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신학은 가톨릭 교리에 반한다.
거대한 거짓: 사회주의에 관한 교황 베네딕트 16세의 회..
투자와 공동선 Investment and the Commo..

Pope proposes serenity of Mary..
On The Unfolding of God's Self..
Pope Says Liturgical Abuses De..

종북(從北)구조의 본질과 수술법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이사장 문재인)'
서울수복 기념식에 불참한 골수좌익분자 박원순 서울시장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복거일
삼성경제연구소
임광규..

기사 확대 기사 축소
불교이야기 스님이야기
송정숙 글라라 (서초동본당)
 
 
 
 
 
 
 
 
 
 
 부처님에게는 〈분노〉만 하는 제자가 있다고 한다. 분노만 맡아서 해야 하는 그는 세상에 분노할 일이 있기만 하면 노상 분노하는 얼굴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제자가 분노를 맡아 주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은 안심하고 기쁨도 누리고 인생도 즐긴다고 한다.
 
 요즘은 분노담당 제자 같은 스님들만 잔뜩 있다.
 
 
 <「헌신 없는 종교」가 저지르는 갈등과 분란들을 보며
  大聖者(대성자) 간디의 통찰력에 새삼 감탄 하게 된다>
 
 
 인도의 성인 마하트마 간디가 말한 일곱 가지 大罪(대죄)가 생각난다.
 
 첫째, 철학 없는 정치.
 
 둘째, 도덕 없는 경제.
 
 셋째, 노동 없는 富(부).
 
 넷째, 人格(인격) 없는 교육.
 
 다섯째, 인간성 없는 과학.
 
 여섯째, 윤리 없는 쾌락.
 
 일곱째, 獻身(헌신)없는 종교.
 
 
 첫 번째 서 여섯 번째까지는 「大罪(대죄)란 말이 공감되는데 일곱 번째만은 조금 회의가 들고 이해가 선연하지 않았었다.
 
 무릇 종교란 인간을 향한 자비와 사랑을 근원으로 삼고 있으며 인생의 길을 선하고 참되게 수행하며 살기를 가르치는 일을 그 기저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에 종사하는 일로 「대죄」를 짓는 빌미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오늘날 벌어지는 교만하고 겸허하지 않은, 그러니까 「헌신 없는 종교」가 저지르는 갈등과 분란들을 보며 종교가 저지를 수 있는 「대죄」에 대해서 진작에 穿鑿(천착)했던 大 聖者(대 성자)의 통찰력에 새삼 감탄을 하게 된다.
 
 나는 천주교 신자다. 그런데도 개인적으로 불교에서는 오랜 친밀성을 느끼며 산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종교적 역사에, 우리를 그렇게 만든 요소가 내재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 할머니께서는 「아귀」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옛날 내 할머니께서는 아주 독실한 불교신자이셨다.
 
 그분은 「연화」라는 법명을 가지고 계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한 분에는 「수선화」라고 불리시는 분도 있었다. 치마저고리를 곱게 입고 태극선을 부치며 대화중에 서로 그런 법명을 부르시면서 이야기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아스라이 기억난다.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셔서 차리고 다니는 모습이, 옥색 모시 치마 적삼의 여름 모습이건 도독하게 솜을 둔 명주 두루마기에 조바위를 쓰시고 짐승 가죽으로 된 털목도리를 두르고 다니시던 겨울 모습이건 한결 같이 일품이셨다.
 
 그런 모습으로 절(寺) 나들이를 하시면서 가끔씩 우리들 손녀들 중 한 명씩을 번갈아 가며 데리고 다니셨다.
 
 학교에 들어가기도 더 전의 일로 할머니를 따라 절에 갔던 일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날은 절 나들이를 갔다가 점심 공양을 하게 되어 있었는데 할머니께서는 집에서부터 미리 미리 申飭(신칙)을 거듭하셨다.
 
 바리에 음식을 담되 먹을 만큼만 담을 것. 일단 담은 것은 좁쌀 알 하나도 남겨서는 안 된다는 것. 절 음식에는 비리거나 누린 것은 하나도 없으므로 집에서 해 주는 음식과는 다를 것이므로 좀 맛은 덜할지 모르나 정갈하고 귀한 것으로만 만든 음식이니 흘리면 주워서 먹고 절대로 남기지는 말고 한번 담은 것은 모두 먹어야 한다는 것이 당부였다.
 
