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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무엇 하는 사람이냐?’ ‘신부요’하자 총을 쐈다.
‘나는 성당 일꾼이요’ 했는데도 불문곡직 쏴 죽여
송정숙 글라라 (서초동본당)
 

 

 ‘너는 무엇 하는 사람이냐?’  ‘신부요’ 하자 총을 쐈다.

    사제님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을 기억하고 기도하신적은 있으십니까?

   

 `한국전쟁`으로 희석시킨 `6. 25남침`

  2011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의 첫 주말, 한국 가톨릭교회의 주보에는 「서울 대교구 근 현대 신앙의 증인」이 소개되었다. 이 기사는 8회째였으므로 그 앞뒤로도 이런 증언 기록이 더 소개되었고 소개될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 것은 이런 내용이다.

 

1.이현종(李顯宗 야고보)신부

 그는 1922년 7월에 태어났다. 1936년에 소신학교에 입학한 뒤 1950년 4월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이현종 신부는 서품 2개월 만에 〈한국전쟁〉이 일어나 6월 27일에 하우고개(下牛峴)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이틀 만에 성당으로 돌아온 이 신부는 서봉구(마리노)와 함께 사제관에서 지내며 성무를 집행하였다.

그러던 중 7월 3일 오후 3시경, 30여명의 인민군들이 성당에 들이닥쳤다. 그리고 제의실 앞에서 만난 이 신부를 보고

『너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이신부가

『나는 성당의 신부요.』라고 대답하자 인민군은 이 신부를 향해 총을 쏘았다.

당시 이 광경을 목격한 안정순과 정막달레나에 따르면, 이현종 신부는 함께 총을 맞고 죽은 서봉구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2. 서봉구(마리노)

서봉구는 1926년에 태어났다. 1931년 부모에게서 버림을 받은 그는 풍수원 본당의 정규하(아우구스티노)신부의 거둠을 받아 본당의 영애원에서 자랐다.

서봉구는 10여세가 되어 정원진 신부의 본가에서 살다가, 1941년 6월 정신부가 도림동 본당으로 부임할 때 함께 왔다. 이후 서봉구는 도림동 본당에 머물며 성당일을 도맡아 하였다. 그런 가운데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서봉구는 주위에서 피난을 가라고 권유했으나 뿌리치고 이현종 신부를 보필하며 성당에서 지냈다.

그러던 중 7월 3일 오후 3시경, 이현종 신부가 인민군의 총에 맞았다. 그 총소리를 들은 서봉구는 성당에서 뛰어 나왔고, 그를 본 인민군이

『너는 무엇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이에 서봉구가

『나는 이 성당의 일꾼이오.』

하고 대답하자 인민군은 서봉구에게도 총을 쏘았다. 현재는 그의 무덤의 위치를 알지 못한다.

   

3.전덕표(全德杓 안드레아)

전덕표는 1920년생이다. 황해도 은율군 은율 읍 남천 리에서 태어났다.

1935년에 소신학교에 입학한 뒤 1946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전덕표 신부는 사리원 본당의 보좌로 사목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9월에 사리원에서 30리 떨어진 동아포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전덕표 신부는 매일 동이 트기 전에 성당으로 와서 미사를 집전하였고 밤에는 다시 동아포로 돌아갔다.

10월 12일 새벽, 폭격으로 감실 안의 성체가 손실될 것을 염려한 전덕표 신부는 성체도 거두고 신자들을 피신시키기 위하여 성당으로 갔다. 그리고 새벽미사 후 동아포로 떠날 채비를 하던 중에 어느 목사가 찾아와 기독교 연맹 회의가 있다며 전 신부를 데려갔다.

10월 17일 유엔군이 입성하자 본당 신자들은 전 신부를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다가 19일 정치보위부의 방공호 속에서 전 신부의 시신을 발견하였다. 전 신부의 목과 양손은 전깃줄로 한데 묶여 몸이 활처럼 굽어 있었고, 고문당한 흔적이 역력하였다. 다음날 사리원 성당에서는 전 신부의 장례미사가 거행되었고, 시신은 성당 앞 상묏산에 안장되었다.

 

이상의 세 토막 이야기는 2011년 12월 4일자 한국천주교 주보에 「서울 대교구 근현대 신앙의 증인」 (8)편에 실린 이야기다.

 

그보다 훨씬 앞서 김일성이 스탈린의 비호를 받으며 38선 이북에 인민공화국이라는 것을 세웠을 때 이미 종교인들이 살육에 가까운 처참한 핍박을 당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고 우리의 정진석 추기경은 그런 역사적 사실들을 직접 들려준 일도 있다.

