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거 이 땅에 민주화가 되면 모든 것이 풀리고 만사형통의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국민은 보다 나은 환경에서 더욱 풍요로운 생활을 할 것으로 굳게 믿었다. 그리고 군사독재정권은 먼 옛날의 아련한 추억으로 돌리고 진정 여유롭고 환희에 찬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어찌 된 셈인지 오히려 과거 "군사정권시절에는 지금처럼 살기가 어렵지 않았다" "도대체 장사가 안 되어서 죽겠다" 등등 점점 살기 어렵다는 불만과 한숨의 소리만 팽배하고 어디서도 생활이 나아졌다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왜 그럴까? 군사정부와 민간정부의 무슨 차이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민간지도자 이후 이 나라의 생활은 어려움만 더 해가고 있을까?
이러한 국민의 어려움은 어디에서 연유된 것일까? 우리는 90년대 초 이후 민주화 투사임과 동시에 이른바 문민지도자를 국가원수로 모셨고 이들은 하나같이 역사바로세우기, 제 2의 건국, 동북아시대의 중심국가라는 화려한 구호와 함께 민주화지도자 또는 서민대통령이라는 이미지로 화려하게 집권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국민들의 생활은 오히려 더욱 피폐해지고 궁색해지기만 하였다. 그 이유는 이들이 자신은 욕을 먹을지언정 진정 국민의 영광을 위해 진력한 지도자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들 만의 영광을 내세우는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이름을 후세에 남기겠다는 허망한 욕심에 사로잡혀 국민들을 개혁 쇼의 실험대상, 모르모트 화하여 국민들 중에는 오히려 생활고에 못 이겨 자살하는 사람만 늘어나고 있다.
오늘날 가장 많은 인류에게 존경받고 믿음의 대상이 되는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신,구교를 합친다면 최소한 전 세계에서 20억 이상의 인구가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믿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예수는 33세의 짧은 인생을 살았고 우리의 세속적 관점에서 볼 때 태어남과 죽음에서 후세에 기억될 만한 위대한 그 무엇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베들레헴이라는 이름 없는 빈촌의 마구간에서 태어났고 죽을 때는 강도들 사이에서 비참하게 십자가상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예수의 삶을 위대하게 한 것은 평생을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산 것이 아니라 하느님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온전히 전 생애를 바쳤다는 데 있다. 이는 대단히 뜻 깊은 이야기이다. 예수는 평생 동안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부귀를 누리도록 하라는 유혹을 받았다. 광야에서 40일간 단식기도를 할 때 마귀가 내 앞에 절하면 이 세상을 모두 너에게 주겠다고 하였을 때 예수는 하느님만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야 한다며 유혹을 물리쳤으며 수난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십자가상에서 유혹을 받았다. "너는 세상을 구한다더니 너 자신도 구하지 못하는구나. 지금이라도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내 너를 믿으마."라는 조롱도 들었다. 물론 범인(凡人)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군중을 놀라게 하고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이라 칭하여 다시금 그들을 믿게끔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구원사업을 완결 짓기 위해 끝까지 십자가상의 고통을 달게 받는 쪽을 택했고 이러한 예수의 자신의 영광을 희생하는 겸손과 순명의 정신이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번영을 가져온 것이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받는 유혹은 "오로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유혹"이다.
필자가 왜 이러한 예수의 생애를 예로 들었는가 하면 바로 민주화이후 이 나라에서 지도자로 군림하고 있는 민주화의 영웅이나 개혁 대통령이라는 사람들의 Mentallity(마음가짐)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YS, DJ, 그리고 지금의 노대통령에 이르기 까지 이분들의 한결같은 의식은 오로지 자신들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며 국민의 진정한 복지에는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고대 전설적인 요순시대 요임금이 민정시찰중 백성에게 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을 때 백성은 내가 내농사지어 내배부르면 그 뿐이지 왕과 내가 무슨 상관이냐고 대답해 처음에는 섭섭했으나 나중에는 역시 자신이 정치를 잘했구나 깨달았다는 일화가 있다. 경제를 잘 운용하여 백성이 배가 부르고 잘 살게 되면 국민다수는 다 자신이 유능하고 근검하여 잘 살게 된 것이지 대통령덕분이라는 소리는 하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따라서 경제 챙기기보다는 무언가 엄청난 일을 해서 국민이 환호와 갈채를 보내고 하늘이 놀라고 땅이 감동하는 그런 일을 해야 자신의 이름이 후대에 길이 보존되고 위대한 지도자로 청사에 남을 것이라는 착각을 모든 문민지도자가 하기 때문에 오늘날 나라가 어렵고 국민의 삶이 피폐해진 것이다.
