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7년부터 5년간 계속된 흑사병으로, 유럽인구의 3분의 1가량인 2500만명이 죽었고, 그 병자성사를 맡은 유능한 사제들이 너무 많이 사망하였습니다. 이에 당황한 교회장상들이 성직자로 되지 못할 성격과 지능의 젊은이들을 신학교(오늘의 대학)에 입학시키고, 이들이 교수가 되어서는 그 다음세대의 신학생들에게 다시 부적절한 교육과 훈육을 시켜 신품을 주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점차 많은 성직자들이 세속에 물들어 세속세력과 결탁하였고, 상당수 주교이상의 성직자들도 세속화되어, 급기야 1517년의 루터, 1541년의 칼빈 등 혁명세력의 도전을 받게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행이도 흑사병이전의 도밍고성인, 프란치스코성인을 위시한 분들의 모범과 개혁, 혁명기의 이그나시오성인을 위시한 분들의 개혁으로, 교회는 반가톨릭 혁명세력들을 견뎌내고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1855년에 러시아의 황제에 오른 알렉산더 2세가 농민들의 자녀들에게 광범한 교육을 시행한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대학들에 자치권을 준 데다가 대학생 수의 제한도 풀어서, 아직 대학교육을 받기에는 수준미달의 젊은이들까지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지도자의 인격적 지적 리더십을 배우지도 갖추지도 못한 채 대학을 졸업하여 사회에 배출되었던 것이고, 후진 러시아사회는 산업혁명기의 지식인 직업을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1861년에 농노해방령에 서명한 개혁적인 황제에 대하여, 이런 대학에서 공부한 젊은이들이 “인민의 의지”(Narodnaya Volya)라는 암살음모조직부터 만들었습니다. 1881년에 “인민의 의지” 멤버들이 폭탄투척으로 알렉산더 2세를 살해하였습니다. 부왕을 계승한 알렉산더 3세에 대해서도 암살음모를 추진하던 “인민의 의지”는 결국 발각되어 그 음모자의 한사람인 알렉산더 울랴노프가 처형되었는데, 후일에 러시아 공산혁명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울랴노프(레닌)가 그의 친동생입니다.
1964년에 집권한 노동당 해롤드 윌슨 수상은 영국에 14개의 대학을 신설하고 대학생과 대학교수를 각각 두 배로 늘이게 됩니다. 애초에 대학공부를 할 수 없는 수준의 학생들이 대학에서 제대로 배울 수가 없고, 배우지 못한 채 졸업하여 사회에 진출하니, 사회는 그런 젊은이들에게 대학졸업자에 마땅한 직장을 제공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1960년대에 학생들은 성병을 전염시키고 폭동 연좌항의 등으로 여념이 없었습니다. 70년대 초까지 고등교육은 폭력, 난교(亂交), 그리고 ‘재산은 장물’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풍조’의 노예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대학은 ‘공공문화와 시민정신의 공공기준’을 전파하는데 실패하였을 뿐 아니라 대학사회 자체를 야만적 사회로 전락시켰습니다.”(Terence Kealey)
유럽대륙의 당시 교육도 비슷하여 빈민굴과 비슷한 대학들이 상당수였습니다.
프랑스사람들은 대학이 아주 비참하다고 보고, 우수한 학생들은 따로 그랑제꼴(Grandes Ecoles)로 갔습니다.
1968년 5월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을 점거한 학생들은 “인민대학”을 선포하고 정치투쟁에 들어갑니다.
1968년 3월 안드레아스 바아더(바아더 자신은 그 일당과 달리 대학을 다니지는 않았음)일당은 미국의 전쟁정책을 반대하고 소비문화를 타도하는 운동의 일환으로 서독 프랑크프르트의 쇼핑센터에 불을 지르고 은행강도를 하였습니다. 학생들 일부는 독일전역에 걸쳐 스프링거 프레스 신문에 반대하는 데모를 하였습니다.
1968년 5월 5일에 울리케 마인호프(서독 국방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에 나섰고, 적군파의 일원으로 은행강도 등 범행을 하였음)가 민중반란을 일으킬 때가 왔다는 선언을 합니다. 5월 29일에는 학생들이 프랑크푸르트대학을 점거하고 ‘칼 마르크스 대학’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1968년 6월에 ‘서베르린 자유대학’에서는 남녀기숙사 구분에 반대하는 데모를 하면서 구내를 점거하고 학장의 사임을 요구합니다.
