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인 2월 22일 한겨레 신문은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님과 인터뷰한 기사를 특집으로 실었습니다. 기사를 읽고 난 저의 심정은 암담한 느낌이었습니다. 기자는 강 주교님을 이 시대의 예언자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대의 예언자가 아니라 양떼를 고이 쉬도록 물가로 인도하는 참된 목자를 원합니다.
구약의 예언서 18권을 읽어보면 대체로 왕국의 멸망과 유배 시기, 그리고 유배 이후, 유다 민족의 고난의 시기에 예언자들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모스 예언자나 호세아 예언자는 북이스라엘에 대한 주님의 심판을 예고하였고, 이사야, 예레미아, 미카, 스바니야, 하바쿡 같은 예언자들은 우상숭배에 빠진 유다에 대하여 왕국의 멸망을 경고하였습니다. 또한 유배시기에는 하느님의 사랑을 유대 민족에게 일깨어준 위로자로서의 예언자가 있었으며 그들이 에제키엘, 바룩, 오바드야 예언자였습니다. 유배 이후에는 하까이, 즈카르야, 말라키 등의 예언자들이 성전의 재건과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유다 민족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 거짓 예언자 역시 헤아릴 수 없이 출현하였음도 역사적 사실입니다.
참된 예언자의 조건으로서는 우선 그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로 인해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신명기 18장 22절에는 ‘예언자가 주님의 이름으로 말하였는데 그 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는 주님께서 하신 말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였고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예언자를 자처하는 사제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진정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는지 그들이 전한 하느님의 말씀이 앞으로 실현될 것인지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신명기 18장 20절에는 ‘내가 말하라고 명령하지도 않은 것을 주제넘게 내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가 있다면 그는 죽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만약 하느님으로부터 듣지도 않았으면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감히 입에 올린다면 그는 죽어야 한다는 것이 신명기의 가르침입니다.
1월 6일 수원교구 기산성당에서 조한영 신부는 하느님의 뜻을 입에 올리면서 박근혜 씨는 힘없는 이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불공정을 행한다고 말하며, 하느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당신을 기다린다는 헛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그 말씀을 고쳐서 조한영 신부에게 들려 드리겠습니다. 성직자로서 근거 없이 하느님 뜻을 들먹이며 대통령에 대한 심판을 말하는 조한영 신부, 당신에게 바로 하느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내릴 것입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이 백성으로부터 예언자로써 존경받고 있을까요? 제가 정의구현사제단의 한 가지 행적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2009년 1월 용산 철거현장에서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세입자 몇 분이 경찰진압과정에서 화재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철연의 사람들은 전국을 돌면서 철거현장에서 과격시위와 3자 개입 등 선동과 폭력을 일삼았습니다. 당시 철거현장에서 농성자들은 화염병 400개, 염산병 40여개, 쇠파이프 250여개, 골프공 1만개, 새총 20개, 1톤이 넘는 시너 등 폭발적인 가연성 물질을 쌓아놓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진입하자 농성자 중 한명이 화염병을 던졌고 이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여 농성자 5명과 진압경찰 1명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러자 때를 만난 듯이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과격시위에 나섰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전하기 위하여 2009년 2월 3일 자 문화일보를 요약, 인용하기로 합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2일 1.20. 용산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국미사를 열면서 ‘재앙과 파국의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문은 이 명박 대통령을 교만과 탐욕의 노예가 된 어리석은 통치자라고 하면서 막말과 적의로 점철되다시피 하였다. 이러한 말들이 천주교, 정의, 사제의 이름으로 적시한 표현들임이 차마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 전종훈 신부는 (당시 사제단 대표) 현 시국이 유신시대를 연상시키는 독재상황이며 용산 참사는 이명박 정권 1년의 악행의 결과라고 말하였다.
문화일보는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하여 ‘정의’를 참칭해 반정부의 고정 레퍼토리로 삼고 있으며 성직자로서의 품위를 잃은 막말과 맞물려 그 표현조차 비열할 따름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제단의 미사와 시국선언문은 한마디로 간추리면 반정부 전문 시위꾼의 선전 선동이라고 하였습니다. 과연 이들이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박근혜 정부 들어서서도 이들은 분란이 있는 곳에는 빠짐없이 달려가서 시국미사를 행하면서 갈등을 조장하였습니다. 유신회귀, 독재, 인권탄압은 이 명박 정부와 현 정부를 막론하고 이들의 고정 레퍼토리입니다. 그들이 과연 정부의 심판을 입에 올릴 수 있을 만큼 깨끗한 양심을 지니고 있을까요?