이들에게 <평범한 지도자에 위대한 국민이라는 평을 듣지만 국민이 모두 잘 산다> <평범한 국민에 위대한 지도자라는 평을 듣지만 국민의 삶은 가난하다> 둘 중 어는 쪽을 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이들은 아마도 후자를 택할 것이다. 혹자는 지도자가 위대한데 왜 백성이 가난하냐고 묻겠지만 인도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인도는 20세기에 세계가 존경하는 위대한 지도자인 간디와 네루를 가졌으나 국민은 가난했다.
세계일주여행가 김찬삼씨가 인도 여행할 때 일이다. 허리까지 굽은 나이 많은 노인이 열차에 타려고 할 때 젊은 청년이 고함지르며 달려와서 이단옆차기를 해서 그 노인은 그만 타지도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이를 보고 기가 막힌 김찬삼씨는 그 청년에게 "아니 나이 많은 노인에게 이 무슨 짓이요?" 하고 강력히 항의하였더니 그 청년 왈 "저놈은 수드라란 말이요"라고 답하였다 한다. 이처럼 인도는 뛰어난 지도자에도 불구하고 계급의식과 종교 때문에 도약의 기호를 놓쳤다. 그러나 인도는 한국이 지금 이념전쟁에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네루수상이 세운 인도공대(IIT)의 학생이 인도의 IT산업을 부흥시키고 급격한 정보화를 이룩하고 있다. IIT에서 떨어진 학생이 미국 IVY명문에 입학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서울대학도 평준화시키겠다고 평균론자들이 악을 쓰고 있다.
한국의 민간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자신들만의 이미지가 후세에 위대한 지도자로 남기를 원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천지개벽쇼로 국민이 어리벙벙해하는 것을 보는 재미로 일관하여 나라의 경제는 어려워지고 급기야는 성장동력마저 잃어가고 있다. YS가 집권기간 내내 깜짝쇼로 일관했다는 것은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국민은 그 여파로 IMF경제신탁통치를 받아 노숙자는 집 없이 떠돌고 젊은 여자는 몸을 팔며 부모가 떠난 집에서 어린아이들이 연일연야 배고프다고 울부짖는 참상만 연출하고 말았다. 유식하다는 DJ는 햇볕인지 뭔지 하는 대북 쇼로 거액을 퍼준 대가로 노벨 평화상수상이라는 영광을 누렸으나 국민들은 카드대란의 여파로 400만 신용불량자만 양산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노대통령은 아무리 민생, 경제를 챙겨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인기한탕주의의 개혁 쇼, "우리편 모여라"라는 편가르기, 정치승부수 띄우기에만 골몰하고 차분하게 경제에 전념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있다. 그의 머리에는 어떻게 하면 자신이 위대한 승부사, 살신성인의 지도자로 후대에 이름을 남길 것인가 하는 추잡스러운 욕망으로만 가득 차있지, 경제를 1%라도 더 성장시켜 생활고로 자살하는 국민의 삶을 돌보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없다. 그는 서민대통령이라는 구호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국민이 생활고로 하루에 30명 자살하건 100명이 자살하건 그런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겠다는 이기심으로 가득 찬 문민의 허울 좋은 민주지도자에 비한다면 박정희 대통령이야 말로 참으로 자신의 영광보다는 국민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진력한 지도자였다. 박대통령도 당시 시대상황에서 경제보다는 민주, 개혁, 과거사 청산, 구악일소, 부정축재자 처벌 등 무궁무진한 래퍼토리를 펼쳤더라면 당시 시대상황에서 국민들의 엄청난 지지를 얻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하자" 란 말은 포퓰리즘 측면에서 보면 가장 어리석고 인기 없는 정책일 수 있었다. 이는 당시 한국인의 의식구조에서 보면 더 더욱 그러했다. 지금도 평등, 인권, 환경, 개혁만 내세우면 환장을 하고 오줌을 싸는 인간이 많은 데 그때에는 오죽했겠는가? 지금은 박대통령의 경제 성장의 결과로 대부분 자가용몰고 먹고 살기도 지장 없으며, 자동차, 반도체, 조선, 휴대폰, IT 등 각 분야에서 세계적수준의 기업과 기술을 갖게 되어 우리도 노력하면 잘 살수 있구나 하는 인식이 적지 않게 퍼진 것도 사실이다.
