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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기자님의 '사회교리 왜곡하는 박우희 교수'라는 글에 대하여 답합니다
김원율 안드레아 (송파동 성당)
  

한상봉 기자님의 ‘사회교리 왜곡하는 박우희 교수’라는 글에 대하여 느낀 바 있어 몇 가지 의견을 적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 한 기자님이 사회교리에 대하여 상당한 편견에 젖어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글에 대하여 반대의견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고견을 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박우희 교수님은 국가정책사업은 선악의 잣대인 흑백의 논리로 구분할 수 없으며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찬성과 반대가 있을 수 있는 분야라는 뜻에서 회색지대(Fuzzy area)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폭력으로 다른 사람을 해친다면 누구나 이를 악으로 판단하여 이에 대한 법적인 제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사람들에 따라서 판단과 가치가 다른 분야가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4대강 사업, 밀양 송전탑, 제주도 해군기지건설은 선악의 논리로 옳다, 그르다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정부의 정책과제에 대하여 일방적인 선악논리에 빠져 국가 기간산업의 건설을 끝간데 없이 반대하는 신부님, 수녀님들에 대하여 박 교수님은 흑과 백의 논리로 재단할 것이 아니라 차분히 한발짝 물러나 영성의 성숙에 이바지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보면 정의구현사제단은 특정 정파의 주장에 편향되어 사사건건 정부의 국책사업에 반대해 왔습니다.


이들이 단지 기도와 미사만 하면서 평화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해군기지의 경우 담을 뚫고 들어와서 공사를 극력 저지하다가 재물손괴죄로 신부가 구속되는가 하면 지금도 공사현장에서 시국미사, 생명 ․ 평화미사라는 명목으로 연좌하면서 공사차량의 진입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밀양송전탑의 경우, 신부님, 수녀님들이 구덩이를 파고 연좌하여 일부 주민들과 함께 극렬하게 저항하였습니다. 시국미사의 ‘시국’은 무엇이며 ‘생명 ․ 평화’는 무엇입니까? 중국 대륙에서 떠돌며 굶주림 속에 꺼져가는 생명을 지키려는 탈북자의 눈물을 닦아 준 적이 없는 사람이 생명의 귀중함을 알며 ‘평화의 섬 지키기’라는 구호만 외치고 있으면 주변의 강대국으로부터 저절로 나라가 지켜진단 말입니까? 생명을 위한 헌신과 인내에는 터럭만큼도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 마음이 결코 평화스럽다고 할 수 없는, 적개심과 분노로 가득 찬 사람들이 입으로 외치는 생명 ․ 평화가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기자님은 4대강 사업과 국정원 사태에 발언하고 서명한 사제들이 45%에 이르는데 어찌하여 ‘소수사제들’ 이냐고 강변하시는데 그러면 이들이 다수입니까? 그리고 45%라는 숫자는 어디에서 나온 수치입니까? 수 만명의 신자들이 서명하였다고 하지만 이들이 540만 평신도의 몇 %입니까? 형제들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하신 교황님의 말씀은 아픈 형제를 위로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라고 물었을 때 나는 당연히 위로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교황님이 다녀가신 후 갑자기 정의평화위원회가 세월호 유족들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어야 한다면서 정평위 명의의 보도자료를  배부하고 전국 신자들로부터 서명까지 받고 있는데 교황님의 ‘고통 앞에서 중립이 없다’는 말씀이 이런 것까지 하라고 가르치신 겁니까?