1960년대에 영국 프랑스 서독 등 선진국들의 대학생들과 젊은 대학졸업자들이 데모 연좌항의 등 과격정치운동을 하던 끝에 반사회적으로 타락해 간 이유가 있었습니다. 대학은 인격으로나 지적으로 사회의 지도층을 교육 육성하는 곳이므로, 대학생들은 자기들이 지도자가 된다는 꿈을 갖게 되었지만, 수준미달의 대학에서 잘못 배운 학생들을 사회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분개한 대학생이나 대학졸업자들이 사회에 대하여 적개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2008년 중 우리나라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대학진학률은 86%에 달하였고, 젊은 국민 83.8%가 대학에 진학하였습니다. 2008년 중, OECD의 방법으로 젊은이의 대학진학률을 계산한 바에 따르면, 한국은 71%로서, 미국의 64%, 영국의 57%, 일본의 48%, 독일의 36%에 비하여, 대학에 진학하여 지도자가 되어야 하겠다고 나서는 한국 젊은이의 비율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은 대학을 나와도 직장이 없다고 사회에 대하여 분개합니다. 사회에는 대학을 나온 사람을 필요로 하는 직장이 있지만, 대학을 나올 필요가 없는 직장도 많습니다. 현재 인천 남동공단 같은 우리나라 생산현장에 가면 인력난이 심합니다. 우리 젊은이들의 상당수가 손에 기름 묻히고 땀 흘리는 일은 하기가 싫은 것입니다.
외국인 취업등록자를 한사람이라도 더 할당받으려고 중소기업사장들이 새벽부터 선착순의 줄을 서고 있습니다.
자기보다 나은 사람의 지도를 받아 성실하게 일하는 겸손의 삶보다는, 남을 지도하는 삶을 원하는 젊은이가 더 많다는 점입니다.
여하튼 대학은 지도자의 양성소입니다.
요사이 우리 젊은이들 중에 나꼼수 같은 자들에 찬동하고 그 주변에 모여서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학에서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 햇빛 아래서 당당히 주장할 만한 글을 쓰거나 토론을 발표하는 대신, 오밤중에 촛불이나 들고, 여러 사람의 고함 속에 편승하는데 자신을 맡기는 젊은이들이 꽤 많습니다. 대학을 나와도 부실한 공부밖에 못하여 사회가 직장을 마련해 주지 않는 것에 대하여 화를 내는 젊은이들, 대학을 나왔지만 잘못 배운 탓에 사회가 자기에게 귀를 기우려 주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개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아주 많습니다.
2012년 1월 15일자 가톨릭신문의 방주의 창이라는 난에 김 모 신부님이 ‘한. 미 FTA라는 굿판, 당장 치워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성전안의 장사꾼들을 몰아내시는 예수님(요한복음 2장 14장 15장)을 인용하면서, 성전 안에서 가축을 파는 자들, 환전상들을 2000년 전의 굿판이라고 쓴 다음,
“이러한 부정한 굿판이 이 시대에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더러운 굿판이 바로 다국적 기업을 등에 업은 미국과 체결한 한.미 FTA입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은 FTA라는 더러운 굿판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복음’으로 선포하고 가난한 나라를 대상으로 상도를 어기고 불의한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2011년 현재 캐나다, 멕시코, 이스라엘, 요르단, 칠레, 호주, 모로코, 싱가포르 콜롬비아 ... 등이 미국과 FTA를 맺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 대부분의 국가들이 FTA를 맺기 전보다 더 처참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캐나다는 벤쿠버 경우 최근 3년 사이에 노숙자가 2배 늘었습니다.” 라고 구체적으로 열거하고서, “처음부터 잘못된 한.미 FTA라는 더러운 굿판 당장 걷어치워야 합니다. 정치인들이 못하면 우리 민중의 힘으로 ... 뒤엎어야 합니다.”라고 썼습니다.
무역은 경제 산업 문화 법률이 서로 다른 나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품과 용역의 교류이므로 상당한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도 신중을 기하여 논하는 분야입니다.
