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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강론대 정치연설은 교회법 위반.
더구나 ‘거짓주장’ ‘허위선동’ 은 세속적 타락.
이재영 루시아 (단대동본당)
 

인천교구의 열심한 교우가 신앙생활에 해롭다고 생각되는 문제의 간행물을 보내 주어 보았다.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발간하는 ‘정의평화’라는 간행물인데, 부위원장직의 박영일씨가 “교회가 무슨 정치 얘기냐고요?”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쓰기 시작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미사시간에 있어서는 안 될 꼴사나움이 되살아났다고 한다.교회에서 무슨 정치냐며 소리 지르고 삿대질을 하며 대드는 추태다.”

 

강론대에서 정치연설하는 사제가 “추태”가 아니라, 이를 항의하는 신자들이 “추태”란다.  인천교구 정평위의 책임자가 온순하게 참아오다가 항의하는 신자들에게 거꾸로 “추태”의 구정물을 뒤집어 씌우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교회의 간행물이 “거꾸로 뒤집어 씌우는 글”을 게재하는 것을 보니, 그 간행물의 편집방향에 대하여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다.

 

온순한 신자들이 “교회에서 무슨 정치냐”며 불평하는데, 그래도 사제의 인격을 가급적 존중하니까, 그런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왜 강론대에서 거짓을 주장하는가?”

“왜 나라경제를 망치는 것을 정의라고 가르치려 덤비는가?”

“왜 우리나라를 유독 구조적 불의라고 저주하고 세뇌시키려 떠드는가?”

“왜, 대한민국정부에 대하여는 가진 비판을 다하던 신부가, 특히 인권의 날 강론에서, 북한동포의 처참한 인권유린을 언급하지 않는가?”라고

사제에게 말하면, 사제에게 모욕이 될까 걱정되서, “정치표현”을 삼가 하시라고 완곡하고 부드럽게 항의하는 것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서 “거짓,” “나쁜 선동,” “허위의식,” “강도 만나 초주검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가는 여리고 내려가는 길의 사제의 비겁”이라고, 착한 신자들이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있는데, 오히려 이렇게 젊잖게 말하는 신자들더러, 무엇 “대드는 추태”라고?

 

KAL858기 폭파는 조작이고 김현희는 북한공작원이 아니라는 일부 신부들의 주장은 “거짓”아닌가?  인천교구 정평위 간행물 중에 이 “거짓”을 비판하거나 말린 글이 한 군데라도 있었는가?

 

정 추기경께 위선이라고 허위 명예훼손을 한 인천교구 일부 사제들에 대하여, 인천교구 정평위 간행물 어느 한군데서라도 잘못이라고 지적한 일이 있었는가?

 

4대강사업으로 30년이래 최대홍수를 당한 2011년의 피해가, 그보다 훨씬 약한 1998년과 2006년의 홍수피해에 비하여 오히려10분의 1밖에 안되었는데, 그래도 4대강반대가 정의인가?

금년의 104년째 가뭄을 당하여, 4대강사업으로 저수된 물로 그전과 다르게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이 여러 곳 새로 생겼는데, 그래도 4대강반대가 정의인가?

 

이명박 정부를 포함한 그 동안의 대한민국의 경제정책을 유독 구조적 불의라고 욕하는 강론이 습성화된 일부 사제들이 있지만, 현재 한국의 빈부격차는 OECD나라들 중 가정 적다. 무얼 보고 걸핏하면 “구조적 불의”라고 하는가? 북한은 구조적으로 불의한 것이 덜 한가?

 

강론대에서 정치적 문제를 지적 하드라도 제대로나 하는가?

예를 들어 작년 인권의 날 주일에, 인천교구에서, 걸핏하면 대한민국을 구조악이라고 욕하는 일부 사제들 중, 북한동포에게 인권유린을 자행하는 북한 지배층의 구조악과 그 인권유린행위자에게 항의하고 기도하자고 한 사제가 있는지 알아보라.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에 물어보라.

그런 후에 착한 신자들더러 “추태”라는 말을 감히 쓰라.

