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이 숨 쉬는 공기를 기준이상의 이산화탄소로 오염시키지 않게 하고, 여러사람이 마시는 물에 농약화합물이 일정량 이상 섞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환경보호입니다.
한편 공기를 오염시키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나, 농민이 어느 분량 이하의 농약을 살포하는 것을 참는 것은, 늘어나는 사람들의 늘어나는 활동과 생활을 개선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뜻 있는 시민들, 우수한 과학자들, 부지런한 사업가들, 유능한 행정가들이 오염원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겠는가 고심하고 애쓰는 것입니다.
연전에 일본의 훌륭한 가톨릭작가 소노 아야꼬가 방글라데시를 기행하고 쓴 글에서 그곳의 자연 들판에 반딧불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일본의 환경파괴를 개탄하였습니다. 한편 방글라데시 출신 수도자가 한국수도회에 와서 생활하면서 이곳이 천국 같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곳의 일상생활의 환경은 너무나 열악하다고 합니다.
1945년 9월 남한에 진주한 미군이 우리의 초등학교 어린이들 등어리로 DDT분무기를 쏘아 주었습니다. 그 시절에 하루거리라고 부르는 말라리아로 고생하고 죽어가는 어린이들이 상당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1962년에 글재주가 뛰어난 미국수산국 생물담당공무원 레이첼 카아슨 (Rachel Carson)이 쓴『침묵의 봄』책에서, DDT가 어류, 조류, 야생생태계, 그리고 결국 인간에게 해롭다고 주장하여 유명해진 것 때문에, 유해하다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이, 무해하다는 과학적 근거가 나올 때까지, 선진국들에서 DDT를 수출 금지하였습니다. 그 무렵 DDT덕에 말라리아가 감소하던 아프리카에서, DDT를 못 구하여 다시 창궐하게 된 말라리아로 인하여, 그 후로부터 매년 270만명의 인명(주로 5세 이하 어린이들)이 죽어 가는 통계가 나오고 있습니다.
대전가톨릭환경회의라는 이름으로,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지 말라고 촛불시위를 합니다. 왜 그럴까요? ... 캐나다는 심심찮게 광우병이 발병하는데, 미국은 안 나옵니다. 이게 미국이 안전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광우병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런거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결국 미국산 소고기는 들어 왔습니다. ... 올 것이 왔지만, 와야 할 것이 온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라는 글이, 모든 신자들의 주의와 존중을 요구하기 마련인 어느 교구주보에 2008년 7월 13일자로 실렸습니다.
우리는 공기와 토양과 지하수 및 지표수의 오염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애쓰고 있으며 또 해야 합니다. 그것이 환경보호이고 환경보호정책이고 환경보호운동입니다.
그러나 매년 270만 명 씩 사람이 죽어가는 통계 앞에서 DDT를 여전히 금지하자고 하거나, 미국의 소고기는 인간광우병에 위험한 것이라고 하면, 이는 환경보호의 차원을 넘어서 환경주의의 단계로 가버리는 것입니다.
환경주의(environmentalism)의 역사는 꽤 됩니다.
19세기 중 후반기에, 증기기관차와 석탄과 옷감대량생산의 산업혁명을 자연파괴라고 극렬히 공격한 존 러스킨 스스로는 부유한 와인수입업자의 외아들로서 고틱건축양식의 애호가였습니다.
같은 시대의 마르크스주의자인 윌리암 모리스는 특이하게도 중세의 생활을 찬양하는 중세주의자이기도 하였습니다.
역시 같은 시대의 사회주의 시인이고 동성연애자이며 그 옹호자인 에드워드 카펜터는, 인간을 걱정하여, 사회가 존속하려면, 지난날의 단순시대(單純時代)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자연보호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러나 19세기 경제사(經濟史)에서, 서유럽전역의 사람들이 산업혁명의 덕택으로 의식주가 넉넉해 지는데 따라 위생과 건강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그 증거가 유아사망률의 급격한 감소와 평균수명의 현저한 신장을 보여 주는 통계입니다.
21세기에 들어온 이 시대에는, 지구 온난화 때문에 인류의 재앙이 온다고 예언하는 슬픈세계관의 인사들이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구는 인간이 만든 이산화탄소 때문에 더워만 간다, 북극곰이 급격히 줄어드는 멸종위기에 처했다, 극지의 빙산이 녹아내려 바다수위가 올라간다 고 합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정직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와 조사기록은, 지구가 주기적으로 추웠다 더웠다 하여 왔으며, 지구의 탄산가스 중 인간의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부분의 영향은 지구의 장기적인 기후 변동의 범위 내에 머무르고 있다는 데이터를 계속하여 내놓고 있습니다. 12세기부터 15세기에는 지구의 기온이 지금보다도 더웠으며, 1940년부터 1970년대 사이에는 자꾸 기온이 내려가 빙하기를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1965-1970년 사이에 조사된 북극곰 8,000-10,000 마리는, 최근의 철저한 조사결과,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 20,000-25,000마리로 증가한 것이 밝혀졌습니다.
남극의 얼음은 지구상의 전체 얼음의 89.5%인 25.71*10⁶입방킬로미터인데,
존 삼섬은 1989년의 “남극표면기온” 논문(Journal of Climate 2)에서 1957년 이후의 남극기후의 조직적인 조사결과 기온의 상승이 없었다는 사실을 밝혀 냈습니다.
북반부의 가장 큰 얼음인 그린랜드 얼음은 지구 전체얼음의 9.9%인 2.85*10⁶입방킬로미터로서, 그린랜드에 덮인 얼음은 매년 5.4±0.2 센티미터의 비율로 높아진다고 합니다.
