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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과 핵문제의 원칙
김태우 미카엘 (삼성동 성당)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www.kimtaewoo.org
 
  8월 8일 정부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 합의’ 발표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발표 그 자체도 기습적이었지만, 회담일을 8월 28일로 잡은 상황에서 “지금부터 의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설명에 의아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있었다. 2000년 제1차 정상회담시 평양의 텔레비전들이 “김정일 위원장께서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을 허락하셨다”라고 보도했던 사실을 상기한다면 우리 대통령이 연거푸 평양에 가는 것을 별것이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그럼에도 정상회담이 돌이킬 수 없는 합의라면 관심의 초점은 결국 “어떤 의제로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 것인가”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에 따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임기 마지막까지 열심히 노력한 정부’로 기록될 수도 있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막바지에 무리수를 둔 정부’로 기억될 수도 있다. 북한의 수해로 회담일이 연기된 이상 지금은 국민이 회담에 임하는 자세를 가다듬고 원칙을 확인하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양쪽 정부에 명확한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핵심사안인 핵문제와 관련해서는 일단 세 가지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즉, 북한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완전한 핵폐기를 약속하고 실천할 가능성, 핵개발을 재개하여 긴장국면을 조성할 가능성, 당분간 2·13 합의를 이행하는 제스처를 보이면서 평화공세를 취할 가능성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고립과 굶주림을 무릅쓰고 핵개발을 강행해온 반세기 역사를 되졸아볼 때 첫 번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2·13 합의 이후 유연해진 부시 대통령의 대북정책이나 한국의 대북지원 재개를 감안할 때 북한이 스스로 긴장을 조성하여 ‘차려진 밥상’을 걷어찰 가능성도 일단은 희박하다. 때문에 우리 국민은 세 번째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의 여건도 그렇다. 2·13 합의에 핵무기, 플루토늄, 농축활동 등을 폐기하거나 규명하는 내용이 없음에도 한미 양국은 합의를 이행하겠다는 북한의 약속에 안주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 국민의 상당수는 북한이 2·13 합의를 이행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핵능력을 남긴다는 사실조차 의식하고 있지 않다. 게다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수렁에 빠져있는 미국은 북한이 ‘궤도이탈’을 감행하지 않는 한 시비하지 않을 태세다.
 
  북한으로서는 2·13 합의이행만으로 크게 생색을 내면서, 즉 완전한 핵폐기가 아닌 방법으로 평화공세를 취하면서 핵폐기를 재촉하는 국제여론을 회피하고 남한의 정치에 개입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런 속내를 가지고 정상회담에서 실천의지가 실리지 않는 ‘비핵선언’ 같은 것을 내놓 수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국민은 깨어있어야 하며, ‘비핵선언’이 나오더라도 실천이 담보되기 전까지는 감동받지 않는 냉정함을 지녀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북방한계선(NLL) 문제도 원칙을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북한으로서는 정상해담 의제에 ‘해상경계선 재설정’을 포함시키려 할 수 있지만, 한 마디로 턱도 없는 발상이다. 해상경계선이 남하하면 이미 북한군의 야포에 노출되어 있는 수도서울의 옆구리마저 전략적 취약성을 안게 되며, 인천 국제공항도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떠나, NLL은 주권의 상징이자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담장이다. 세계 많은 나라들이 한 조각의 땅이나 바다를 놓고 전쟁을 불사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꼭 경제성 때문만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NLL 재설정 필요성’을 언급하여 쓸데없이 북한에게 시비거리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은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각오해야 한다.
 
  평화체제 논의에도 원칙이 있다.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기본적으로 필요하고 바람직한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북한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스스로는 수령독재 체제의 온존을 위해 온갖 무리수를 두면서 남한이나 미국을 향해 ‘평화체제 협상’을 제안한다면, 여기에 진실이 실릴 공간은 넓지 않다. 그 경우 한반도 평화정착보다는 대북지원 확보, 한미동맹 이완, 미군 철수명분 축적, 남한사회의 보혁갈등 심화, 남한정치 개입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정상회담에 임하는 우리 국민은 동족을 사랑하는 열린마음과 함께 “현실적으로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라는 확고한 원칙을 보여주어야 한다. 북핵에 관한 한 “반드시 폐기되어야 하고 그때까지는 확실히 억제되어야 한다” 이외의 해답은 없다. 하지만 북한이 비핵을 결단한다면 더 많은 민족적 온정을 베풀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NLL 문제나 평화체제 문제도 그렇다. 북한이 정상회담을 통해 해상경계선 재설정을 위한 빌미를 만들고자 한다면 또는 스스로는 변하지 않으면서 남한사회의 분열만을 획책한다면 우리는 단호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이 경계선을 존중한다면 남북이 공동어로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평화의 바다’로 만들어갈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이익의 상당부분을 북한에 양보해도 무방할 것이다. 북한이 민주화와 개혁개방을 수용한다면 우리가 평화체제 논의를 주도해나가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때에 국민이 정상회담 그 자체에 감격한 나머지 ‘생각없는 군상들’의 모습을 연출한다면 북한은 평화공세에 더 많은 유혹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핵무기를 적당히 눈감아주면서 국민의 혈세를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으며, 50년 이상 선조들이 지켜온 바다를 함부로 넘겨줄 권한을 가진 사람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은 북한에게 이런 점을 확실하게 일깨워주어야 한다.
 
입력날짜 : 2007-09-03 (21:25), 조회수 : 8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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