적반하장, 즉 도둑질한 자가 착한 사람을 도둑이라고 몰아 매질을 한다는 옛말이 박씨의 이런 글을 두고 하는 비유다.

 

세상살이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며 주일에는 성당에 가면 하느님 말씀 듣고 평화스러운 마음을 하느님께 구하는 생각으로 미사에 참여하면, 정구사 신부는 정치연설장도 아닌 미사시간에 얼굴이 벌개져가며 소리소리 지르고 손을 휘저어가며 마치 정견발표 하듯이 한다. 성남에 있는 단대동성당 전에 계시던 이상헌 프로렌시오 신부님이 그렇게 해서, 분심이 들어 강론을 듣기가 역겨워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였다.

일반 신자들도 평신도 사도직이라는 직분이 있다. 잘못하고 있는 신부님을 보면 지적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정평위 부위원장이라고 하는 분이 어디서 누구한테 “추태가 되살아 났다”고 들었는가? “추태가 되살아 났다고 한다”식의 무책임한 말을 하면 안 된다.

아니면 본인이 말을 만들었나?

교회에서 그렇게 한 것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신부님이 옳지 않게 하였으면, 신부님에게 삿대질을 했겠나?

아무런 원인도 없이 신자들이 그렇게 하였다는 말인가?

나는 구교신자로서 지난날에는 신부님들이 참으로 존경스러웠었다.

무슨 이유로 어느 신자가 어느 신부에게 그랬는지 밝혀라.

 

박영일씨는 “국가 폭력이 난무하고 국민의 기본권이 짓밟히던 군부독재시절에 흔히 보던 일이다. 이 정부에 들어 확실히 역사는 이삼십 년 퇴행한 모양이다.”라고 썼다.

 

1961년부터 1988년까지 사이에, 사제의 강론이 정치연설이라 신자들의 항의를 받은 적이 있었는가?

언제 어느 신부가 어느 본당에서 무슨 일로 신자에게 삿대질을 당하였는지 말해 보라. 밑도 끝도 없이 군부독재 시절에 흔히 보던 일이라니.... 이거는 소설도 아니고 말장난을 하지 말라. 이 정부가 들어 이삼십 년 퇴행하였다고 하는데...

자유민주주의제도의 법에 따라 국민이 선출한 정부가 그렇게 미운가?

박영일씨는, 지난 반세기 사이에,  6.25남침(우리 천주교회 일부 사제들, 일부 신자들 중에는 동족의 동족에 대한 침략을 부인하려 남침소리도 싫어하고 그냥 남북전쟁이라고 부르고 싶어하는 잘못된 역사관을 가진 분들이 그렇게 고쳐 부르는 것을 정의와 사랑이라고 하는지 모르지만)의 폐허에서 국민소득 80달라의 최빈국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고생을 해 보았는가?

전세계에서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발전한 유일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어서, 지금 세계사람들의 모범이 된 한국의 경제가, 그렇게 괘씸한가?

개인 살림이나 나라 살림이나 그런 기적을 일구는 피와 땀과 눈물을 생각해 본 일이 있으면, 대한민국을 오늘에 이르게 한 우리사회를 허구 헌 날 “구조악”이라고 욕하지 못할 것이다.  “구조악”이란 공산주의자들이 자본주의사회를 욕하던 구호인데, 소비에트연방과 중화인민공화국이 공산주의의 비참에서 벗어나려 자본주의를 택하였으나, 공산주의 붙들고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현재 처참하지 않은가?

허구 헌 날, 대한민국체제를 “구조악”이라고 읊으면서 지내는 것이 정의롭게 사는 것이라 착각하지 말라.  국민이 합법적으로 지탱하여 오늘의 번영과 가장 적은 빈부격차를 성공시킨 우리의 체제를 그렇게 욕하고 싶은가?  이건 정부에 대한 비판의 수준을 넘어서, 우리 국민을 우습게 보고 욕하는 짓이다.