프란치스코 교황성하께서 사도적 권고에서 말씀하신 ‘길거리에서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는 교회 안에서 안락하고 평온하게 머물지 말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나 콜가타의 데레사 복자처럼 (‘복음의 기쁨’ 183항) 빈한한 자들과 함께하는 삶을 이야기하신 것이지 길거리에 나가서 '대통령 물러나라'는  시국미사하라고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박 교수님은 이러한 의미에서 김 추기경님이나 교황님이 선을 지키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교리는 철저하게 ‘가난한 이들의 시선’으로 읽어야 한다? 사회교리는 하늘에서 뚝 떨어져 성경과 유리되어 존재하는 교리가 아닙니다. 성경말씀을 예로 들어봅시다. 레위기 19장 15절에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저질러서는 안된다. 너희는 가난한 이라고 두둔해서도 안되고, 세력있는 이라고 우대해서도 안된다. 너희는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무조건 두둔하는 것은 성경에서도 엄연히 불의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산업사회의 대두와 함께 산업화와 연결된 사회경제적 명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성경의 복음적 가치에 기반한 윤리적 성찰을 이끌어 낸 것이 사회교리입니다. 교황 레오 13세의 ‘새로운 사태’는 탐욕스러운 부자들에 대한 경고와 함께 가난한 이들의 질투를 불러 일으키면서 사유재산을 없애고 이를 공유화하자는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은 자연법과 정의에 어긋남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사태’ 회칙은 세상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사회주의자들의 불평등을 없애기 위한 노력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고 갈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이 부유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은 성격상 끝없이 투쟁하기 마련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이성과 참된 진리에 완전히 상반되며 투쟁 없이도 계층간의 화목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구원은 내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며 계급투쟁을 부추기면서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는 해방신학의 추종자들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한 대목입니다.


이 모든 사회교리가 철저하게 ‘가난한 사람들 시선’에서 사태를 보라고 가르쳤습니까?  그리고 정의구현사제단이 자신들만이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오도하고 있으나 상식을 지닌 신자들은 부자에 대한 증오심을 가난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위장하는 것과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사랑을 구분할 줄 압니다. 기업가와 공권력에 대하여 가난한 이들의 증오심을  키우려는 의도에선지 한 기자님은 ‘실업의 아픔으로 자살하는 노동자들을 ‘적’으로 돌려온 것은 기업과 공권력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거짓 선동입니다.


쌍용차는 공권력이 개입하기 전에 개인기업이 경쟁에서 뒤쳐져 망한 것입니다. 쌍용차 문제는 2000년부터 약 10년간 회사의 인건비는 배가 오른데 반하여 자동차 판매대수는 극심한 경쟁으로 거의 절반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문을 닫는 대신 회사재건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을 택하였고 인도의 자동차 그룹 마힌드라 사 등의 외국자본을 받아들여 회사는 지금 정상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업의 고통과 생활고로 자살한 사람이 생겨난 것은 분명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를 어찌하여 노동자를 ‘적’으로 돌리고 인명을 경시하는 기업, 공권력의 탓으로 돌리는지 저는 한 기자님의 양심이 의심스럽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금년 1월 해외순방 중 인도의 마힌드라 회장에게 해고자 전원의 이른 복직을 특별히 부탁하여 긍정적인 답변까지 얻어 내었습니다. 대책없이 쌍용자동차에 대한 국정감사를 논하면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외국인 투자를 막는 얼치기 진보들과는 다른 책임있는 모습을 대통령은 보였습니다. 한 기자님은 ‘세월호 유족들의 호소를 외면하고 대화를 거절한 것은 박근혜 정부였다.’고 말씀하셨는데 해양수산부 장관이 일상의 정무를 포기하고 진도에서 유가족과 침식을 같이 한 것은 그러면 무엇입니까?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에 유가족이 동의한 것은 정부, 여당의 설득과 대화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유신회귀, 공포정치, 독재 등 언제나 거짓으로 시대의 이미지를 조작하는 것이 당신들의 특기입니까?