 우묵하고 둥그런 바리를 들고 어른들이 하듯이 돌아가면서 나물이며 김치 같은 것을 밥과 함께 담았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보이던 그 바리의 음식이, 어린 내가 먹기에는 많았던지 먹어도, 먹어도 줄지를 않았다. 남기면 절대로 안 된다는 그 신칙 때문에 억지로, 억지로 먹고 나서 탈이 나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할머니께서는 「아귀」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덕분에 먹을 만큼만 덜어서 남기지 않고
  먹는 법의 훈련을 아주 어릴 적에 받았다>
 
 
 餓鬼(아귀)란, 몸은 산더미처럼 큰데 입은 바늘구멍처럼 작은 업보 많은 짐승이라고 했다. 이 짐승은 세상에 살다가 지은 죄 때문에 아귀로 환생한 것인데 그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절에서 공양을 하는데 쓰인 바리를 씻은 물만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다가 바리에 남기면 좁쌀알만 한 크기의 것이라도 그것을 씻은 물에 섞여 나간다. 그것을 씻은 물을 허기진 아귀가 바늘구멍만 한 입으로 먹다가 건더기가 입을 막아서 바리 씻은 물을 먹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러지 않아도 집채만 한 몸을 바늘구멍만 한 입을 통해 먹은 바리 씻은 물로 지탱하려니 늘 너무 배가 고파 지옥처럼 고행을 해야 하는데 건더기가 걸려서 그나마 먹지 못하면 아귀가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그러니 아귀가 한을 품고 음식 남긴 사람에게 해꼬지를 할 수도 있다, 는 것이 할머니의 설명이었다.
 
 절에서 먹는 음식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배고픈 미물이 많은데 아이들이 밥투정하고 밥그릇에 음식을 남긴 채 버릴라치면 그런 미물들이 한사코 분풀이를 하려고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다 생각하는 자비심을 기르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했다.
 
 할머니의 그런 이야기를 듣고는 아귀나 배고픈 미물들이 쫓아오는 꿈을 많이 꾸었고 음식을 너무 많이 남겼다 싶은 날에는 가위가 눌리도록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덕분에 먹을 만큼만 덜어서 남기지 않고 먹는 법의 훈련을 아주 어릴 적에 받았다.
 
 수채 구멍에 낟알 하나만 나가도 그 분은 그것을 씻어서 당신 입에 넣으셨다. 뜨거운 물을 버릴 때에는 그분은
 
 『쉬잇!』하고 소리를 내셨다.
 
 숱한 미물들이 그 언저리서 살고 있는데 느닷없이 뜨거운 물이 나가면 데어서 놀라고 다칠 수도 있으므로.
 
 
 <『예수교도 좋은 도리를 가르치더라.
  잘되라고 가르치지 나쁜 일 해도 좋다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더라』>
 
 
 『모두들 비키 거라! 더운 물이다!』하는 뜻으로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어려워서 굶는 이웃이 허다한 마을에 살면서 고기 같은 음식을 지글지글 끓이면서 냄새를 피우는 일은 사람 사는 도리가 아니라고 가르친 분이기도 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많다는 철학을 가진 분이었고 『요새 젊은이가 버릇 없다지만 내가 보기에는 인사성이 밝고 전차 안에서도 나 같은 노인이 서 있으면 벌떡 벌떡 일어나는 젊은이들이 많더라.』시며 세상을 긍정적이고 아름답게 보는 분이었다. 우리는 그런 그 분을 통해 「좋은 마음 갖는 일의 아름다움」을 배웠다.
 
 『그러니 너희들도 길에서 노인을 만나면 내 조부모나 부모처럼 여기고 예의 바르게 몸가짐해라』라는 것이 그분의 교육이셨다. 우리 손자손녀들은 모두 할머니를 좋아했으므로 그 분의 가르침을 못들은 척한 사람은 없었다.
 
 틈이 있으면 불경을 외고 새로 들으신 불경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시기를 좋아하시던 분인데 그러면서도 세상의 신식 지식을 자손들을 통해 듣는 일도 좋아하셨다.
 