사람도 장단점이 있듯이 대통령도 잘한 점과 못한 점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잘못하는 일이 많으면 선거로 심판 하면 된다.

왜 정치 경제 법률 과학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전문으로 공부한 일도 없고 경험한 일도 없는 젊은 신부들을 세속화시켜 앞장세우려 하는가?

그런 결과로, 지금 “거짓을 저지른” 일부 사제들더러, 동아일보 사설은 “김현희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청하라”고 꾸짓지 않는가?

 

어느 한쪽의 정당을 지지하는 게 속 들여다 보이는 세속화된 사제들, 현 정부에서 하는 것은 사사건건 욕하는 세속화된 사제들의 모습은 이제 진저리가 난다.

천주교 공식기구인 교구의 정평위 부위원장이라는 직에 있는 사람이 이런 가당치 않은 글을 쓴 것이 참으로 역겹다. 교회 지붕 밑에 들어와 이렇게 편파적인 글을 쓰면 부끄럽지도 않나?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거룩한 미사에 참예하는 신자들이 사제의 강론을 경청해야 하는 교회법상 의무를 이렇게 악용하면 되나?

나는 정치활동과는 무관한 사람이다.  그러나 편파작인 세속강론을 하거나  4대강 반대하는 비디오 자막으로 강론을 대신하는 신부는 반대한다.

 

박영일씨는 “정교분리의 참뜻은 정치권력과 교회권력이 유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국가 권력이 특정 종교나 교리를, 교회도 특정 정파나 이념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라고 썼다.

 

당신의 글을 보니, 당신은 이명박 정부를 강론대에서 공격하는 사제를 잘 하신다고 할 것으로 보인다. 양심에 물어보라 안 그런가?

이것이 “교회가 특정 정파나 이념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당신 스스로의 말과 모순되는 점이다.

교회 안에서 신앙을 말하며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사제가 계시는 성당은 신자들도 날로 증가하고 신앙심도 깊어지는 분위기를 느낀다.

그 동안 정구사 신부가 뻔뻔하게 “거짓” “나쁜 선동”을 감행해 온 성당에서는 신자들이 분열을 하고 냉담자가 속출한 것을 알기나 하는가?

정구사 중에서도 함세웅 신부 같은 신부는 정치(그것도 교회법을 위반하는 짓을 서슴지 않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며, 정상적인 사제의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제의 그릇된 행로를 비판하는 것이 평신도사도직 아닌가? 오죽이나 일부 신부들이 제 본분을 모르고 설쳐댔으면 신자들이 항변을 하였겠나? 천주교를 모르는 외부사람들 중에는, 천주교는 빨갱이 신부들이 좌지우지 하고 있다며? 하면서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나는 얼마 전 친구를 만나러 창원지역을 내려갔다. 저녁식사를 하고 근처에 있는 창원시에 있는 반송성당 (당시 본당신부 이달권) 앞을 갔을 때 기이한 것이 눈에 띄었다.. 성당 정면에 설치해 놓은 큰 전광판에서 4대 강을 반대하는 빨간색의 글씨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성당이 특정 정파나 특정 환경이념세력과 손잡고 선전하는 곳이 된 것을 지나가는 행인이 확인하고 있다. 성당 정면에 전광판이나 돌리고 있는 신부는 환경주의이념운동에 휩쓸려 특정 정파나 이념을 본당신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념을 강요하는 사제의 행위를 박영일씨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특정정파나 이념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자기에게 편리할 때만 쓰면 되나?

 

그뿐인가? 지난번 선거 때 새누리당 후보 부인이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데 산호성당 박창균신부가 가까이 오더니 한나라당은 꼴도 보기 싫으니 나가라며 밀었다고 한다, 그 자매가 내 친구에게 와서 이야기하며 한참 울다 갔다고 한다. 박영일씨께 묻고 싶다. 이런 사제의 태도에 항의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인가?