그리고 박 교수님께서 하신 ‘해군기지가 훗날 관광명소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은 미래 해군기지의 이점을 말씀하신 것인데 이를 고통받는 노동자가 훗날  천국갈 수 있으니 주저앉으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대단한 논리의 비약입니다. 그러니 ‘고통받는 노동자들은 주저앉지 말고 반정부 투쟁에 합세해주세요’ 라는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 행복선언에서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그들이 현세에서 자신의 고통의 십자가를 달게 받으며 시련을 이겨낸 공로로 하늘나라가 저들의 것이다 하신 성경말씀은 사회교리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말씀인가요? 지금 예수님께서 다시 세상에 오신다면 이들 사제단에 대하여 ‘너희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적개심과 질투심을 불러 넣어 천국에 가는 것을 막았으며, 부자에 대해서는 기득권자이며 계급투쟁의 적이라고 저주를 퍼붓는 악행을 저질렀다. 신자들이 백방으로 뛰면서 불러 모은 형제들은 저주와 막말로 가득 찬 강론으로 모두 흩어버리고 있다. 이 악행을 일삼는 자들아! 나는 너희들을 알지 못한다. 악인들을 위하여 마련된 곳으로 가거라!’ 라고 말씀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토마스 머튼의 단상을 장황하게 예로 들면서 보수주의자들을 폄하하시고 계신데 예를 잘못 드셨습니다. 지금 한국의 보수주의자들 중 그 누구가 피부 색깔에 따른 차별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저도 토마스 머튼의 책(칠층산, 영적일기 등)을 읽은 적이 있고 그분의 영성을 묵상한 적이 있습니다만, 지금 토마스 머튼이 살아 돌아온다면 과연 누가 착한 사마리아 인이고 누가 사악한 사람인지는 확연히 구별할 것입니다. 수용소에서 3-4개월 된 유아를 사나운 개에게 던져주어 죽게 만드는 인간세계에서 가장 포악한 집단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는 집단이 누구입니까? 엄동설한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떨다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어린 꽃제비들, 중국대륙을 공포와 배고픔에 떨며 방황하는 탈북자들에 대하여 조금의 연민과 사랑도 없이 침묵하는 사람들이 과연 누구입니까?


“사회교리에 대해서는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은 경우가 있다?” 제가 바로 이 말을 한상봉 기자님께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한마디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한 기자님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는 신학자도 아니고 평신도이지만 틈날 때에 레오 13세 및 그 이후의 교황님 회칙이나 ‘간추린 사회교리’ 책을 보면서 사회교리는 정말 엄청난 분야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신학, 철학, 인문학, 사회학, 경제, 정치 등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이 사회교리에 참여하였고 사회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문학, 사회학, 신학에 상당한 소양이 있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교리에서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뭉뚱그려 번역하지만 실제 원문은 인간과 인격을 구분하고 있으며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한 기자님께서 사회교리에 대해 얼마나 아신다고 감히 박 교수님께 ‘어슬프게 아는 것보다 차라니 모르는 편이 낫다’고 일갈하실 수 있습니까?


그리고 신자들이 강론시간에 4대강, 해군기지, ‘이석기는 애국자이다’ 등등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이야기로 강론대를 어지럽히는 신부님들에게 차마 직설적으로 말씀드리기 곤란하여 예의상 ‘신부님, 정치 이야기 안 하시면 좋겠습니다.’고 완곡하게 말씀드리는 것을 신부님들은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응으로써 ‘사회교리는 그 내용이 전부 정치에 참여하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하면서 사회교리를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기자님이 서두에서 ‘천주교회 안에서 사회교리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고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으나 한마디로 가소로운 주장입니다. 어찌하여 사회교리가 성경에 앞서서 천주교회의 대세라는 말입니까?