요사이 이 슬픈세계관의 인사들에게 또 딱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기구(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가 발표한 2007년 4차 평가보고서는 영국의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 기후연구소의 조사연구를 인용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후연구소의 e-mail 유출로, 이곳에서 부정직하게 적어 넣고, 오류를 슬쩍 인용하고, 과장(誇張)으로 왜곡한 데이터들이 폭로되었습니다.
그러자 예컨대 히말라야의 얼음이 2035년까지 녹아버린다고 서두에서부터 세상에 겁을 주던 IPCC의 그 평가보고서 부분을 IPCC 스스로 취소하였습니다. 아무리 덥다고 가정하드라도 히말라야의 얼음이 녹아버리려면 300년이 걸린다는 과학적인 이론 앞에서, 부정직과 오류와 과장의 자료로 계속 버틸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미국 동부지역의 일반시민들이 지난 달포 전의 폭설을 보고, 지구온난화를 웃음꺼리로 삼자, 지구온난화주장자들은 “일기는 기후가 아니다(Weather is not climate)”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지난주에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의 이름으로 배포한 만화는, 우리나라가 물 부족국가가 아니다, 홍수예방은 4대강의 문제가 아니고 작은 하천들의 문제다, 강의 수중보가 강물을 고이게 하여 썩게 하므로 오히려 수질을 악화시킨다, 하천준설로 강의 생명줄을 끊는다고 주장하면서, 4대강 사업이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의평화위원회의 그런 논리에 대하여 반론이 있습니다.
지난 세월에 가뭄에 시달리던 저개발 당시의 우리국토가 겪은 일을 잊지 말라, 현재 일 년을 평균하게 농사와 산업과 생활을 위한 양질의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13억 톤의 물을 더 확보할 필요가 있다, 4대강과 작은 하천들은 높은 곳으로부터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는 연결이며 도로들처럼 서로 막거나 돌아 갈수 있는 게 아니다, 현재의 수중보에는 그 하단부에 유수구(流水口)가 있어서 물이 고여 썩는다는 것은 실정 모르는 주장이다, 하천의 인화화합물과 중금속퇴적물을 제거하거나 얕아진 강바닥을 준설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반론입니다.
위의 단정이나 반론 중 어느 것이 타당한가를 가려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찬반토론이나 타당성 분석보다 더 위에 있습니다.
이런 만화책을 만들어, 초등학교 어린이로부터 중등학생들, 청년들로부터 직장인 가정주부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천주교신자들에게 배포하는 것은, 아무리 원만히 보아드려도 최소한, 우리나라 환경정책에 관하여 교회 공식기구가 신자들에 대한 계몽교육에 나섰으며, 토론과 논쟁의 광장 가운데 나왔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환경정책에 대해서 국민은 누구라도 자기의 찬성이나 반대의 의견을 말하고 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교님이 위원장을 맡은 교회의 공식기구의 이름으로 환경정책에 대하여 비판의 글을 쓰고 만화를 그리는 경우는 문제가 다릅니다.
주교님 자신은 이 세속의 문제와 정책에 관하여 전문가가 아닙니다.
주교님이 이 세속의 정책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각자 견해를 가진 지식인들 내지 전문가들 중에 한 쪽 사람의 의견을 들어 채택하여 이를 가지고 가톨릭신자 전부에게 획일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타당합니까?
세사르의 것에 한 발 들여 놓으신 것입니다.
더 문제인 것은, 치산치수(治山治水)에 대해서,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사업이라고 단언한 점입니다.
창조질서 같은 절대 진리를 내세우는 것이 바로 환경주의의 속성(屬性)입니다.
환경주의 즉 인바이런먼털리즘은 이데오로기입니다.
이데오로기란 사람이 만든 것이지만, 사물을 바라보는 자세이며, 철학이고, 절대로 옳다고 주장하는 신념(a way of looking at things, philosophy, claim to absolute truth) 입니다.
이데오로기를 믿는 사람 즉 이데오로그(ideologue or ideologist)에게는 합리(reason)의 반론이 통하지 않습니다. 이데오로그는 자기 마음에 안드는 과학은 외면하고, 검증(檢證)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신념가(信念家)입니다.
인류 역사상 사람이 만든 이데오로기들은 모두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또 그 수준은 항상 하느님의 말씀보다 아주 낮았습니다. 사람이 만든 이 이데오로기들은 인간의 진정한 행복에 기여한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교님이 위원장으로 계신 위원회 즉 가톨릭 공식기구에서 인바이런먼털리즘을 교육하려고 시도하는 이상한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만약에 주교님께 이런 이데오로기를 권고한 사람이 주변에 있었다면 지체없이 물러나게 하십시오. 그리고 이런 교육을 중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더욱 심각한 것이 있습니다.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응답” “창조질서 거스르는 4대강 사업 당장 멈추어야 합니다” 라고 단정하면서, 창조질서와 그리스도인의 응답을 문제 삼으셨습니다.
우리나라의 치산치수가 믿을 교리(敎理)와 지킬 계명(誡命)에 반(反)한다고 주교님께서 말씀하시렵니까?
주교님의 그런 단정 때문에, 치산치수가 교리와 계명에 반한다고 이해하는 많은 순진한 가톨릭신자들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사리를 아는 신자들이, 치산치수가 교리와 계명에 어긋난 것은 아니라고 이해한다 하드라도, 이 신자들도 가톨릭장상에 대하여 시니컬해지는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될 수가 있습니다.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2010. 3. 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