 

박영일씨는 “일상생활에서 우리 삶을 규정하는 공동체에 관한 모든 결정과 실천이 정치다. 누구도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고 정치를 버릴 수 없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나누고 그들을 섬기라고 가르치신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고 몸과 영혼을 달래주라고, 사회의 빛과 소금이 돼 구조적인 불의와 부패, 억압을 없애라고 명령하신다. 단순히 말과 혀가 아닌 행동으로 옮기라고 단단히 이르신다. 바로 이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이 정치다. 신앙이 믿음을 키우는 양심이고 윤리의 문제라면, 정치는 그 믿음을 실천하는 행동이다.”라고 썼다.

 

박영일씨가 쓴 글은 예수님께서 이세상 정치를 하셨다는 맥락이다. 이는 천주교회의 교리에 어긋난다. “신앙이 믿음을 키우는 양심이고 윤리의 문제”란 또 무슨 소리인가?   교리에 맞지 않는 글을 함부로 쓰고 있는 것이다.

인천교구 정평위의 편집에 문제가 있지 않은가?

 

예수님을 현실정치의 개혁가 내지 혁명가롤 보고 싶어하는 종교인들은 역사적으로 그 예가 꽤 많다.

그러나 그들이 현실정치 개혁 내지 혁명을 하기 위하여 종교를 이용한 행동이나 선전은 모조리 교회와 신앙에 큰 해악을 끼쳤다고 가톨릭의 역사책에 써 있다..

박영일씨가 “예수님은 불의한 권력에 맞서 당당하게 맞서면서 민중의 삶을 보듬고자 자신을 희생했다.”라고 쓴 것도 그 아류이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 가톨릭윤리, 가톨릭사회교의를 우습게 보고 함부로 말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렇게 현실정치의 개혁이나 혁명을 하고 싶으면, 당당히, 인천의 거리, 대한민국 의 광장에 나가, 박영일씨가 좋아하는 민중을 만나면서 정치활동에 뛰어보라.  민주주의는 그렇게 하는 것이다.

성당의 지붕 밑, 종교의 영역에 기어들어와서, “숨은 정치전술”의 침투수법을 쓰거나 세상을 괴롭히는 것을 무슨 정의운동처럼 포장하지 말라.  비겁하지 않은가?

사제는 고귀하지만, 세상의 정치 경제 법률 과학에 관한 전문지식을 깊이 교육받은 일도 없고, 그 분야에서 제대로 경험을 해 본일도 없는 분들이다.

다만 사제들이, 신자들의 존경을 받는 것을 이용하여, 사제들 특히 젊은 사제들로 하여금 그런 분야들의 일가견을 가진 지도자로 착각하도록 아첨하고 아부하여, 이에 착각한 사제들로 하여금 거룩한 미사성제의 필수요소인 강론에서  정치연설을 하도록 유도하는 숫법이 부정직하지 않은가?

길거리나 세상에 나가 무책임한 거짓말이나 허위선동을 하면 법질서의 제재를 받으니까, 종교활동을 보호하는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이용하고, 거룩한 강론대를 악용하려는 사이비 정치인들이 우리사회에 많이 있다.

여기에 놀아나는 사제 분들에게 책임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당신들의 아부와 아첨이 가세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우리교회는 미사의 강론(강론은 거룩한 미사성제의 필수적 요소임)을 사제에게 맡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미사의 강론은 교회법에 따라 거룩해야 한다.

미사의 강론은 신앙의 신비와 그리스도교인의 생활규범을 해설하여야 하고, 교구장이 정한 규범을 지켜야 한다. 교회법에 그렇게 명백히 정하였다.

신자들이 참다 참다 못해 항의하는 것이, 바로 교회법을 어긴 사제의 강론대 정치연설인 것을 당신은 아는가?

베네딕도 16세 현 교황께서는 “강론의 목적을 신자들로 하여금 하느님말씀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삶에서 열매를 맺도록 하는데 두어야 한다. 사제는 성서를 바르게 알고 주의 깊게 강론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씀했다. 신자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강론이다.