김 신부님은 FTA 즉 자유무역협약을 ‘더러운 굿판’이라고 단정하셨는데, 그것은 너무 단정적인데다가 ‘형용사적’ 표현입니다. 사회과학적 현상에 대하여 형용사로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뿐더러, 스스로의 견식으로 사실과 인과관계를 밝힐 자신이 없다는 표시가 됩니다. 그리고 나라와 나라사이에 오랜 절충 끝에 도달한 중대한 협약을 두고 ‘더럽다’고 흥분하는 것은 냉정을 잃은 태도입니다.
신학교에서 그런 표현이나 태도는 가르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김 신부님은 “미제국주의자들은 FTA라는 더러운 굿판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복음’으로 선포하고 가난한 나라를 대상으로 상도를 어기고 불의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꽤 오랫동안 미국과 자본주의(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와 똑 같은 것임)를 욕하는 수법을, 김 신부님이 그대로 쓰고 있는 점입니다.
1917년부터 70여 년간 자본주의를 욕하던 러시아와 중국이 자본주의를 채택하여 공산주의의 비참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 대신 쿠바와 북한이 자본주의로 개방하지 못한 채 백성들을 너무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현실을 아직도 외면하는, 시대착오의 슬로간입니다.
신학교에서 이렇게 때 늦은 마르크스주의 슬로간을 가르치지 않았을 텐데, 김 신부님이 어데서 이런 글귀를 배웠는지 궁금합니다.
김 신부님은 “캐나다 멕시코 이스라엘 요르단 칠레 호주 모로코 싱가포르 콜롬비아 ...등(김 신부님이 인용한 콜롬비아는 미국과 2011년 11월 21일에 체결된 채 아직 시행되기 전의 나라임) 미국과 FTA를 맺은 대부분의 국가들이 FTA를 맺기 전보다 더 처참한 상황이 되었습니다”라고 단언하는데, 이는 사실과 틀립니다.
캐나다 호주 이스라엘 싱가포르는 전 세계적으로 부유한 선진국에 속합니다. 멕시코 칠레는 중남미대륙 나라들 중에서는 비교적 잘 살게 된 나라입니다. 요르단 모로코는 중동국가 중에 석유자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산유국보다 경제를 잘 운용하는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들을 놓고 거꾸로 미국과 FTA를 맺어 ‘처참한’ 나라가 되었다고 우기는 분이 바로 김 신부님입니다.
이렇게 거꾸로 허위를 선전하는 것도 수십 번 반복하면 진실처럼 된다고 가르친 사람이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이었습니다.
신학교에서 이렇게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처럼 주장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김 신부님은 “캐나다는 벤쿠버(밴쿠버) 경우 최근 노숙자가 2배 늘었습니다”라고 썼습니다. 많은 게으른 사람들이 밴쿠버 밖의 농촌에 나가 농사일을 하면 상당한 노임을 받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도시로 알려진 밴쿠버에 들어와 ‘노숙의 자유’를 행사하고 있습니다. 홈리스(homeless)에는 식사와 난방을 제공하지만 술 담배를 못하게 하는 건강규칙을 시행하는 보호소 거주 홈리스가 있고, 술 담배를 자유롭게 마시고 피울 수 있는 스트리트 홈리스가 있습니다. 그래서 밴쿠버 홈리스가 유명합니다. 북한지역에서 집에 들어가도 굶주림에 사경을 헤매는 우리의 동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사실을 바르지 않게 인용하면 거짓을 창조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김 신부님은 “정치인들이 (FTA를 걷어치우지)못하면 우리 민중의 힘으로 ...뒤엎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합니다.
헌법상의 대의기구인 국회의 정치인들이 못하면, 민중이라는 국민 중의 특정계급의 힘으로 어떻게 한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정의도 아닙니다.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시민의 양식(良識)에 역행하는 사고방식일 뿐입니다.
우리나라의 어느 젊은 사제 한분의 글을 분석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흑사병이후의 부실한 신학교교육이 배출한 일부 영신지도자들에 관한 역사를 읽고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 배운 채로 대학을 나왔으니 자기의 소명(召命)에 충실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니 딴 방향으로 분노하거나 소리치는 우리의 일부 젊은이들을 상기(想起)하기 때문입니다.
필자(전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