필자가 단순히 박대통령을 예수와 비교한다면 독자 중에는 여기에 또 한명의 수구, 박정희교 광신도가 나왔다고 할 지 모른다. 그러나 여러분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여야 한다. 박대통령이 한 말이다. "나의 혁명은 경제개혁이었다. 인간은 우선 먹고 숨 쉬고 비로소 정치, 사회, 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이를 위해 나를 민족의 제단에 바친다." 박대통령이 단순히 후세에 민주지도자로 남기만을 바라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만 바랐다면 래퍼토리는 무궁무진했다. 오히려 당시에는 이념의 시대였고 열심히 하면 잘 살수 있다는 확신도 없었던 시대였다. 그리고 또 박대통령이 경제성장, 한일회담, 월남파병,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했을 때 국민과 야당은 끊임없이 모질게 반대만을 일삼았다. 당시 고속도로 건설당시 "자가용가진 잘사는 사람들 놀러 다니러 좋으라고 고속도로 건설하느냐?" 며 고속도로에 드러눕겠다는 야당지도자도 있었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인기없는 경제성장 쪽을 택했다. 사람이 잘살면 지도자보다는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지만 정치적으로 근사한 일을 하면 사람들은 환호하고 오줌을 싸고 발광한다. 당시 부끄럽게도 우리의 수준이 그랬다. 지금 아무리 경제를 챙기라고 해도 과거사 청산이니 친일규명이니 정치이벤트에 매달리는 것은 노대통령 뿐 아니라 정치인들이라면 비슷한 멘탤리티의 소유자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40여년전 이념의 시대에 인기 없는, 멀게만 여겨지는 "잘살아보세"를 외쳤다는 것은 참으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100명의 정치가 중 한명에게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아니 더욱 정확하게 말한다면 일만명의 지도자중 한명이 가지기도 어려운 용기요 통찰력이었다. 박대통령이 처음에 재벌을 잡아넣었다가 놓아준 것은 그들의 도움이 있어야 경제성장이 될 것이라는 선견지명이 있었고 정경유착이라는 학자 교수들의 비난을 들어가면서 까지 정경협조체제를 밀어부친 것이 압축성장을 가능하게 한 일등공신이었다.
서구에서는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여 법을 지키며 거대한 부를 쌓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 누구도 질시하거나 시비걸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속으로는 돈에 대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도 겉으로는 부(富)를 비난하고 가난한 선비의 청빈한 삶, 청풍명월을 벗 삼는 것을 고귀한 것으로 칭송하는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가치관이 대세를 이루어 왔다. 그리고 어느 일본인이 쓴 한국인 비판서를 보면 한국인만큼 남의 부에 대해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남이 자기보다 앞서가는 것을 볼 수 없고 그래서 평등주의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아니 심정적으로 거의 전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가장 잘 이용한 것이 노대통령의 "우리 편 모여라"라는 편가르기이다. 미국뉴욕의 유엔총회에 가서 제국주의 운운한 노대통령의 역사인식과 경륜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대학에 갓 입학하여 이념서적 몇 권 읽고 그것이 이 세상 전부인양 착각하는 대학신입생 -그것도 똑똑하지 않은 어벙한 수준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박대통령이 경제성장을 입안하고 중단잆이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릴 때 굶기를 밥먹듯이 했던 배고픔의 생생한 기억이 있었고 일본의 실용주의 교육이 그에게 미친 영향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일본은 국익우선과 실용주의 교육을 우선하며 한국처럼 먹고사는 것을 우습게 여기고 공자와 맹자의 대의만 추종하여야 한다는 이런 교조주의는 발을 붙이지 못한다. 일본의 학숙(學熟)에서 공맹이 10만대군을 이끌고 일본을 쳐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나왔을 때 바로 한 학생이 "선참공맹하고 (먼저 공자와 맹자를 베고) 그리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포로로 하여야 한다. 이것이 공맹의 가르침이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를 가리켜 박대통령은 일본이 유교를 제대로 배운 나라라고 하였다.
