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정 서울 대교구장님께서 교우에게 보내는 신년 메시지로서 마태복음 5장의 참행복(Beatitude)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행복하다고 하셨으며 또한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이를 중국의 성경에서는 허심적인 유복료(虛心的人 有福了)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즉 마음이 비워져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재물에 대한 욕망과 명예욕이 가득 차 있다면 그 자리에 하느님이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다 함은 자신의 마음이 비어 있어 내세울 내가 없다는 말입니다.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을 전하는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공(空)이 허심(虛心) 즉 ‘마음이 비어 있음’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의 가르침을 8자로 줄이면 色卽是空 空卽是色입니다. 여기서 色이라 함은 정신의 반대인 육신을 뜻하기도 하지만 또한 ‘비어있음’의 반대인 ‘채워져 있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즉 ‘채워져 있음’이 ‘비어 있음’이요, ‘비어 있음’이 ‘채워져 있음’입니다. 내 마음이 비어 있으면 하느님이 그 자리에 들어와서 채워주실 것이며 또한 하느님으로 인해 채워진 마음은 곧 이 세상에 대하여 열려있다는 뜻이 됩니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공’(비어 있음)이라는 말은 금강경에서는 무아(無我) 즉 ‘내가 없음’으로 풀이됩니다. 불교에서 멸집(滅執), 집착을 없앤다는 것은 대상을 붙드는 집착, 그 연결고리를 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대상을 포기하기 이전에 이미 그 대상을 탐하는 내 마음 자체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무아(無我), 공(空), 내 자신이 없어지고 내 자신이 이미 비어져 있으므로 해서 대상에 대하여 집착하는 나의 존재, 나의 마음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는 내 마음이 온전히 하느님께 내맡기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나를 비우는 것은 어렵지만 또한 쉽습니다. 그냥 하느님께 맡기면 됩니다. 대주교님께서도 신년 메시지에서 마음이 가난하다고 함은 겸손한 자세로 나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자리, 그 곳이 바로 신의 경지입니다. 궁극적인 단순함 그것이 바로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은 무한한 단순함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내어맡기면 됩니다. 그런데 자신이 구약시대의 판관이 되고, 예언자가 되고, 자신이 하느님이 되고자 하는 사제들이 있습니다. 지금 재판중인 사건에 사제가 개입하여 판단을 내리고, 선거 중에 누구를 지지하라고 하면서 예언자가 되려고 하고 나의 정의가 남보다 더 의롭다고 하면서 자신이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오만과 독선으로 뭉쳐진 사제들이 우리 주위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들의 거짓과 위선에 가득 찬 반도덕적인 강론 때문에 신자들은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며 탄식합니다. 착하고 양심적인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데도 이들은 터럭만큼도 양심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철면피들입니다.
신자들이 신부님에게 가서 ‘신부님, 정치 이야기 하지 말아 주십시오.’ 라고 말하여도 끝까지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강론시간에 가시 돋친 이야기를 하면서 신자들 속을 긁는 신부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존심과 독선 때문에 지금까지 붙잡고 있던 자신의 잘못된 가치를 놓기가 죽기보다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가시 돋친 독설로서 신자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면서 신자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합니다. 그들은 집착 때문에, 그리고 마음이 가난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그릇된 정치적인 신념을 썩은 신주단지처럼 붙들고 앉아 교회를 멍들게 하고 나라를 파국으로 몰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염없이 태양을 향해 날아가다 밀납으로 만든 날개가 녹아서 바다에 떨어져 죽어가는 이카로스처럼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멸집(滅執) 즉 집착을 버리는 것,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은 이처럼 어렵습니다.
맑은 마음이 아니라 번뇌로 가득한 사제들, 그리스도의 향기를 우리에게 뿜는 영신적인 사제가 아니라 추악한 세속의 명예욕과 오만함에 젖은 사제들을 우리는 지금 길거리에서 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신자들의 마음속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 꿈에라도 생각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이 썩으면 가장 추악해진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지옥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천사가 타락하여 사탄이 되었고 이들이 인간에게 시기심을 심어주면서 세상에 악령이 넘치게 되었고 이러한 악령에 지배된 가라지를 한데 모아서 불태우기 위하여 지옥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고을의 누추한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베들레헴이라는 고을 이름의 뜻은 ‘빵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이 빵이라고 하셨고 내 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신자들이 성당에 와서 주님의 몸을 빵으로 영하는 것은 육신의 허기를 달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혼의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영혼을 채우기 위해 빵집을 찾은 허기진 교우에게 빵집의 봉사자가 영혼을 채워줄 영적인 말씀을 들려줄 생각은 하지 않고 적개심에 가득 찬 마귀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영신적지도자로서 신자들의 비워진 마음에 영성의 보화를 채워 주어야 할 사제가 사탄이 주절대는 것과 같은 증오의 소리나 뿜어대고 있습니다. 이러니 어찌 신자들이 분노하고 절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신 것은 정의에 대한 판단과 심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유로운 마음을 주셨습니다.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로움,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내어맡김의 영성으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자신이 정의롭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로마서10장 10절에서 우리는 주님을 믿음으로써 의로움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주님 안에 우리가 머물고 있어야 우리는 정의로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그리스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자신이 하느님이 되어 남을 단죄함으로서 의로움을 얻고자 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자신이 판단해야 하고 자신이 남보다 정의로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이들을 판관으로 내세웠고 누가 이들을 예언자로 받들었으며 누가 이들에게 하느님을 대신하여 남을 단죄하고 심판하라고 하였습니까? 우리는 마음이 가난한 사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제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이 비어있는 그 자리에 오시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자신들만이 정의롭고 자신들만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선지자인양 행세하는 위선자들의 목소리에 신자들은 분노합니다.
조선의 4대 박해 시절에 어리석은 조정신료들은 천주교를 무부무군(無父無君)의 종교라고 폄하하고 이에 따라 수많은 신앙선조들을 치명케 하였습니다. 지금 바로 그들의 말이 실현되고 있습니다. 믿음의 아버지인 장상에게 하이에나처럼 덤벼들고 전 정부의 정보기관이 정치성 댓글 백여편 달았다고 하여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보고 물러나라고 하는 이들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들이야 말로 조선 지도자들의 천주교에 대한 박해의 근거가 되었던 무부무군의 죄악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4대박해 때처럼 지금이 한국천주교회의 위기라고 합니다. 외부로부터의 박해 때문이 아니라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하면서 하느님 자리를 차지하고 날뛰는 사제들 때문에 한국의 교회가 안에서부터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1월 2일 복음말씀에서 세례자 요한은 ‘당신은 누구요?’라는 물음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라고 답합니다. 나는 단지 하느님의 길을 곧게 내기 위하여 광야에서 외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많은 제자들이 따랐던 그 시대의 존경받던 예언자이었지만 자신을 철저히 낮추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겸손되이 행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날뛰는 사이비 예언자와 싸웁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마귀의 무리와 싸우고 있습니다.
‘빵의 집’이라는 뜻의 고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셔서 자신의 몸을 영혼의 빵으로 주셨던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실까요? 아마 자신의 영광보다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실 겁니다. 하느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영광을 위하는 무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무어라고 말씀하실까요? ‘저주받은 자들아! 이 곳을 떠나 쭉정이들을 위해 마련된 영원한 지옥불로 가거라!’ 고 말씀하시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