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방연구원 부원장대우
미국 대선에서의 오바마 후보의 당선은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우뚝 선 한 흑인 청년의 성공담으로만 기록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함의를 가지고 있다. 이번 대선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변화에 대한 갈망이 미국인으로 하여금 인종주의를 넘어 흑인 대통령을 택하게 한 엄청난 사건이지만, 오바마 당선 그 자체가 미국의 승리를 의미했다. 여론에서 지고 있던 백인 후보가 당선되었더라면 그 개인의 자질과 역량과 무관하게 미국은 인종갈등과 비방선거 논란으로 사분오열의 위기를 맞이했을 것이다. 오바마의 당선으로 전세계 GDP의 3분지 1과 국방비의 절반을 점하는 강대국인 미국은 다시 단결할 수 있었고, 많은 나라들이 미국이 구축해나갈 새로운 지도력을 주목하게 되었다.
이렇듯 오바마호의 출범은 축하받아 마땅한 숱한 사연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에 대해 아전인수식 기대와 환상을 가지는 것은 금물일터인데, 한국사회 일각에서 벌써부터 착각에 가까운 시각들을 표출하고 있음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기본적으로 보수정당
우선, 공화당 정부가 전통적으로 강경한 대외정책을 취하고 전쟁을 불사하는데 비해 오바마 행정부는 민주당이므로 평화적인 대외정책을 선도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liberal internationalism) 성향을, 그리고 공화당은 고립주의(isolationism) 성향을 보여 왔지만, 외교안보 정책에 있어서는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질서(Pax Americana)의 유지’라는 궁극 목표를 추구함에 있어 차이도 없다.
오바마 당선자도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전쟁과 ‘대화 부족’을 비판하고 있지만 그 역시 미국의 지도력을 뒷받침하는 압도적인 군사력을 갈구하면서 아프간에서의 강력한 대테러전쟁 수행을 공약하고 있으며, 심지어 육군과 해병대의 증강을 제안하고 있다. 1,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이 민주당 정부가 치룬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정당의 차이보다는 시기적 상황이나 지도자의 개인적 성향이 더 중요한 변수임을 아는 것도 어렵지 않다. 교육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부시 대통령을 대테러전의 전사(戰士)로 변신시킨 것은 9ㆍ11 테러와 그의 보수 기독교적 성향이었다.
북한 핵포기 거부시 더 강력한 체제 가능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면 향후 북핵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도 착각에 가깝다. 오바마 당선자가 대화를 강조한 만큼 1990년대 후반 등장했던 페리 프로세스(Perry Process)와 유사한 방식으로 일괄타결이 모색될 가능성은 예상할 수 있지만, 그가 핵무기비확산조약(NPT) 체제의 강화를 주장하고 “규칙위반국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천명한 것으로 봐서는 북한이 핵포기를 결단하지 않을 경우 부시 행정부보다 더 강력한 자세를 보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사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등의 강경발언을 쏟아냈지만 실제로 강력한 제제를 취한 적이 없다. 부시 행정부는 ‘잃어버린 3년 (2003-2006)’ 동안 이라크전쟁에 매달리면서 북한의 핵실험을 방치했고, 임기종료가 다가오면서는 북핵을 규명ㆍ폐기하는 것보다는 과시적 성과를 생산하는 ‘정치게임’에 연연했으며, 결국 핵을 가진 상태의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하고 식량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오바마 당선자가 대화를 강조한다는 이유만으로 유화적인 대북정책을 펼칠 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낭설에 가깝다.
무엇보다도 북핵 문제의 향방을 결정짓는 최대 변수가 북한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북한이 선뜻 핵을 포기하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미국 행정부가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 라는 차이 때문이 아니라, 핵을 통해서라도 체제를 지켜내야 하는 그들 스스로의 체제딜레마 때문이다. 북한이 체제개선을 결심하고 핵포기를 결단하는 경우에도 민주당이라고 더 반기고 공화당이라고 덜 반기는 것이 아니다.
‘진보 오바마-보수 이명박‘ 는 잘못된 인식
셋째, “진보적인 오바마 행정부와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가 대북정책을 놓고 충돌할 것”이라는 주장도 근거없는 예단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전임정부에 비해 좀 더 보수적이라는 사실 만으로는 오바마 행정부보다 더 보수적이라고 단정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최근의 남북관계 경색을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자세’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정치세력들이 ‘진보 오마바-보수 이명박 상충론’을 제기하고 있음도 흥미롭다. 하지만 이들은 많은 전문가들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경 보수’로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들은 이명박 정부의 ‘비핵ㆍ개방ㆍ3000’ 공약에 대해 “대북정책의 결과물이 되어야 할 핵포기와 개방을 선제조건으로 내거는 것은 사실상 대북지원을 차단하겠다는 것”으로 비판하지만, 실제로는 핵포기와 개방을 위한 성의있는 조치만으로도 대규모 대북지원을 동반할 수 있다는 신축적인 내용이다.
사실, 노무현 정부는 “무조건적ㆍ무비판적 대북지원은 북한체제를 강화시키고 안보위협으로 되돌아 온다”라는 비판으로 부터 자유롭지 않았고, 그러한 국민적 비판은 2007년 대선을 통해 표출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국민여론에 따라 노무현 정부 대북정책의 일부를 보완한 것일 뿐 반대편에 있는 정책이 아니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이 기본적으로 보수정당으로서 대외정책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전체적인 이념 스팩스럼상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오바마 행정부의 그것보다는 오히려 더 진보적인 것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남북관계 경색의 상당부분 책임은 북한에 있다
따지고 보면 북한이 대남 강경자세를 고수하는 데에는 일종의 ‘길들이기’ 또는 ‘기싸움’의 성격이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북한이 2007년 남한 대선을 통해 남한 국민의 다수가 무조건적 대북지원에 반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 당연히 ‘과거 대북정책으로의 회귀’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대남정책을 일부라도 수정하는 성의를 보이는 것이 마땅하다. 선거를 통해 정부를 구성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여론에 따라 지도자가 바뀌고 정책도 바뀐다. 북한이 최소한 이런 점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대남비방이 설득력을 가지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내부에서 정부의 대북기조를 ‘강경보수’로 확대 과장하면서 남북관계 경색의 원인을 정부에서만 찾으려 하는 것은 북한의 변화를 끌어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한국은 이런 오바마 정부에 대한 근거없는 환상이나 착각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나 벌일 처지에 있지 않다. 지금은 오바마 진영이 내걸었던 공약들과 주요 인사들의 정책성향을 분석하거 대비책을 궁리해야 할 때이다. 핵문제만 해도 그렇다. 오바마 행정부가 대화를 시도하되 실패시 강력한 제재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음을 간파한다면, 그 과정에서 한국이 소외되거나 한국의 국익이 배려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때이다. 막연한 기대감이나 근거없는 낭설에 안주하는 것은 북핵 문제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