또한 군대의 문화가 이러한 실사구시의 경제성장에 크게 이바지한 점을 들어야 한다. 80년대 중반 어떤 미국의 금융가로부터 필자가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한국에서 군사정권이 장기간 계속된 것은 한국에게 대단한 축복이었다." 민간정치가는 추상적인 구호를 나열하기 좋아하나 군인은 그렇게 하면 전쟁에서 전멸한다. 고지를 점령하기 위하여 진격할 때 "동북아시대의 중심국가를 위하여"라고 외치면서 진격하면 부대는 전멸한다. 중대, 소대별로 구체적인 진격루트와 시간을 지정하여 세밀한 작전을 펼쳐야 고지점령을 최소한의 희생으로 끝낼 수 있다. 그리고 언제나 경험의 집적인 안전성있는 검증된 전술과 행동이 쓰여진다. 그러므로 튀는 전술행동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예를 들면 적진에 접근 할 때 언제나 포복으로 접근하는데 영화 람보처럼 뻣뻣하게 서서 가다가는 고지 반도 못가서 전멸할 것이다. 군사정부의 “증산, 수출, 건설” 등 실사구시와 부국강병의 정신 하에서 우리가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그러나 민간정부에서 온통 개혁이니 과거사청산이니 하는 정치 이벤트에 혼을 뺏기고, 무언가 튀지 못해 안달이며 천지개벽쇼나 하려고 하니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오죽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구리정권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겠는가? 이런 불확실성하에서 어느 기업가가 투자하겠는가?
결론적으로 이념지향의 시대상, 자본, 기술 전무의 경제상황, 최근 민간정치가의 예에서 보듯 오로지 자기만의 인기를 생각하는 보편적인 한국정치인들의 정서에서 40여년전 박대통령이 경제우선주의를 내세우고 경제를 번영으로 이끈 공로는 그야말로 엄청난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박대통령의 불굴의 정신위에 이루어진 경제성장의 과실을 향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과거 어느 여자 홍보수석의 말을 들으면 이 말이 바로 정치지도자들에게 보편적으로 내재된 의식의 발로라고 생각된다. "대통령은 21세기에 있고 국민은 독재시대에 있다." 혹시나 대통령께서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신경정신과에 가서 진찰을 받아 보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백성은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프다고 한다. 배가 고파도 과거 조선처럼 위대한 계몽전제군주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는 것인가? 시시하게 먹고사는 문제로 대통령의 거룩한 뜻을 막지 말라는 것인가? 국민에게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는가? 어진 백성은 바보가 되고 배를 곪더라도 대통령만은 위대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아야겠다는 망국적인 욕심을 드러낸 것으로 봐도 되겠는가? 지도자가 진정 국민에게 애정이 있다면 모자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몸을 낮추어야 정상이다. 어느 아빠가 자기 시야를 중심으로 경치이야기를 하다가도 아이가 "아빠, 나는 아빠가 이야기하는 것이 안보여"라고 이야기하면 애정이 있는 아빠라면 당연히 아이의 눈에 눈높이를 맞추어 경치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아들이 자신보다 잘나고 똑똑하다면 진심으로 기뻐하는 법이다. 그러나 자신의 영광만을 생각하는 지도자는 국민이 어리석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자신이 위대하다는 소리를 듣기를 원하지 자신이 어리석다고 하면 불같이 화를 내는 법이다. 필자는 박대통령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박대통령은 자신이 후세에 설사 독재자소리를 들을지언정 국민의 복리민복을 위해 애썼고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한 지도자였다. 그가 말 한 다음 이야기를 마음깊이 음미해보라.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