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생으로 1975년에 해군 하사로 입대하여 UDT부대에서 준위를 역임한 분입니다. 천안함 피격이 있은 직후인 2010년 3월 29일 실종자를 구조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다가 잠수병증세로 순국한 분입니다. 해군 UDT의 산 역사이지 호랑이 교관으로 이름난 그가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솔선수범하여 바다 속에 뛰어들었다가 숨졌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뉴스에 흘러나왔을 때, 그리고 그를 떠나보내는 영결식장에서 수많은 UDT 장병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군가를 부르는 모습을 봤을 때, 온 국민도 따라 울었습니다. 한주호 준위는 진정 우리들의 영웅이었습니다.
2011년 1월 21일 새벽 아덴만에서는 또 다른 영웅들이 탄생했습니다. 새벽의 여명을 가르면서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삼호주얼리호의 선원 21명을 구출하면서 해적 13명을 소탕한 자랑스러운 해군 청해부대의 UDT-SEAL 대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의 악몽에 시달리던 한국 국민에게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었습니다. 십년묵은 체증을 한꺼번에 내려 보내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들의 목숨을 건 작전의 성공으로 국민은 안도했고, 한국군은 건재를 과시했으며, 대한민국의 국격은 한 단계 더 상승했습니다. ‘아덴만의 여명’이라 불린 이 작전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결단, 국방부 및 합참의 빈틈없는 작전지휘, 현지에서 치밀하게 작전을 지휘한 최영함의 지휘부 등이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낸 값진 성공이있습니다.
그럼에도 진정한 영웅은 바로 현장에 투입된 해군 특수부대 대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조그마한 고속단정에 몸을 싣고 차디찬 겨울바다를 가르고 삼호주얼리호에 접근하여 사닥다리를 타고 해적이 점령한 배에 올랐으며, 해적들이 인질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섬광탄을 터뜨리며 돌진하여 해적들을 제압했습니다. 이때 이들의 목숨은 촌각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생사를 넘나드는 작전이었습니다. 이날의 성공을 위해 그들은 그토록 혹독한 훈련을 이겨내면서 자랑스러운 UDT대원이 된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우리들의 영웅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잊지 말아야 할 또 한명의 영웅이 있습니다. 바로 피랍된 선박 삼호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입니다. 그는 우리 해군의 작전을 돕기 위해 해적들의 총부리 앞에서도 배를 지그재그로 몰아 해적의 소굴인 소말리아로 이동하는 것을 최대한 지연시켰고, 엔진오일에 물을 타서 배가 자주 멈추도록 했으며, 조타실에 이상이 있다고 해적들을 속여 배를 정선시키기도 했습니다. 또한, 국제 상선 공용통신망을 통해 최영함과 교신하여 해적들의 인원과 무장상태를 청해부대에 알려 주었으며, 새벽이면 감시가 느슨해진다는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낌새를 알아차린 해적들에게 뼈가 부러지도록 폭행을 당했으며, 결국 ‘아덴만의 여명’ 작전이 감행되는 순간 흥분한 해적에게 네발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도데체 석해균 선장의 이런 용기와 기지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알고보니 그 역시 대한민국 해군 출신이었습니다. 5년 동안 해군 부사관으로 복무하면서 군함도 탔고 해군작전사령부 산하 부대에서도 근무했습니다. 경남 밀양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군복무를 마친 후 자수성가하여 선장이 되었고 지금도 늙어신 부모님을 모시는 효자아들이자 책임감이 강한 가장입니다. 부산지역 해운업계는 그를 맡은 일은 철두철미하게 완수하는 책임 있는 선장이자 최고의 마도로스로 인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석 선장의 해군정신, 책임감, 그리고 용기는 이번 작전을 가능하게 만든 또 하나의 결정적 요인이었습니다.
지금 석해균 선장은 오만 살랄라의 술탄카부스 병원에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며, 지금 위중한 상태로 두 번째 수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석 선장을 한국으로 후송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석 선장의 생환과 쾌유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캡틴 석해균 선장, 당신이 병상을 박차고 일어서기 전까지 ‘아덴만의 여명’ 작전은 완료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우리들의 영웅입니다. 대한민국은 당신을 잃을 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