그러므로 이런 증언들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 증언들을 믿지 않나?>

 

주보에 간결하게 편 서술만 보아도 동란 중의 성직자들이 인민군에게 적대행위를 한 것도 아니고, 전투행위를 하거나 그들의 전투행위를 거역하며 반동적 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 그냥 『나는 신부요. 나는 성당 일꾼이요.』하는 대답을 했을 뿐인 성직자에게 대고 선자리에서 총질을 하여 살육했음이 드러난다.

어쩌면 우리에게 쉽게 곧이듣기지 않는 상황이 선연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아마 보통의 사람들이 한 증언이라면, 오늘의 친북이나 종북의 기치를 들고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부정할지도 모른다. 뭔가 그들이 그런 극단적인 짓을 하도록 성직자들이 유도하거나 거슬리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우길 것이다. 필경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천주교 시복시성 준비위원회(역사위원회)가 발굴하여 자료화한 것들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증언들이다.

이렇게 명백한 사실들이 즐비한 것이 우리의 근 현대 신앙의 역사적 진실이다.

그런데도 오늘의 우리 천주교 환경은 이런 일을 들춰서 알리는 일조차도 쉽지 않은 분위기에 싸여 있다.

제주도 해군 기지를 반대하고 한미 FTA를 무효화하기 위해 공동 전선을 펴야 한다고 성무를 외면하고 길길이 열을 올리는 일부 성직자들은 이런 증언을 「평화와 민족사랑」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할지도 모른다.

3대 째 권력의 자리를 누리며 권세의 세습을 이어오는 김일성의 아들과 손자를 깍듯이 경칭을 붙여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 좌파들은 김정일이 쇠고기 촛불을 「열차게」 부추기면 그것에 열광하여 따르고, 그들이 제주도 해군기지를 반대하라면 사생결단을 하며 그 뜻을 받들기도 한다. 그런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검은 수단 자락을 휘날리며 그것에 맞장구치는 거리 미사를 집전하는 성직자들도 있다. 그들에게 그들의 선배 신부인 이들의 순교 같은 것은 안중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한국’이 전쟁 일으켜 신부들을 죽인 것처럼...>

 

그러나 이 기록을 접하면서 우리의 가슴을 새삼스럽게 억누르는 불쾌함을 느끼게 한 일은 달리 또 있었다.

이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는 지면에 등장하는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다.

거기에는 꼬박 꼬박 「한국전쟁」이라고 나온다. 그렇다 보니까 마치 한국이 일으킨 전쟁에 천주교 성직자가 순교 당한 것처럼 들린다.

「한국전쟁의 발발」이라니까 흡사 한국 안에서 한국인이 일으킨 전쟁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6.25 남침」이고 「6.25 동란」이라야 맞는다. 김일성이 어느 날 불의로 내려 보낸 인민군이 한국 천주교 성직자들을 불문곡직하고 총으로 쏜 것이다. 신부라면 눈에 띄는 대로 깡그리 그렇게 그들은 「처형」당했다는 것이 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어를 이렇게 애매하게 써서는 안 된다.

전쟁을 일으켜 동족을 처참하게 짓밟은 북의 만행을 「한국전쟁의 발발」이라는 용어로 서술하면 그것을 교묘한 방법으로 희석시키는 효과를 낸다.

 

이런 표현은 지난 세월 우리나라를 휘저어 온 좌파 역사가와 좌파 특히 전교조 교육자들이 이뤄낸 성과다. 「6.25 남침」이란 용어를 공식적으로 이렇게 바꿔버린 기막힌 공헌을 그들은 하고 말았다. 그 결과, 이들 성직자들의 순교조차도 흡사 「한국」이 함께 저지른 일인 것처럼 희뿌옇게 만드는 효과를 내게 된 것이다.

진정한 성직자라면 단 한 사람도 살려두지 않는 집단이 그들이다. 그런데 그들을 옹호하기 위해서 성직자들이 떼를 지어 별별 노력을 다하며 기세를 올리는 일은 이해할 수가 없다. 북측이 오랜 동안 企圖(기도)한 계략의 결과가 「한국 전쟁」이라는 용어가 이룬 공처럼 여기 저기에 이렇게 쌓였다는 것을 소름끼치게 깨닫게 해준다.

서글프고 슬프다.

 

 


입력날짜 : 2012-01-10 (17:21), 조회수 :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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