강론대를 정치얘기로 어지럽힌 사제에 항의하는 신자들을 “추태”라고 써서, 그런 사제의 잘못된 행로를 측면 지원하는 당신도 교회법 위반을 같이 한 것이다. 인천교구 정평위도 박영일씨 같은 글을 올려서 신자들에게 배포한 책임이 있다.

 

정치가 잘 되어야 사회가 올바로 된다 는 명제만을 놓고 보자.

예수님은 가난하고 헐벗고 소외된 자들과 나누고 섬기라고 하셨다(이 세상의 정치구조를 어떻게 고치거나 정치를 어떻게 하라고 명하신 게 아니다). 우리들은 그러한 그리스도인의 윤리를 몸에 체득하고 살아가야 하며, 그런 윤리에서 살아오고 체득해온 그리스도교 국가의 사람들이 근대민주주의를 만들고, 국경을 초월한 유엔인권을 만들고, 제네바포로대우조약을 만들었다. 

우리의 이웃인 북한동포들이 그렇게 굶주려 수백만이 굶어 죽어 가고 있다는 정보를 가장 잘 접하고 있던 2000년 당시 대통령직의 김대중씨가 수억달라를 김정일에게 공짜로 줄 테면, 굶주리고 병약한 북한의 소외계층에게 먹을 것과 약으로 직접 그들에게 배급되도록 요구해야, 소외된 자들과 나누고 섬기라는 그리스도교윤리에 맞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는 노벨상 받으려는 욕심에서 국민 몰래 돈 보따리를 그런 조건 없이 김정일에게 건네서 결국 북한의 지배층이 핵과 미사일을 만들고 있는데 도움을 주었다. 김대중씨는 가톨릭영세를 받은 사람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도 북한 인권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미국 정치인들의 그리스도교윤리와 이런 정신을 따르는 일본 정치인들의 윤리가 북한인권법 통과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정작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어느 정당의 반대로 아직도 북한 인권법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그 정당에서 북한 인권법을 반대하는 국회의원 중에 가톨릭신자들이 있다.  그리스도교윤리를 배우지 못했거나 역행한 것이다.

요컨대 그리스도교윤리에 충실한 신자가 되라고 강론을 하면 누가 시비하겠는가?

예수님은 정치지도자가 아니다. 전지전능하신 예수님께서도 인간들에게 세속의 정치 경제 법률 과학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지 않으셨고 않으신다.

하물며 전문지식도 제대로의 경험도 없는 사제들이 정치 경제 법률 과학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강론대에서 요구하는 것이 가당치 않다는 것을 성숙한 신자들은 잘 알고 있다.

가톨릭신자의 김대중씨가 몰래 거저 주는 돈을 가지고도 북한동포를 도와주려 노력하지 않은 그리스도교윤리위반, 가톨릭신자인 국회의원으로서 북한인권법의 통과를 막는 그리스도교윤리위반에 대하여, 뚜렷하고도 중대한 윤리위반이라고 인천교구 정평위나 “정의 평화”간행물에서 지적한 일이 있는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내 짐작이 틀린가?

헐벗고 굶주리고 처절한 인권부재의 소외된 북한 동포들을 마주보고서도 그리스도교윤리를 외면한 이런 가톨릭신자 정치인들에게, 이를 지적하는 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교성직자나 신자들의 신앙생활이다.   

이런 것은 덮어두고 “구조적 불의”를 고쳐야 한다고 반복하는 이런 정평위와 “정의 평화” 간행물이 위선이 아니면 어떤 다른 것이 위선이란 말인가?

 

박영일씨는 또 이렇게 썼다.

“그리스도의 뜻을 받들고 실천한다면서 가난한 자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기고 소외시키는 구조적 불의를 외면하면서 말로만 나눔과 섬김을 부르짖는 것은 위선이고 하느님에 대한 배신이다. 무수한 생명과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면서 자신의 패거리만을 챙기는 불의한 정권에 저항하지 않고 침묵하는 일이 바로 정교유착이고 결탁이다. 방관과 침묵은 결국 특권과 반칙을 일삼는 기존 유력자에 봉사하고 힘없는 자를 짓밟게 되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고 소외시켰다고 하는데, 누가 누구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것인지 예를 들어보라. 누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한 것을 구체적으로 지적할 수 있는가?  아마 못할 것이다.

