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9일 동아일보 오피니언(원본)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북핵 문제가 진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북핵 문제는 미국이 대북 직접대화에 나서 2·13 합의를 성사시킴으로써 해결의 기미를 보였으나 이내 불거진 BDA 은행의 북한구좌 문제로 좌초했다. 하지만 북한구좌에 대한 동결이 해제되면서 북한은 합의에서 약속한 ‘핵폐쇄 및 봉인’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미국도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만족감을 표시하는 중에 한국 정부의 대북지원 발걸음도 한결 빨라지고 있다. 비료 30만 톤의 선적을 서둘러 완료했고, 쌀 40만 톤의 선적도 개시했다. 2·13 합의 직후에 불었던 ‘평화의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부시 대통령의 대북 유화정책 선회는 한미 양국에서 “약인가 독인가“라는 논쟁을 불러 일으켰었다. ‘핵해결을 위해 필요한 실용주의적 선회’로 보는 시각과 ‘북한의 기만적인 핵게임을 연장시켜줄 졸책’으로 보는 시각이 대립해온 것이다. 이에 대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을 역임한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한국 언론을 통해 “미국은 핵해결을 위해 유연함과 인내를 보여 왔을 뿐,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관계정상화나 평화협정을 추진할 만큼 무원칙하지 않다”고 설파하면서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서 우려가 불식되는 것은 아니다.
2·13 합의이행으로는 불충분
2·13 합의는 핵시설의 폐쇄·봉인·불능화를 규정하고 있지만, 북한이 보유중인 핵무기와 플루토늄을 폐기한다는 내용은 없으며 또 다른 핵무기 제조경로인 농축시설을 규명할 수 있는 조항도 없다. 2·13 합의를 이행하더라도 여전히 ‘기본 핵능력’이 남는다는 뜻이다. 북한으로서는 2·13 합의만을 이행하면서, 다시 말해 ‘일정한 핵능력’을 유지하면서도 평화공세를 통해 충분한 반대급부를 추구할 수 있다고 믿을 이유가 많다.
첫째, ‘평화의 바람’이 북한에 유리하게 불고 있다. 과거 CVID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해체)이외의 타결을 불용한다던 미국이 지금은 북한의 2·13 합의 이행의사 표명에 흡족해 하고 있으며, 한국도 대북지원의 속도를 더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그렇다. 일정한 핵능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절대절명의 체제수호 수단을 지키는 것이 될 뿐 아니라, “지도자의 위대한 과학업적으로 미 제국주의를 극복했다”라는 선전논리를 스스로 철회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필요도 없다. 그것만으로도 한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고, 여차하면 한국을 주눅들게 만들어 남북관계를 압도할 수도 있고 보혁 갈등을 부추길 수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남한의 경제력을 무력화하는 전략카드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을 수 있다.
둘째, 북한의 핵행보가 한국의 정치상황과 불가분의 연관관계를 가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13 합의의 이행과정은 북한에게 많은 반대급부를 얻어내는 살라미(salami) 전술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한국 언론과 방송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장밋빛 기사들을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는 기간이 될 것이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한국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려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핵폐쇄·블능화 조치가 한국 언론에서 대서특필되는 동안 이것이 완전한 핵폐기로 가는 중간과정인지 북한이 기획한 시한부 평화공세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전문가에게도 쉽지 않은 과제이다. 일반국민에 이런 분별력을 주문한다면 지나친 요구일까.
북한이 핵폐기 의지 보여주어야
요즘 한미 양국의 전문가들 사이에는 북한이 핵폐쇄·불능화 조치를 취할 때 들 비용부담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완전한 핵폐기를 결단한 상태에서 취하는 조치라면 돈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중유를 보내거나 추가적인 대북지원을 위해 돈을 써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이 핵무기와 플루토늄을 내놓고 농축프로그램의 존재를 고백한다면 이것들을 해체하거나 인수하는데 돈을 아낄 필요가 없다.
최대의 문제는 북한의 진심을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못하다는 점이다. 이럴 때 하나의 타개책은 북한 스스로가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며, 완전한 핵폐기를 약속하는 추가합의를 조기에 수용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일 것이다. 미국도 분명한 행보를 보여야 한다. 완전한 핵제거 만이 불변의 목표라는 점과 모든 반대급부는 완전한 비핵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확실히 함으로써 북한에게 딴 생각을 할 여지를 주지 않아야 한다. 부시 대통령의 변신이 ‘독’이 아닌 ‘약’이 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
북한이 핵시설을 폐쇄하겠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핵폐쇄 자체에만 도취되어 이후에 펼쳐질 수 있는 시나리오를 도외시한다면 너무 근시안적으로 북핵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냉정한 관찰이 필요하다. 북한이 완전한 핵폐기 약속을 미룬 채 핵폐쇄·불능화와 관련한 뉴스거리를 생산하는 데에만 매달린다면 우리는 시한부 평화공세 의혹을 떨칠 수 없다. 미국이 어정쩡한 자세를 지속한다면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2·13 합의만 이행하면 지금 가진 핵무기는 양해하겠다고 북한에게 언질을 주었는가”라는 질문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핵게임에서 북한은 세 가지 T(term, tempo, timing 조건, 템포, 타이밍)을 장악해왔다. 우리는 세 가지 P(precaution, prudence, patience 경계, 신중, 인내)로 대처해야 한다. 지금은 대북지원 확대계획과 동시에 핵평화공세에도 대비해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