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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포퓨리즘(대중영합)을 경계해야 한다
이한수 아오스딩 (용인sang ho )
  한국정치가 지금 앓고 있는 포퓨리즘이라는 중병이 사회 각 분야로 번지더니 이제 우리 교회에 마저 침투하고 있다. 포퓨리즘은 진리나 사실까지도 다수의 의사로 결정할 수 있다는 착각을 부른다. 정치의 경우는 투표를 최종적인 의사결정의 수단으로 하는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평등 보통 선거로 공직자를 선출하고 의사를 결정하니까 정치를 하자면 다수를 추구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도 다수결이 만능은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흑(黑)을 백(白)이라고 믿는 다고 흑이 백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역사적인 사실이 다수가 달리 생각한다고 바뀌는 것도 아니다. 이런 포퓨리즘이 정치의 영역을 넘어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번지더니 드디어 교회에 까지 미친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절대적인 진리인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의 신비체 이기 때문에 다수의 의사 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이 앞서야 한다.
 
 다수를 추종하는 것이 신자를 늘리는 방법이라 해도 또 그것이 어떤 고매한 성직자가 기도하여 얻은 결과와 같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말씀과 상관없는 일이면 교회는 추종하기 보다는 침묵하는 것이 났다. 포퓨리즘이 교회 안에 발을 들여놓지 않게 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정치적 결정을 그대로 받는 것이 바로 포퓨리즘
 
  지난 5월 17일 주일미사에서 수원교구의 모든 신자들은 “5•18 민주화 운동희생자를 위하여”라는 기도를 하였다. 다음 주일인 5월 24일에는 “북한 교회를 위하여 ” 기도하였다. 북음과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 진행하는 신자들의 기도에서 한 것이다. 내란이라고 볼 수도 있는 소요였던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죽은 사람을 위한 기도이기에 시비를 부칠 생각은 없다.
 
  그러나 5•18이 민주화운동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찬동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또 모든 사람들이 찬동한다 해도 당시의 소요를 진압하다가 희생된 사람들도 있는데 어느 한편만 지적하여 기도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정치권의 결정을 그대로 교회의 것으로 받아들인 대표적인 교회의 포퓨리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북한 교회를 위한 기도도 그러하다. 북한에 교회가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일이고 공산 정권이 들어선 지 이미 64년이 되었으니 새로운 신자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성사의 은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는 북한교회형제들”을 위해 기도한 것이다. 차라리 북한정권이 회개하여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도록 해달라는 염원을 기도하는 것이 옳지 않았을가. 이것도 민족은 모든 것에 앞선다는 통일 지상주의자들을 추종하는 대표적인 포퓨리즘 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포퓨리즘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국론 분열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교회가 공권력에 쫓기는 데모대의 편을 들고 보호한 것은 약한 자의 편에 서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른 것이니 옳은 일이다. 또 그 결과 신자의 증가라는 전교의 열매를 거둔 것은 당시 그곳에 있던 성직자들이 잘 한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보편적인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5•18 사태 자체를 놓고 소요라고 보아 법질서 유지 차원에서 공권력 쪽에 섰던 사람들은 이런 보편적인 진리에 맞섰던 죄인들인가. 분열된 국론의 어느 편에 서는 것은 결코 교회가 할일이 아니며 어느 한쪽의 주장을 하는 이가 많다고 해서 동조한다면 결국 포퓨리즘이 되는 것이다.
 
  북한 교회를 위한 기도의 경우도 같다. 어느 때 부터인가 대한민국은 잘못 세워진 나라이고 대한민국의 국민이면서 자신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나라를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는 공격하면서도 북한 정권에는 아무 말도 못한다. 그래서 북한 정권의 회개는 기도하지 못하고 북한의 신자들만을 위한 기도를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래전에 붕괴된 소련의 회개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였고 결국 이 공산정권은 해체되었다.(나이 든 신자들은 한국전쟁중 매일 미사 끝에 소련의 회개를 기도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민족이 모든 것에 앞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미사에서 신자들의 기도에 정권의 회개가 아닌 북한신자들에게 축복해 달라는 것만 기도를 한다는 것 또한 포퓨리즘인 것이다.
 
  송기인 신부는 말을 해보라
 
  한국 천주교회에 포퓨리즘의 침투는 교회의 세속화라는 잘못된 양상의 상징적인 표상이다. 일반사회에서 통용되는 방법이 그대로 교회의 깊은 곳까지 파고 든 것이다. 서울시청 광장의 촛불데모의 소란 속에서 미사를 집전한 정의구현사제단이 그렇고 노무현 정권의 주요 포스트를 차지했던 신부님들이 이런 포퓨리즘의 선봉장들이다.
 
 자살한 냉담신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기 생명을 스스로 끊은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한 성직자가 있다면 그것도 포류리즘이다.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자기 손으로 끊는 다는 것은 천주교회에서 용서 받지 못하는 대죄이다. 노무현씨가 죽은 것은 정치보복의 결과로 보아도 좋고 또는 범죄자가 쫓길 때까지 쫓겨 결국 택한 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천주교회만은 이 죽은 방식에 대해 무엇인가 말이 있었어야 한다. 아니면 노무현씨를 성당으로 이끌었던 송기인 신부라도 무엇인가 말을 했어야 한다. 자신이 이끌어 영세를 준 신자가 냉담하였을 때도 아무 말이 없더니 이제 가장 큰 죄인 자살을 저질렀는데도 침묵하는 것 자체가 폼퓨리즘이다.
 
 세속의 많은 국민들이 추도한다고 그래서 국민장을 한다고 해도 천주교의 교리에 따르면 여전히 대죄이다. 여기서 교회가 아무 말도 않는다면 같은 잘못을 저지를 신자들이 생길 수 있다. 국민장이라고 천주교 신자들이 그의 빈소를 아무 부담 없이 찾는 다면 그것이 교회 세속화의 결과인 것이다.
 
입력날짜 : 2009-05-27 (21:23), 조회수 :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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