는 정치 사제들이 벌이는 후안무치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들은 정의를 구현한답시고 거의 매일 시청 앞에서 생명을 위한 미사라는 그럴듯한 명목으로 ‘무자비한 「신자유주의」의 횡포,’ ‘재벌독재’,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공권력’ 등 온갖 선동과 저주를 뱉어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른바 기득권층에 대하여 가진 시기심과 증오심이 정의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진정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에 대하여 갖는 적개심과 질투심을 이용하여 사회를 뒤집어엎고 나라를 파탄내기 위하여 온갖 극단적인 주장과 행동을 합니다. 작년 1월, 수원의 한 성당에서는 이 신부들이 부자정권을 끝장내겠다면서 유신회귀, 공포정치를 외치며 자신들이 독재에 맞서는 예언자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대통령 물러나라’고 하면서 입에 거품을 물었습니다. 이 신부들은 북한에 가서 인민들 고혈을 빤 돈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고 돌아와서는 북의 뜻에 맞추어 종북 돌격대가 되어 온갖 사회혼란을 초래함으로써 환멸에 젖은 신자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천원 한 장 벌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신자들의 교무금, 헌금에 의존하여 생활하며 굶어죽을 걱정과는 담쌓고 지내는 인간들이 허파에 바람만 잔뜩 들어가 정의를 외치며 메시아가 된 것처럼 행세하는 데 저는 구역질이 납니다.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적개심과 질투심을 불어넣어 하늘나라 가는 것을 막고 있고, 부자는 저주의 대상이며 계급투쟁에서 타도해야 할 원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찌든 얼굴의 그 노인을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의 눈에는 한없이 자애로운 빛이 감돌았습니다.
 
“형제여, 그들이 아버지의 미사성제를 빙자하여 형제에게 막말을 하고 저주를 퍼붓는 것에 대해 형제가 고뇌하고 마음을 썩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은 악행에 걸맞은 곳, 조물주이신 아버지께서 인간을 이 세상에 내신 후 아버지의 뜻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서 아버지의 이름을 입에 올리고, 정의의 이름으로 불의를 행하며, 평화를 입에 올리면서 미움을 부추기는 악행을 일삼는 자들을 위해 마련된 곳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증오와 미움이 가득한 곳을 찾아서 자기 발로 그곳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나라로 찾아 갈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터럭만큼이라도 깨닫는다면 그들이 그토록 비열한 언행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형제의 간절한 기도가 하느님께 가서 닿는다면 그들도 잘못을 깨달아 사랑과 겸손을 되찾고 다시 하느님 나라로 향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 노인은 뜨거운 감동이 가슴속에서 떠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무엇인가 힘찬 기운을 초로의 신사에게서 느낀 찌든 표정의 노인은 그분 앞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노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나는 서울 예수입니다. 아니 이 세상 모든 곳에서, 그리고 외롭고 힘든 사람의 곁에 나는  현존합니다. 당신은 나의 사랑이 아버지 하느님에게서 왔음을 압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형제여, 당신의 바람이 이루어지고 푸른 양의 해인 새해에 내 자신이 다시 한 마리 양이 되어 악행을 일삼는 이들 사제들을 위하여 한차례 더 골고타 산을 오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의의 이름으로 위선을 행하는 사제들은 아버지께 충실한 종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바람이 먼 곳에서 불어오는 저 바람처럼 당신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고 거룩한 순교자의 땅, 이곳에 다시 하느님 나라가 꽃피게 될 것입니다.”

입력날짜 : 2015-01-12 (18:28), 조회수 :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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