 기독교가 성해져서 손자 손녀들 중에 개신교도도 생기고 천주교도도 생겼지만
 
 『예수교도 좋은 도리를 가르치더라. 잘되라고 가르치지 나쁜 일 해도 좋다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더라.』면서 누구든 하고 싶은 대로하도록 허락하셨다.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발음하시지 못하고 「구로서마소」라고 하시면서도 손녀딸들이 좀 야한 크리스마스 파티 옷을 준비해 놓고 부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할머니 방에 감춰달라고 하면 기꺼이 숨겨주셨다. 옷이 좀 야하다고 당신의 손녀딸들이 그리 쉽게 잘못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잃지 않으셨던 분이다.
 
 그 분에게서 풍기던 그 그윽한 蓮花(연화) 향 같은 모습은 필경 불교의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나는 안다.
 
 
 <이 종교가 지닌 관대하고, 護國호국적이고
  隨順衆生수순중생하는 순리의 덕목이 나는 좋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회심곡을 좋아하셨다.
 
 내가 어렸을 적까지만 해도 탁발승이 고깔을 쓴 모습으로 문간에 와서 시주를 청했다. 그런 스님 중에는 아주 가끔씩 회심곡을 부르며 시주를 구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럴 때에는 어머니는 「종구라기」에 시주할 곡식을 담아 들고 짐짓 숨어서 기다리셨다. 그 회심곡을 끝까지 듣고 싶어 그렇게 하신 것이다. 서리서리 얽힌 한과 체념의 사설이 풀려가는 그 회심곡의 맛을 어머니만한 나이가 되어서야 나도 좋아하게 되었다.
 
 이렇게 불교적 정서의 영향 속에 성장한 어린 날의 향기가 나에게는 축복이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특히 이 종교가 지닌 관대하고, 護國(호국)적이고 隨順衆生(수순중생)하는 순리의 덕목이 나는 좋다. 다른 종교가 더러 자발 맞고 천박한 폄훼 행위를 좀 하더라도 대범하게 넘어갈 여유를 가진 그런 기품이 불교에는 있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나는 해 왔다.
 
 아닌게아니라 다른 종교에 대해 다소 폐쇄적이고 적대적인 종파가 없지 않은 것이 기독교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자비심이 본령인 불교의 너그러움은 그것을 포용하는 편이라고 나는 믿어 왔다.
 
 그런데 종교도 오늘에 이르러 아주 달라진 것 같다. 혹시 성자 간디가 경계하며 말한 종교의 大罪(대죄)란, 이 같이 달라진 오늘날의 종교가 세상의 혼란의 원인이 될 것을 예측하여 한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할머니에게서 나던 그 향기로운 불교의 내음과 정서가 이제는 아득한 먼 곳의 이야기가 되었듯이 어느 종교도 이제는 본디의 모습이 아닌 것 같다.
 
 
 <장엄한 법복을 걸친 수많은 스님들이 세 과시하며
  정치권에 날마다 호통 치는 모습은 또 다른 낯섦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의 이기적이고 祈福(기복)적인 요구에 유난히 부응하며 배타적인 교세의 부강에만 열을 올리는 일부 기독교의 모습이나, 이념의 함정에 빠져 현세적 부정 권력에 동참하는 잘못을 정의로 오해하고 발호하는 현실참여 성직자들의 혐오스러움을 보고 있는 우리에게는 장엄하고 화사한 법복을 걸친 수많은 스님들이 세를 과시하며 정치권에게 날마다 호통을 치는 현금의 모습은 또 다른 낯섦이 아닐 수 없다.
 
 『깊고 그윽하고 평화로워, 동경하며 언젠가 歸依(귀의)할 곳』으로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것이 종교라고 생각하는 것이 낡고 부질없는 마음일까. 세상은 그렇게 되어 버린 것 같다.
 
 이런 일도 우리를 허망하게 하는 일의 하나다.
 
입력날짜 : 2008-10-02 (16:09), 조회수 : 3017
 백자평쓰기
 * 성명 * 비밀번호
 * 내용
 
*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기사와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원수를 사랑 하여라~
성령은 비둘기처럼 내려 오..
성령님은 어떻게 우리에게 오..
하느님은 인간을 하느님의 형..
하느님은 존재 하시는가?
글이 없습니다.
중국 전교여행을 회상하며
원수를 사랑 하여라~
성령은 비둘기처럼 내려 오..
하느님은 존재 하시는가?
성령님은 어떻게 우리에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