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난민’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습니다.
아주 낯선 말이지요. 요즘은 박해시대도 아닌데 뜬금없이 왜 ‘난민’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요?
며칠 전 신자 몇 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이 든 형제 한 분이 “요새 주일 미사 참례하는 것이 아주 곤혹(困惑)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살고 있는 시골의 어느 성당의 이야기입니다.
주일이 되어 성당에 들어가는데 입구에서 어느 신부님들의 ‘시국선언’을 나누어 주고 미사시간에는 신부님이 시국얘기를 해서 아주 불편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한 주간의 생활을 되돌아보고 하느님의 말씀에 조용히 귀 기울이며 묵상하려고 했는데 되레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 다음 주일에는 가까운 성지의 성당으로 갔더니 거기서도 신부님이 차분하게 성지에 관련된 내용과 신심문제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미국소는 광우병의 위험이 있으니 절대로 먹지 말라는 얘기며 박정희 독재정권을 말하더랍니다.
거기도 편안하지가 않아 다시 다음 주일에는 또 다른 성당에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우연이 가려고 하던 그 성당의 신자와 합석한 자리에서 그 신자가 묻지도 않는데 “자기 본당신부는 아주 골수 시국신부(時局神父)”라고 말하는 것이어서, 그 성당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할 수없이 또 다른 성당을 찾았는데 그곳 신부님은 반갑게도 좋은 인품에 아주 열심히 복음 말씀을 풀어 설명해 줘서 오랜만에 평온한 마음으로 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지만 본당 아닌 것이 불편하다는 얘기입니다.
“주일이면 어느 성당에 가서 미사참례를 해야지? 하며 이곳저곳 떠돌아다니게 되니 그게 바로 ‘난민’신세지요. 신부님들이 세속시국 일에 깊숙이 간여하면, 그 간여 자체도 문제이고 간여의 비뚤어 진 내용도 문제이지만, 신자들이 난민이 되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곁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한 자매가 입을 열었습니다.
“형제님은 믿음이 깊으니까 주일을 지키려고 여기저기 옮겨가며 성당을 찾으려고 하지만 저의 남편은 아예 쉬고 있어요.”
자녀들 혼사를 앞두고 마음을 돌려 고해성사도 보고 열심히 성당에 다니겠다고 약속한 남편이 그 다음 주일에 성당에 갔다가 신부님의 시국얘기에 질려 냉담길로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그 형제와 자매의 얘기로는 주변에 이 성당 저 성당 떠돌아 다니거나 이
꼴 저 꼴 보기 싫다며 냉담하는 사람이 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 주위에도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을 종종 보아 왔습니다.
그렇다고 냉담까지 하는 사람들의 믿음이 깊지 않다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세속사에 매달리는 성직자가 그 자세를 자성하고 자제했으면 하는 형제와 자매의 의견에 공감이 갔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성직자도 세상 돌아가는 일들에 관심을 갖고 의견을 말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성당안의 공적인 신앙예절의 하나인 강론 중에는 세속사인 정치투쟁 정책다툼의 논란이나 주장은 삼가야 한다는 것이 많은 신자들의 바람입니다. 정작 태아생명의 살해인 낙태, 인간성에 반한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 북한인권유린사태의 죄악 등 지킬 계명을 거스르는 사태들에 대한 논리정연한 강론은 별로 듣지 못하면서 사회를 혼란케 하는 정치투쟁 정책다툼의 강론을 성당 안에서 들어야 하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일이지요.
몇 년 전 아들 신부의 첫 미사에서 아버지 신부가 하신 강론 말씀이 떠 오릅니다.
“ ... 무릇 신부는 복음선포, 성사집행, 하느님백성의 지도 이 세가지 직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또 그렇게 하라고 하느님께서 우리 사제들을 부르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한시도 이 직무를 게을리 하지 말기를 부탁합니다. 그렇게 하면 신자들도 복음선포에 앞장서고, 성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사제의 말에 양같이 순명할 것입니다. ...”
그 신부님이 말씀하신 세가지 중에 ‘하느님백성의 지도’가 신부님들로서는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교회 구성원을 보면 아주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신심, 학력, 년령, 빈부, 출신지역, 직업 ... 차이가 많은 계층을 아우르면서 이끌어가기는 매우 힘든 일입니다.
한 예로 정치를 하는 신자 중에는 여당도 있고 야당도 있는데 어느 한쪽을 두둔하는 말을 하면 다른 한쪽은 서운해 할 테니까요.
불편부당한 태도를 지니는 신부님들이 하느님백성을 이끌어 간다면 ‘신앙난민’이란 말은 사라질 것입니다.
영국의 사상가이며 국회의원이던 에드먼드 버크는 미국독립전쟁을 지지하여 당시 영국왕 조지 3세의 미움을 받았지만, 자기 소신에 투철하게 프랑스 혁명의 반인륜적 진행을 비난하여 조지 3세의 존경을 받게 된 사람입니다.
버크가 ‘프랑스혁명의 고찰’이라는 이름으로 쓴 글에서 이런 부분이 내 마음에 맴돕니다.
“주일날의 성당이나 예배당은 모든 다툼이 쉬고 평화를 얘기하는 곳이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