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3일에 젊은 의사들의 모임에서 불법으로 낙태를 많이 시술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을 고발하였다.
현행법상, 낙태에도 합법적인 경우가 있으므로, 불법으로 낙태하는 경우만을 고발하였다.
불법 낙태야 당연히 이를 제재하는 법률을 적용할 일이다.
그러나 이 불법 낙태까지도 이러 저러한 사정을 들어서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른바 시민단체들 여성단체들 운동가들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들안에서 낙태를 둘러 싼 논쟁이 모두 정치적 쟁투의 한 가운데로 들어섰다. 낙태를 합법화 할 것인가 불법으로 금지할 것인가, 합법적인 낙태시술의 경우라도, 모든 국민이 납세한 돈인 정부의 의료지원비를 낙태시술에 지원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심각한 정치투쟁을 하고 있다.
2월 26일에 뉴욕의 티모디 돌란 대주교가, 알 스미스 만찬(1928년 미국의 첫 가톨릭신자 대정당-민주당- 대통령후보였던 알프렛 스미스를 기념하여 정치인들을 초대하는 자리)에 pro-abortion (낙태지지) 가톨릭 정치인은 초대를 받는 영예를 갖지 못할 것이라고 TV방송에서 언명할 정도이다.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에 합법적으로 낙태할 수 있는 5가지 경우가 있어서 한국의 사법당국으로서도 이 5가지 경우는 처벌하지 못한다.
불법이 아니라고 해서 즉 합법이라고 해서, 반드시 “정당한” 것은 아니다.
“정당하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고 공평하다”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서 낙태지지자들은 스스로를 “낙태를 위한 주장자(pro-abortion)”라고 부르는 대신 “선택을 위한 주장자(pro-choice)”라고 부르기를 택한다. 자기들도 abortion 이라는 말을 꺼림직하게 느낀다.
인류가 살아오면서 내면화해 온 윤리의식으로만 생각하드라도, 낙태가 “정당한가” 여부는, 태아가 과연 생명인가 여부를 먼저 판단하면 자연스러운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생명을 살해하는 것이 정당한가 여부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명에 대하여서는 내면적으로도 외경하고 있다.
우선 모자보건법 제14조로 태아의 살해를 합법화하는 5가지를 입법한 관계자들 자신이, 같은법 제2조 제7호에서 “인공임신중절수술이란 태아가 모체 밖에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에 태아와 그 부속물을 인공적으로 모체 밖으로 배출시키는 수술을 말한다.”고 그 정의(定義)를 규정하고 있다. “태아가 모체 안에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자백을 스스로 하면서, 인공임신중절 즉 낙태를 이 핑계 저 사유를 붙여서 합법화하고 있는 것이다.
민법은 인류생활의 역사에서 축적되어 온 법의 기본이다. 가장 자연법에 가까운 법이다. 우리 민법 제1000조 제3호를 보면, “태아는 상속순위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녀가 1명이고 또 임신 중인 부인이 남편을 잃었을 때, 부인과 자녀 1명과 태아 1명 합쳐서 3명이 상속자이며 태아는 상속권의 권리주체인 인격체로서 존중받는다.
서양에서는 출생날짜부터 나이를 계산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태어나자 바로 1살의 나이를 가지고 있다. 우리민족은 어머니 몸속에서 지낸 달수를 나이로 계산하는 식견이 있다.
낙태지지자들이 pro-abortion 대신 왜 pro-choice 라고 스스로 부르고, 또 신문 방송에서 그들의 용어에 마음을 써 “선택하는 사람”이라 불러 주는가.
페미니스트들 중 일부 상당수가 “여성자신의 몸의 완전성과 자치권(bodily integrity and autonomy)을 위하여 인간의 재생산권리와 낙태할 권리 (reproductive rights, abortion rights)”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웬디 맥클로이(Wendy McElroy)같은 페미니스트는 “여성이 자기의 몸에 대하여 선택하는 것에 정부가 개입하지 말라. 정부의 개입은 가부장제도를 강요하려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여성의 성생활을 계획할 수 있게 하는 산아제한을 통하여 새로운 자유를 알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생명을 살해하는 것이 선택지(選擇肢)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태아가 또 하나의 생명이라면, 태아는 여성자신의 몸의 일부가 아니다. 자기의 것이 아닌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인류의 오랜 윤리의식이다.
태아의 생명이 누구의 것인가. 바로 태아 자신의 생명이다. 가톨릭신자나 크리스천이 아니라 해도, 높은데서 내려 주신 생명이라고 생각하고 느끼고 살아 왔다. 태아의 생명은 잉태한 여성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잉태한 여성이나 산부인과 의사가 살해를 선택할 수가 없다.