왜 이렇게 현실에 없는 묘사까지 해 가며 선동에 열을 올리는가? 

대한민국 안에서 “무수한 생명과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면서 자신의 패거리만을 챙기는 불의한 정권”이 어느 정권인가?

하기는 북한 지배자들은 최근까지, 남조선에서는 무수한 사람이 굶어 죽어가고 처녀들은 미군의 창녀로 팔려가고 어린애들은 깡통을 들고 구걸한다고 북한인민에게 선전하였다고 보도되었다.

북한의 정권이 북한인민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고 소외시켰다고 지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인천교구 정평위가 북한의 김정일 일당이 처참한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정치범수용소를 운영하는 것을 규탄하였거나 간행물에 쓴 일이 있는가?

들어보지 못했다.

 

“무수한 생명과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혀라.

이명박 대통령이 그랬다는 건가?  김정일이가 그랬다는 건다?

김정은이가 그랬다는 건가?

그리고 어느 공동체가 파괴되었는지 밝혀라. 밑도 끝도 없이 대한민국의 누구인가를 무작정 헐뜯어 선동해 보려는 속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자신의 패거리들만을 챙기는 불의한 정권에 저항하지 않고 침묵하는 일이 정교유착이라고...?. 자신의 패거리들이라면 누구를 말하는 건가?  그렇게 잘못하는 패거리가 있으면 보고만 있지 말고 “정의 평화”간행물에 누가 어떻게 잘못을 하였는지 밝혀보라. 아무런 근거나 사실을 제시도 못하면서 선동의 글을 반복해 쓰는 것은 전체주의자들의 해묵은 수법이다. 나치스의 궤벨스는 허위도 자신 있게 주장하면 진실이 된다고 말했다. 공산당의 레닌은 거짓도 10번 반복하면 대중은 사실로 믿는다고 가르쳤다.

 

박영일씨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하면 성자라 하면서, 가난을 낳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면 빨갱이라고 한다.”는 어느 분의 말을 인용한다.

1960년대, 1970년대의 부라질에서 논쟁되던 것을, 2010년대의 한국에다가 대입시킨다.

만약에 레오13세의 레룸 노바룸에서 인간과 가족에게 필요하다고 제시한 재산권까지 인정하지 않는 구조 즉 이른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같은 구조로 바꾸고자 한다면, 이는 이른바 종북세력으로서 바로 빨갱이다.

박영일씨가 인용하였으니 물어봅시다.

가난을 낳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간접화법을 쓰는 것 같은데, 한번 그 가난이 없어지는 새구조를 간단히 말해 보라. 

말하지 못할 것이다. 왜 말하지도 못할 것을 철없이 함부로 말하는가? 

성당지붕 밑의 간행물이 그렇게 철없는 말을 함부로 손쉽게 쓰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런 간행물에 쓰라고 교무금과 연보를 내는 인천교구 천주교신자들의 입장이 딱하지 않은가?   

신자들이 대들었다는 말을 쓰려면 제대로 쓰라.

누가 “추태”인지 거꾸로 쓰지 말라.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일에 충실하게 땀을 흘리고 일할 때(물론 비판정신이 왕성한 언론인 파고드는 수사기간 열심한 감사기관도 땀을 흘리고 일할 때), 사제도 하느님 신앙과 그리스도교 윤리를 가르치고 솔선하는 생활을 할 때, 우리나라 공동체가 발전하고, 세상 사람들은 좀 더 하느님에 가까워가고, 이 시대에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서 초죽음이 되어 있는 우리의 북한동포들을 구출할 때가 가까워 오리라 믿는다.

인천교구의 대다수 존경스러운 성직자들과 대다수 착한 신자들이 하느님사업에 큰 성취를 이루시는 것에 작은 정성으로 일조하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입력날짜 : 2012-07-03 (03:04), 조회수 : 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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