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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김용철 그리고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한 3비론
김태우 미카엘 (삼성동 성당)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삼성특검이 끝났다. 2008년 4월 17일 조준웅 특검검사는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삼성그룹 전·현직 고위간부 10명을 불구속 기소함으로써 99일에 걸친 ‘삼성특검’을 마감했고, 이어서 22일에는 이건희 회장이 그룹전략기획실을 해체하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경영쇄신안을 발표했다. 이로서 엄청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삼성 사건’이 일단락된 셈이지만 뒷맛은 여전히 개운치 못하다.
 
  뒷맛이 개운치 못한 주된 이유는 뜨거운 사회적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세 가지의 질문에 대해 아직도 ‘명쾌하게 합의된 해답’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사회가 명쾌한 해답을 찾아야 하는
 첫 번째 질문은 “이 정도의 처리로 재벌그룹들의 도덕적 해이를 덮고 넘어가야 하는가”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삼성의 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과연 우리사회가 필요로 하는 용기있는 내부고발자인가” 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는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정보에 따라 삼성을 고발한 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천주교 사제들의 행동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라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삼성과 김용철 변호사 그리고 정의구현사제단 모두에 대한 삼비론은 불가피해 보인다.
 
  삼성, 존경받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삼성은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이다. 삼성은 국내 600대 기업투자액의 25%를 그리고 대한민국 총수출의 20%를 차지한다. 말 그대로 삼성은 대한민국의 대표기업이며, 삼성의 추락은 곧바로 국가 신인도의 추락을 의미한다. 하지만 삼성이 나라경제에서 차지하는 막중한 비중이 삼성이 언제까지나 도덕 불감증에 안주해도 무방한 면책사유가 되지는 않는다.
 
  물론 한국사회는 한국이 현재의 경제적 번영을 누리기까지 삼성이 기여해온 바를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일부 일탈행동들이 불가피한 관행처럼 여겨져 왔다는 점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더는 안 된다.
 
 불법 비자금 조성, 경영권 불법 승계, 불법로비 등 한국의 대기업들이 관행처럼 자행해온 일탈행동들은 이제는 더 이상 양해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대기업들이 진정 역사에 남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이런 관행들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투명경영, 도덕경영, 합법경영 그리고 전문경영 체제를 서둘러야 한다.
 
 굳이 자식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싶다면 빈자들을 허탈하게 만들지 않는 정당한 방법으로 자식들을 전문 경영인으로 육성하면 될 것이다. 당연히 국가도 재벌들이 무리하지 않고도 투명·합법경영을 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뒷받침을 해주어야 한다.
 
  이제 삼성은 시대가 달라졌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경제적 기여가 도덕적 해이를 정당화하는 시대가 지나갔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삼성은 ‘세계적인 브랜드’에 안주하지 말고 ‘도덕적인 기업’ 그리고 ‘존경받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국가 역시 대기업의 불법과 탈법에 대해서 더 이상 관용과 이해로 대해주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무리 국가경제에 미치는 손실이 크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제2, 제3의 김용철 변호사 없어야
 
  결론부터 말해 김용철 변호사를 ‘정의로운 내부고발자’로 보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우선, 김 변호사가 자신이 재직했던 삼성을 죽이기 위해 폭로에 나서게 된 배경, 동기, 명분 등이 석연치 않다. 김 변호사가 삼성에서 몇 년 일하고 받은 대가가 100억 원이 넘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땅의 수많은 서민들과 월급쟁이들은 허탈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수천만 원 또는 그 이하의 연봉으로 온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숱한 가장들을 깊은 자괴감 속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김 변호사가 폭로 이전에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돈을 요구했다는 소문, 가족의 일로 많은 돈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주변의 분석 등 김 변호사로 하여금 거사(?)를 결심하게 만든 것으로 알려진 원인들이 석연치 않다. 김 변호사가 진정 사필귀정의 정의를 보여주기 위해 이 같은 일을 시작했다면 이런 분석들을 불식시킬 정당한 ‘배경과 동기’을 먼저 밝히고 명분을 인정받았어야 했다.
 
