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태화강이라는 강이 흐르고 있다.
이 강을 처음 보았을 때의 난감했던 기억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몇십년 전의 일이다.
옛날 머슴애 아이들은 머리에 「기계총」이라는 것을 많이 앓았다. 아마도 바리깡이라는 기계로 머리를 밀다가 얻는 병인 모양이었는데, 머리에 헌데가 번지면서 흉하게 얼룩얼룩한 몰골을 하고 긁적거리는 보기 아주 안 좋은 피부병이었다. 유난히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게 많았다.
처음 보았을 때의 태화강은 꼭 그 「기계총」앓는 머슴애들 머리통을 확대해 놓은 것 같았었다. 바닥은 다 말라 여기 저기 함부로 자란 풀들과 쓰레기로 널려 있고, 군데군데 웅덩이가 여기저기 기계총 앓는 두상처럼 얼룩이 져서 있었다. 거기 고인 물들은 수채구멍 물보다 더러운 액체가 얼룩얼룩 자리 잡고 있을 뿐, 그것을 강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도무지 「강」이라 부르는 것으로 강을 망신시키는 일이 용서되지 않을 듯한 그런 곳이었다.
손댈 수 없이 비관(悲觀)스러워서 그것은 그냥 우울한 개천이었다.
거기에 수량 풍부한 강이 흘렀었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울산엘 몇 번이나 가 보았지만 그 「처참한 개천」은 여전히 거기에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울산엘 갈 일이 생겼다. 시내에 웬 강이, 그것도 아주 멋있는 강이 짓푸른 깊이로 철철 흐르고 있었다. 낚시도 하고, 수영대회도 열린다. 강가에 나무가 적당히 울창하고 잘 가꿔진 강변에 사람들이 걷고, 달리고, 운동하고, 자전거를 타는 아주 아름다운 강이었다. 강변 풍경이 어느 외국의 아름다운 도시보다 더 적극적으로 가꿔져 있었다.
관광 버스로 다리를 지나며 볼 수 있었다.
여기에 이런 강이 있었네? 옛날에 왔을 때에는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왜 못 보았을까.
혼자말로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안내하던 사람이 말했다.
이게 태화강입니다. 기적같이 새로워졌지요?
태화강?
그 헌데난 머슴애들 머리통 같았던 강? 그것이 태화강이었다. 그 강이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정말 「기적」처럼 바뀌어 흐르고 있었다.
이런 기적을, 썩어서 냄새가 나 죽은 강이 되어버린 영산강의 주변사람들도 원하고 있고 취수할 곳이 그곳밖에 없어서 냄새 나는 채 마셔야 하는 낙동강 주변 사람들도 원한다. 금강도 그렇다.
의기양양하게 승리를 구가하며 취임한 야당출신 지방자치체 수장들의 정수리를, 지금 호되게 내려치듯 드리받고 있는 「4대강 사업」의 진상은 이런 것이다.
몇며칠을 속앓이를 하다가 『낙동강의 준설이나 보의 건설은 댐을 쌓는 근거가 될테니까 안된다』는 대안을 내놓은 야당의 궁색한 대안이 얼마나 한심한가는 해당 도민들이 안다. 댐을 위해서는 보의 높이가 다르고 갑문을 건설할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 모든 보(湺)는 댐의 기초라는 논리는 강을 살려 달라고 목매어 외치는 그곳 사람들의 삶을 구정물 속에 담가 두라는 이야기와 같다.
어쨌건 야당이 슬금슬금 꼬리를 내리며 헛소리 하듯 말바꾸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진상(眞相)」의 엄혹함에 옷깃을 여미게 된다.
그리고 그 엄혹함 앞에서 난처하고 또 난처한 입장이 되고 말 것은 야당만이 아니라는 점이 민망하다. 그깟 정치인들이야 하루아침에 얼굴에 철판을 깔고 슬쩍 딴 소리를 해버리면 그만이다. 특히 오늘 우리가 아는 야당은 그런 일이 그야말로 다반사다.
문제는, 성직자의 차림을 위엄있게 갖추고 신의 이름을 서슴없이 빌려가며 성당을 휘젓던 일부 성직자들의 「4대강 반대」구호가 너무 모양이 사나워졌다는 점이다. 내친 김에 그냥 밀고 나가기에는 너무도 해맑은 「眞相」이 사람들 앞에 너울거리고 있다.
교회 안의 분란처럼 진행될 것을 꺼려서, 침묵하는 많은 주교들의 진의를 짓밟으며 특정 정당의 정치 게임에 휘말린 일부 「주교단」의 행보가 이 해맑게 너울거리는 「眞相」앞에서 우스워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진보적인 기독교계의 원로 한분이 이렇게 말한다.
4대강 문제는 대 정권 투쟁처럼 보인다. 교회가 정당정치에 휘말려 들어가 어느 한편에 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극히 온건한 이 한마디가 우스워진 성직자들의 모양을 아주 확실하게 규정지어 주고 있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말은 그 우스워진 모양새에 쐐기를 박는다.
그 사람들은 계속해서 김정일과는 친한데, 소위 보수정당 이명박 정권은 타도해야 할 정권으로 인식했다. 그런 식의 시민운동은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동승(同乘)하기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또, 광우병 촛불 대목에 이르러
내가 소년기에 겪었던, 남한 단독정부의 부정을 앞세우며 북한 정부 수립을 위한 비밀 선거에 동참을 강요하던 세력과 촛불 시위에 비추어진 소위 선거부정의 정서에 어떤 역사적 연결고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라고 말하는 이분은, 이른바 기독교계의 진보적 지도자인 것이다.
특정 정당의 정치놀음에 휘말려 별의별 이상한 모습을 다 보이는 「성직자」들은 어쩌면 등에서 식은 땀이 나는 「眞相과의 만남」을 경험하지 않을까싶다. 그런 모습 정말 싫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