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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이후’ 성숙한 국민의 자세 필요하다
김태우 미카엘 (삼성동본당)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김 위원장 역시 때가 되면 속절없이 이승을 떠나야 하는 생물학적 수명을 가진 인간이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그의 죽음이 여느 필부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다.

그는 지난 수십년 동안 한민족의 공생공영과 통일을 위한 파트너이자 벼랑끝 전술과 무력도발로 숱한 사람들의 눈에 피눈물이 흐르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국제적으로는 핵질서를 뒤흔든 불량국가의 못 말리는 수장이었다. 북한 내에서 그는 37년간 주민을 가난과 고립으로 내몰면서 ‘김일성 조선’을 호령해 온 냉혹한 군주였지만, 그 체제에서 특권을 누려온 계층에게는 ‘불세출의 영도자이자 자애로운 어버이 수령’이었고, ‘조선을 그 어떤 원쑤도 넘보지 못하는 핵보유 강국으로 전변시킨 천출명장’이었다.

김 위원장의 사망과 함께 북한의 장래와 우리의 대응과 관련하여 엄청난 양의 담론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 것은 당연했다. 도전이자 기회이기도 한 사태를 맞이하여 정부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남북관계 개선을 시도하겠다는 전향적 자세를 보인 것도 필요한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 사망 후 수일 동안 방송매체들이 쏟아낸 담론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일단의 전문가들은 거의 모든 채널에 소나기 출연하여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주문을 쏟아냈다. 김정은 후계구도가 안착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 남북관계 경색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므로 대담한 포용과 양보로 선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향후 남북관계의 개선도 우리의 대북정책에 달렸다는 식이었다. 과연 그런가? 김 위원장의 돌연한 퇴장이 북한의 새 지도부와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우리가 정책기조를 바꾸기만 하면 되는 그런 단순한 국면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선, 향후 북한의 정세를 판가름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북한이 애도기간을 통해 김정은 체제의 제도화와 정당화에 매진할 것이라는 점에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이후의 향방은 아무도 모른다. 김 후계자가 무탈하게 당 총비서, 최고사령관, 국방위원장 등 요직들을 차지하 면서 안착할 가능성, 집단지도체제 또는 집단적 섭정체제가 등장할 가 능성, 권력투쟁이 벌어져 반목과 갈등이 표출될 가능성 등 많은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유력한 시나리오는 있어도 확실한 시나리오는 없다.

남북관계를 결정짓는 주된 변수도 북쪽에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내려놓고 개혁개방을 수용하는 ‘좋은’ 선택을 한다면, 관계개선은 급물살을 탈 것이며, 이것이 우리가 당장 바라는 그림이다. 그러나, 전임자가 그랬듯 체제존속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는 선택, 즉 핵을 앞세운 선군정치와 무자비한 탄압을 이어가는 ‘나쁜’ 선택으로 간다면, 관계개선도 어렵고 우리의 열린 마음도 오래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

조금만 더 멀리 보면, 김 위원장의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고민거리는 다양하고 복잡하다. 남북관계 개선 여부, 주도권의 향배, 북한 변화의 가능성, 도발에 대비한 안보태세, 통일 대비 필요성, 중국의 대북 영향권 선점, 불안정에 대비한 한미협력 점검 등 전략적 사고를 요하는 과제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온 상태다. 물론, 핵심은 북한의 변화 여부이다. 북한이 자국민의 인권과 복지를 중시하는 정상국가로 바뀌어 간다면, 핵문제는 슬그머니 소멸될 것이고 도발도 잦아들 것이다. 상호 호혜적 남북관계도 가능해지며, 그 연장선에서 어렴풋이나마 평화통일의 그림자도 얼른거릴 것이다.

이러한 때에 북한의 죄과에 대해 면죄부를 주면서 스스로의 대북정책만을 성토하는 자학(自虐) 논리는 ‘단견(短見)을 가진 준비되지 않은’ 국민을 만들어내기 쉽다. 이는 향후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포기하자는 논리나 다름이 없으며, ‘평화적 분단관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당장의 정부간 관계개선’만을 중시하는 논리다. 이런 논리는 ‘민주, 인권, 통일’을 담아내지 못하며, 인권 부재 속에 신음해온 북한 주민의 아픔을 외면하는 것이자 통일의 그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실향민과 탈북자들에게 아무런 희망도 주지 못한다.

이러한 때에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더 멀리 더 많이’ 보는 성숙함이다. 국민은 정부가 지향해야 하는 목표가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 이심전심의 공감대를 가져야 하며, 정부가 앞세우는 목표가 시기와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양해해야 한다. 언급되지 않는 목표들에 대해서도 행간을 읽어내는 안목으로 공명할 수 있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정부가 유연성을 발휘하여 피묻은 손들과 악수하는 것도 의연하게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혹자들은 유연성 발휘가 곧 원칙의 포기가 아니냐고 묻는다. 경계선이 애매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정남’에게 물어봐야 할 만큼 애매하지는 않다. 결정자의 가슴 속에 ‘민주, 인권, 안보, 통일’을 향한 열정이 살아 있으면 어떤 양보든 유연성이 된다.    (필자 현 통일연구원장)


입력날짜 : 2012-01-21 (13:20), 조회수 :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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