  김 변호사 개인적으로는 거대기업을 상대로 한 싸움을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심이 있었겠지만,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그기에 부합하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즉, 개인적인 감정, 이익, 반감 등의 차원을 뛰어넘는 다수대중의 공익을 향한 동기와 명분을 갖추어야 한다. “김 변호사가 결과적으로 사회정의 구현에 기여하지 않았는가” 또는 “김 변호사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거대기업의 비리가 밝혀질 수 있었겠는가” 라는 결과론적인 주장만으로는 그를 ‘정의로운 고발자’로 만들지 못한다.
 
  둘째, 김 변호사는 세상을 사람이 사는 곳으로 만드는데 필요한 전문가의 최소 의무를 저버렸다. 김 변호사의 행동이 사회를 밝혀주는 영웅적인 행동으로 인정받는다면, 이는 특정 기업의 비리를 규명하는 차원을 넘어 사회규범 전체가 무너지게 될 것이다. 생각해보라. 천주교 사제들이 신자들의 고해성사 내용을 공개한다면, 공인회계사가 자신이 감사한 기업의 기밀을 유출한다면, 변호사가 자신이 변호하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보를 공개한다면, 또는 의사가 자신이 치료한 환자의 치부를 세상에 알린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것들은 전문가들이 세상을 사람이 사는 곳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일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 최소한의 도리를 저버린 배신자이다.
 
  정의구현사제단, 사제의 본분으로 돌아가야
 
  정의구현사제단의 일탈행위는 더욱 심각하다. 우선, 정구단이 벌여온 선동적 정치행위는 천주교 정신에 위배된다. 정구단은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1974년에 결성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상 북한의 대남노선을 지지하는 좌익운동을 선동하는 단체로 변질되어 왔다.
 
 1987년 이후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1989년 문규현 신부의 무단 방북, 1989년 이후 주한미군 철수 및 한미동맹 해체 운동, 2003년 송두율 교수 석방 운동,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관련 반미집회, 문정현 신부의 원자력 반대 운동, 2002년 6·15 선언지지 선언, 최근의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운동 등 정구단이 주도 또는 참여해온 좌익활동이나 선동정치는 끝이 없다. 심지어 문규현 신부는 1998년 방북시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궁전의 방명록에 “김 주석의 영생을 빈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하느님의 종이 되기를 맹세한 사람들이 하느님을 부인하는 체제에 동조한다는 것이 과연 말이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수천만 북한주민을 복음도 소망도 없는 암흑 속에 가둔 장본인에게 “영생을 빈다”고 하는 것이 과연 사제가 할 수 있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제들의 정치참여는 사회적 미덕이 될 수 있지만, 친북좌경 활동은 미덕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지학순 주교 같은 분이 군사독재에 분연히 항거하던 1974년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많은 평신도들은 정구단 사제들이 김용철 삼성의 내부정보를 받아 삼성의 비리를 폭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탐탁하지 않게 보았을 것이다. 많은 평신도들은 정구단이 여전히 보혁갈등을 부추기는 선동정치를 마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한국의 많은 천주교 평신도들은 이제라도 정구단 사제들이 본분으로 돌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오늘도 수많은 교우들은 “날마다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이루는 사제들을 언제나 깨끗하고 거룩하게 지켜주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정구단 사제들이 진정 이들 평신도들의 애끓는 기도를 의식한다면 더 늦기 전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하느님 백성의 길잡이가 되고 일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번 삼성 사건을 끝으로 사제들이 더 이상 선동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정구단 사제들이 이 같은 평신도들의 바램을 무시한다면 평신도들도 더 이상 앉아서 지켜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입력날짜 : 2008-05-14 (17:56), 조회수 : 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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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우 길정식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것은 글에서보다는 더 많을 것입니다. 그분의 명예를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표현을 약화시키려 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아울러, 김 변호사가 없었다면 거대기업의 비리가 밝혀졌겠는가 하는 ..  2008-05-21 오후 6:55:00
 길정식 잘 읽었습니다.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는데 김용철씨에 대한 소문을 가지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네요. 그 사람에 대한 소문을 확인하기가 어렵다면 그냥 현재의 상황에서 삼성에 대한 고발의 결과에 대한 평가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흔히..  2008-05-19 오후 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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