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현 신부가 또 다시 기염(?)을 토했다. 관운장의 수염을 휘날리면서 평택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데모대를 지휘했다. 다음번 데모에 나서기 전에 꼭 한번 읽어보시라고 이 글을 올린다.
한미안보연구회(Council on ROK·U.S. Security Studies)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한미 예비역 장성들과 안보학자들이 만든 학술단체로서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참모총장을 지냈던 9순의 백선엽 장군, 김재창 전 연합사 부사령관 등이 그리고 미국에서는 세네월드 장군, 틸러리 장군 등 전 주한미군사령관들과 주한대사를 지낸 분들이 회원으로 있다. 이 연구회는 매년 워싱턴과 서울에서 번갈아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매년 이 회의에 발표자로 또는 동시통역사로 참여해온 필자는 매번 감회가 달라짐을 느낀다. 처음엔 ‘노친네 전우들의 친목모임’정도로 생각했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평화적 핵주권론을 주창했던 사람이다. “우리의 생사가 달린 핵문제를 왜 미국과 북한의 협상에 내맡겨야 하는가”등을 외쳐왔고, 이 일로 직장에서 사직을 당한 적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필자이지만 요즘 한미관계가 위험수위를 넘는 것을 보면서 한미안연구회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운동권 학생들이 들으면 ‘수구냉전적 반동적 언사’로 들릴 노병들의 고함에서 잔잔한 감동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 10월 27일 플라자호텔에서는 제15차 한미안보연구회가 종료되고 있었다. ‘주한미군은 통일저해 세력’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지던 시기에 서울에서 열린 회의라서 그런지 동맹의 미래를 우려하는 노병들의 탄식소리가 장내를 메웠다. 미국 측 노병들은 “북한 위협이 없어진 것으로 보는 분위기에서 한미동맹이 존속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시했다.
특히 세네월드 장군의 폐회사에는 조용한 고함이 들어있었다. “저는 스물한 살의 나이에 남북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 미군 소위로 한국에 왔지만 금방 누가 나쁜 쪽(bad guys)이고 누가 좋은 쪽(good guys)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모두가 나쁜 사람들에게 달려가고 있질 않습니까. 그래서 어지럽습니다.”마지막 말은 매우 함축적이었다. “Kim Jong‐il controls three ‘T’s, timing, tempo, and. We have to deal with them with three ‘P’s, prudence, patience, and precaution. 정신없이 동시통역을 하고 있던 필자의 귀에도 의미있는 말로 들렸다.
2005년 3월 필자는 미 에너지성 초청으로 미국의 핵무기 개발단지들을 둘러보았다. 미국인들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 긴장도 했지만 그 보다는 놀라움이 컸다. 캘리포니아의 로렌스리버모아 국립연구소에서 본 세계 최대의 레이저 시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문정현 신부는 이걸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수소폭탄을 개발했던 사바나리버 국립연구소는 면적만도 서울의 한배 반이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있던 1950년대 초반에 건설했다는 말에 더욱 놀았다. 초강대국이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초강대국과 기왕에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 관계를 함부로 버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5년 11월 필자는 워싱턴의 카네기연구재단 회의실에서 열린 제20차 한미안보연구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또 한번 노병의 고함소리를 들어야 했다. “한미동맹은 죽었다. 시체를 담은 관 앞에서 일단의 한국인들이 통곡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은 관심도 없다. 미국인은 더욱 관심이 없다. 이제 관 두껑에 못질하는 일만 남았다…”미 하원 국제위원장인 하이드 의원의 발표문이었다. 한 때 친한파로 분류되었던 그의 말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긴장이 흘렀다. 필자는 한달 전인 10월에도 워싱턴에 왔다가 격노한 미국 전문가들을 만났다. “한국 대학생들이 미국과 북한이 전쟁을 하면 북한을 돕겠다는데 우리가 왜 한국을 지켜야 하나...” 폐부를 찌르는 말이었다.
필자는 죽을 힘을 다해 하이드 의원의 발표문을 반박했다.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 많은 젊은이들이 통일이 눈앞에 온 것으로 착각하고 안보문제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저간의 사정을 이해해 달라.” “젊은이들이 냉철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려달라.” “적어도 2007년 대선 이전까지는 한국에 대해 어떠한 단정을 하지 말라.” 아직은 버려서 안 될 소중한 친구를 지키기 위한 사투였다. 대한민국의 생존틀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또 한번 긴장이 흘렀다.
회의를 마치고 백선엽 장군과 김재창 장군이 어깨를 두들겨 주셨다. 한국이 필요로 하는 역할을 했노라면서 격려해주셨다. 문득 한국에 있는 지현이와 주식이가 떠올랐다. 20대 후반의 내 딸과 내 아들은 자존심 세기로 두 번째 가지 않는 아버지가 워싱턴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상상이나 할까. 예전엔 “늙은이들의 넋두리” 정도로 들리던 노병들의 함성이 지금에 와서는 왜 이토록 진지하게 들리는 것일까.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연애는 뜨거운 가슴으로 하는 것이지만 정책은 냉철한 머리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마디. 이 아버지에게도 너희들 못지않게 뜨거운 가슴이 있다. 다만 뜨거운 가슴을 쓸 때와 냉철한 머리를 쓸 때를 구분하려고 애쓰고 있을 뿐이다. 아들들아 딸들아.....
문정현 신부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이 글을 읽고 느끼는 바가 있으시면 이제는 그 가증스러운 좌경 운동가의 탈을 벗고 조용히 교회로 돌아와 성채조배실에 앉아주시길 바란다. 사제복은 반미친북 데모를 위한 방호복이 아니다.
김태우 미카엘(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삼성동 성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