태아는, 어느 때 어느 조건에서도, 그 생명을 죽임 당할 어떠한 이유나 정당성을 찾을 길이 없다. 극악무도한 살인범이 사형을 당하는데도, 그에게는 현행 형사소송법상 3심의 신중한 재판절차가 보장된다. 구치소에서 현 행형법상 종교적 세례와 회개의 기회도 주어진다. 모자보건법 제14조에 해당이 안 되는 데도 불법으로 “인공임신중절시술”을 하는 경우는 물론, 제14조의 예외조항에 해당한다고 수술비의 돈을 들고 찾아와 그 나름의 사정을 호소하면서 낙태를 해 달라고 요청하는 합법적인 낙태의 경우에도, 생명을 죽임 당할 아무런 잘못이나 이유가 없는 태아의 생명을 살해하는 것은 어느 경우에도 “정당하지 못하다.”
물론 낙태시술 의사 한 사람의 즉각적인 1회의 판단에 따라 태아의 생명이 살해된다. 고소인의 주장 한마디만 들은 1심 판사인 산부인과 의사 한 사람이 반대신문의 심리도 듣지 않고 즉각적인 판단으로 태아의 생명에 사형선고를 한 즉시 형장에 끌어가 대번 사형집행을 하는 것이다.
헤로데가 베틀레헴 지역 일대의 2살 이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인 일이, 2000여년 후 한국의 산부인과 의사들과 기타 의술이라는 것을 행하는 사람들의 손으로 1년에 30만명 이상의 생명을 죽이는 일로 재현되고 있다.
모자보건법은 태아살해를 부추기는 법이기도 하다.
낙태에 관하여는 형법 제269조 제270조가 금지하고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세속법의 기준으로 보면, 모든 개별(個別) 금지와 처벌규정에 대하여 위법성을 저각(阻却)하는 일반(一般) 예외규정이 있다. 형법 제21조의 정당방위, 제22조의 긴급피난, 제20조의 정당행위 3가지이다.
권총을 겨눈 강도를 살해하는 것은 형법상 살인죄로 되지 않는다. 강도에게 대항하는 것이 정당(正當)하기 때문이다.
판자집을 사이에 둔 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판자집으로 옮겨 붙을 염려가 있을 때 불을 옮기는 남의 판자집을 헐어버리는 것은 형법상 재물손괴죄로 되지 않는다. 판자집을 헐어서 훨씬 비싼 자기 빌딩의 화재를 막는 것은 긴급한 피난(避難)으로서 상당(相當)하기 때문이다.
의사가 응급실에 실려와 의식을 잃은 환자의 신체에 의료칼을 대어 살을 베는 것은 형법상 상해죄가 되지 않는다. 사회상규(社會常規)에 어긋나지 않는 정당행위(正當行爲)이기 때문이다.
낙태가 정당방위로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태아가 강도와 같은 잘못을 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의 낙태 중 긴급피난이나 정당행위로 될 수 있느냐에 관하여 세속법상 여러 가지 논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세속법의 논리를 가지고서도 태아를 생명으로 보는 기준에서는 태아의 생명살해를 긴급피난이나 정당행위로 보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어쨌든 1973년에,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의 낙태금지와 그 제재규정에 대하여 세속법상의 위법성조각사유(違法性阻却事由)들이 여러 가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모자보건법이라는 별도의 법률에다가 “인공임신중절시술”의 합법화조항을 끼어 놓은 것이다.
당시 인구팽창을 막으려는 인간의 좁은 식견으로 산아제한을 장려하는 사회여론이 상당히 있었다. 당시 세계 선진국에서 일부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이 여성의 재생산권리와 낙태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자, 이에 동조하여 똑같은 주장을 하는 우리나라 여성운동가들의 영향도 있었다.
당시의 식견이 좁았다고 판명되어가는 이 시대에, 한국의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삭제 폐지해야 할 이유가 세속법적으로도 더 분명해 졌다.
기원전 5세기에 의사이고 의술저술가이며 실천가였으며, 전 세계 의사들의 모범(paragon)인 히포크라테스가 시작하였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문을 현대의 의사들도 계속 선서하고 다짐하고 있다.
그 7개의 선서 중 4번째 선서가 이렇다.
“나는 신들(희랍시대의 문구) 앞에서 나의 능력과 나의 판단력에 따라 선서하고 약정한다;
...............
넷째 나는 여성에게 낙태를 일으킬 약을 쓰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
...............
내가 이 선서를 충실히 지키면 나는 내 인생을 즐기고 내 의술을 시행하여 모든 사람 모든 시대에 존중을 받을 것이지만, 이로부터 피하거나 어길 때에는 내 인생과 의술, 나에 대한 평판은 반대로 되어지이다.”
(2010. 3.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