천주교회의 핵심은 하느님의 말씀이 적힌 성경과 초대교회의 교부로부터 내려오는 성전(聖傳)입니다. 엄동설한에 노숙자를 위해서 봉사하시는 형제, 자매님들이 사회교리 박사라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있습니까?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나 콜카타의 마더 데레사가 사회교리에 통달한 분들이라서 평생을 소외받고 병든 이들에게 헌신하셨습니까? 성경에서 하느님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만 바르게 알고 있어도 사회교리를 어슬프게 아느니 마느니 하는 한 기자님 같은 얼치기 사회교리학자보다 백배 천배 사회교리를 훌륭하게 실천하고 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한 기자님께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신앙교리성 장관시절 훈령으로 발표하신 자유의 전갈, 자유의 자각을 장황하게 인용하시면서 박 교수님을 반박하셨는데 박 교수님의 주장 어디에서 ‘해방을 염원하는 민중들을 억누르고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고뇌에 대하여 교회가 응답해서 안 된다’는 주장을 하셨습니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최우선의 선택’에서 해방신학에 대한 경고가 절박한 인간의 불행에 대한 무관심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는 라칭거 추기경님 말씀을 인용하셨는데 덧붙여 말씀드리면 ‘절박한 인간의 불행에 대하여 무관심하기보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이들의 구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할 때 540만 평신도 중에서 이에 반대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자유의 전갈’에서 라칭거 추기경님은 해방신학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헌신에 있어 본질적인 것을 변질시키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최우선의 선택’, 그리고 구원의 복음을 지상의 복음으로 추락시키는 그 사이에 해방신학이 놓여있다 고 하셨으며, ‘해방신학’이라는 이름아래서 그리스도인의 실존에 대한 혁신적 해석이 교회의 신앙으로부터 크게 일탈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무신론과 아울러 인간의 인격과 자유와 권리에 대한 부정이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한 기자님께서는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가르침 중 전체의 맥락은 생략하고 입맛에 맞는 한 구절을 떼어내어 마치 라칭거 추기경님이 해방신학을 옹호하고 계신 듯 구차하게 논리를 펴십니다. 해방신학자들은 심지어 콜카타의 마더 데레사가 ‘가난’ 역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때문에 가난한 자의 부자에 대한 계급투쟁 의식을 약화시켰다고 하면서 마더 데레사를 ‘부자의 성녀’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정의구현을 내세우는 일부 사제들이 마치 자신들만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고 자신들만이 정의로운 양 포장하고 있지 만 이들 중 상당수는 가진 자에 대한 적개심과 질투심이 정의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 기자님께서 말씀하신 ‘사제단이 사회에 참여하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 기도회나 시국미사이다.’라는 대목을 봅시다. 좋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 물어봅시다. 이들이 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이 ‘대통령 물러나라’ ‘국정원 해체하라’ ‘제주도 해군기지 짓지말라’ 이런 것 밖에 없습니까? 그리고 이들이 기도회, 시국미사만 하였다? 한마디로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입니다. 이들이 강정마을에서, 송전탑 저지 현장에서 행하는 물리적 폭력, 그리고 시국미사에서 행하는 저주와 막말의 행태는 책 한권을 쓰고도 남을 지경입니다.


그리고 사회교리 어느 부분에서 해군기지 건설을 포함한 정부 사업을 반대하라고 가르쳤습니까? 교황 요한 23세의 회칙 ‘지상의 평화’(127항)에도 현대무기의 가공할 파괴력에 대하여 경고하셨고 이런 의미에서 원자력이 무기로서 사용되는 현대의 전쟁이 침해당한 권리를 회복하는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수백만을 굶기면서, 핵실험 한번에 수천억의 돈을 써가며 진행되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이를 실어 나르는 미사일 개발에 대하여 반대의 뜻을 나타내어야지 왜 제주도의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합니까?


한 상봉 기자님과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님께 마지막으로 한 말씀드립니다. 사팔뜨기 눈으로 세상을 보시지 말고 눈을 바르게 뜨시고 세상을 보십시오. 그리고 로만 칼라를 걸친 성직자답게, 복음을 널리 전해야 할 가톨릭 언론의 기자답게 세상을 제대로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사랑이 아닌 다른 ‘그 무엇’으로 바꾸려 하시기보다는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십시오. 그러면 가까이 계시는 그리스도 현존의 향기와 그분의 시선을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입력날짜 : 2014-11-06 (13:37), 조회수 :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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