지난 해 11월 22일 박창신 신부는 전주교구의 군산시 수송동 성당에서 행해진 시국미사 강론에서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을 부인하여 천안함 유가족의 가슴에 못을 박았습니다. 또한 그는 강론에서 북방한계선을 부인하는 국가 반역적 발언을 하였고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였습니다. 최근 시민단체의 고발로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가 행해지자 자신을 하느님에 비유하는 신성모독 발언을 하였습니다. 자신을 수사하는 것은 하느님을 국보법으로 수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였는데 이는 거의 정신착란 수준입니다.
지금 정의구현 사제단 신부들은 전주교구를 시작으로 수원교구, 마산교구, 서울대교구, 청주교구, 광주대교구, 원주교구, 부산교구 등 전국을 돌면서 대통령 퇴진 시국미사를 열고 있습니다. 수원교구 기산성당에서는 김인국 신부가 나이든 신자에게 ‘이 XX, 손가락을 분질러 버린다. 너 군대갔다 왔어, 총기 번호 몇 번이야. 대봐’ 라는 막말을 뱉어 이 신부가 성직자인지 조폭인지 사람들이 구별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만들었습니다.
강 주교님을 인터뷰한 인권연대 사무국장이라는 분은 사제단 뒤에는 강우일 주교가 있고 강우일 주교 뒤에는 교황이 있고 교황 뒤에는 예수님이 계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강우일 주교를 시대의 예언자라고 칭하였습니다.
작년에 대한민국수호 천주교인 모임이 결성되었을 때 일이 떠오릅니다. 제주도에서 안드레아라는 연세드신 형제분이 올라오셔서 대수천 모임에 참가하셨습니다. 그분 말씀이 ‘자신은 40명이나 되는 사람을 권면, 입교시켜 표창까지 받은 사람인데 강우일 주교가 교구장으로 오신 후 그분의 정치적 행태에 실망하여 지금 냉담 중이다, 그래서 대수천이 결성되어 기쁜 마음으로 찾았다‘ 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주 교구에서 신자들의 상황을 이렇게 만든 분을 과연 이 시대의 예언자라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신자들에게 그런 예언자의 존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신자들이 교회를 찾는 이유는 한마디로 귀결됩니다. 바로 구원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천당 가려고’ 성당 오는 것입니다. 구원이 없이 어찌 교회의 존재가치가 있겠습니까? 진리가 아닌 것은 무언가 말이 복잡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내면의 추함을 감추기 위하여 복잡하고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자신의 주장을 포장하지만 진리는 언제나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신자들이 참 목자를 원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은 자신을 영혼의 구원으로 이끄는 영신적인 목자를 원하지 복잡한 논리로 시대의 정의를 논하는 예언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바티칸 공의회를 들먹이지 않아도, 교황 레오 13세의 노동회칙을 거론하지 않아도 평신도들은 구원의 길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을 희생하며 하느님께서 주신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갈 각오가 되어있는 신자들입니다. 길거리에서 자신들만이 정의로운 양 나발 불면서 대통령 사퇴와 독재타도를 입에 올리는 전문 시위꾼들을 평신도들은 더 이상 원하지 않습니다. 신자들은 복잡한 수사와 미사여구로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혈안이 된 이들 정의구현 사제단 신부들을 분노와 연민의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 사제단은 신자들의 근원적인 물음에 답하여야 합니다. 지금 그들끼리 전국 교구를 돌면서 성당문 닫아걸고 호위보초들까지 내세워 마사참례자 가로막으면서 숨어서 드리는 시국미사가 신자들의 구원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시대의 불의를 외면하는 것은 죄악이다.’라고 하면서 온갖 구실을 갖다 대더라도 이들이 신자들로부터 듣는 호칭은 단 한 가지, 바로 ‘마귀집단’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부분을 지적하시는 두 분 추기경님마저 어둠의 세력을 기르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진정 어둠의 세력은 누구입니까? 이 땅의 신앙인들은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염 추기경님은 ‘시민들이 침묵을 지키는 것은 사제단만큼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주장이 정당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보다 복음적인 방법으로 잘못된 것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면 과격한 주장이 빛을 잃고 결국 사회의 주변으로 밀려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자신이 두드러져 보이고자 하는 자는 결국 비웃음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덧없는 현세에서 세상사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지 못하고 왜 그토록 많은 문제를 일으키지 못하여 안달복달하는지 참으로 딱합니다. 이는 마치 3류 연예 코메디언이 도발적인 언동을 하여 세상을 시끄럽게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지 못하고 말입니다.
오늘 새벽미사에서 제 마음을 끈 성경말씀(야고보 서 4장 14절)이 있기에 마지막으로 여기에 적습니다.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