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와 漢字常用

보수 우익을 대표하는 측에 있는 L 씨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 내가 내 집 아이들에 대해서 특별히 자랑할 것은 없는데 한 가지 신통한 것이 있다. 이 아이들이 반공이고 보수라는 점이다. 그 애들이 나를 특별히 존경하거나 그렇게 하도록 누가 특별히 영향을 미친 것도 아닌데 그렇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그 아이들이 그렇게 된 것은 그 아이들이 漢字(한자) 상용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
<“漢字常用하면 `외곬 좌익 안 된다”>
L씨가 「하등 이론적인 증거는 댈 수 없지만」이라고 전제하면서 자신의 아이들이 반공적이고 보수적인 생각을 갖게 된 것은 漢字 때문이라고 말했을 때, 그건 좀 엉뚱한 이론이라고 생각하며 좌중은 의아해 했다.
무엇보다도 요즘 젊은이들이 「漢字常用(한자상용)」을 한다는 대목부터가 생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하는 설명을 듣고 이해가 갔다. L씨는 언론인 시절 주일 특파원을 지냈기 때문에 성장기의 자녀들이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고 그래서 일본어를 잘한다. 그러다 보니까 일본말을 써먹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런 뜻에서 「漢字常用」의 일을 하게 된 셈이라는 것이다.
漢字를 사용하는 것이 보수적인 성향을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 知識(지식)의 국제성 같은 것을 갖게 해서 젊은 날에 편협한 좌파적 외곬으로 빠지게 하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이다.
L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제는 떠나버린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巨匠(거장) 백남준 씨가 생각났다. 그가 처음 고국에 錦衣還鄕(금의환향)하여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퍼포먼스를 했을 때 그를 만나고 나서 썼던 필자의 칼럼이 있다. 거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끊임없이 멜빵이 흘러내리는 바지와 지척거리는 걸음걸이, 금방이라도 침을 흘릴 것 같은 입 언저리와 맺힌 곳 없이 웃음을 띠고 다니는 표정들이 그냥 보고 있어도 웃음이 나오게 하는 사람이 〈위대한〉백남준 이다.》 반 백 년 전의 서울말이 그대로 冷凍庫(냉동고) 에 저장되어 있다가 튀어나온 것 같은 그의 말투도 너무 재미있다.
아무한테나 반말 투로 말하고, 지금은 쓰지 않는 말을 예사로 말한다.
〈뭐, 뭐 했다우〉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그렇게 코미디언 같은 행동을 예사롭게 하면서도 그가 뱉는 말에는 기발하고도 번득이는 叡智(예지)가 담겨 있어서 듣는 사람들을 순간순간 긴장하게 만든다. 어찌 보면 잘 계산해서 찾아냈음직한 지혜와 지식들이 내장되어 있다가 아주 심상한 척 능청스럽게 튀어나와 당황하게도 한다.
〈퍼포먼스는 성공하기가 30%의 확률밖에 안 돼. 야구도 그렇잖아. 타율 30이면 3할이지. 퍼포먼스는 야구나 비슷한 거야.〉 장난처럼 보이는 그의 퍼포먼스가 그렇게 힘들게 벌이는 일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우리식의 한글 표기로는
`국제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 서울에 머무는 동안 그는 존 케이지의 訃音(부음)에 접했다. 그때 그는 아주 추연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그 친구 퍼포먼스 때문에 빨리 죽은 거야. 내가 그만 하라고 그래 줬었는데.... 안 할 수 없으니까 계속하더니 쓰러지고 말았어.〉아주 갈아 앉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는 그를 보며 퍼포먼스가 그만큼 힘든 일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대개의 천재가 그렇듯이 그는 많은 사람들이 범상하게 잊고 있는 일들에 대해 기발하면서도 신선하고 충격적인 의견이나 안목, 시각을 보여주곤 한다.
우리의 國字(국자)생활에 대한 그의 관찰도 그 중의 하나다. 그의 의견에 의하면 우리 식의 한글 표기로는 우리 젊은이들이 국제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글만을 사용할 경우 글자 속에 외래어나 表意文字(표의문자)의 어원을 가진 언어의 의미를 파묻히게 하여 시각적인 刻印(각인) 작업을 못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비디오 아티스트다운 관찰이다.
그의 주장으로는 우리에게서 그 점은 아주 심각하므로 어떤 재벌이 나서서라도 그런 문자 정책이 어떤 현상과 결과를 낳고 있는지 연구할 시급한 단계에 와 있다고 열을 올린다.
〈예를 들어 보자구. 일본말은 漢字를 그냥 일상에서 살려 쓰잖아. 걔네들은 또 「가다가나」와 「히라가나」도 함께 쓰잖아. 외래어나 외국어, 외국인 이름을 보통 언어와 구별해 주니까, 그 이상한 발음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이 세계적인 思潮(사조)나 학술은 물론 문화예술을 이끄는 각 분야의 지도적인 인물들에 대한 지식이 우리보다 월등하다우.
“국어정책 `빨리 바로 잡으라구 그래.
`안 그러면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질 거유”
나두 말이야 한글이 아주 좋아요. 워낙 오래 전에 배웠고 써본 지가 일생에 몇 년 밖에 안 되고, 그것두 여나믄 살에나 써봤을 뿐인데 지금도 급하면 영어 스펠을 무시하고 한글로 써야 편하고 빠르지. 그건 그렇지만 그렇다구 그걸루만 우리 문자 생활을 단순화시키면 우리는 뒤쳐질 수밖에 없어. 더두 말구 말야. 한국 대학생 백 명하고 일본 대학생 백 명 하구 모아놓고 아주 똑같은 조건에서 한번 시험해 보라고. 그러면 그 차이가 확실히 드러날 걸. 큰일이야. 그렇게 되면 백발백중 우리가 져, 지지 않구. 실력이 없으면 지지. 국어정책 빨리 바로 잡으라구 그래. 안 그러면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질 거유.〉침을 마구 튀겨가며 주장하는 그의 말을 들으며 평소에 한글 전용론 측에 더 많이 기울어져 있는 나도 충격을 느꼈다.
漢字가 주는 표의 적 강점을 뇌리에 새기고 「가다가나」와 「히라가나」를 혼용함으로써 또 다른 시각적 다양성을 기능적으로 정착시킨 일본의 경우가, 어떻게 유효한가에 대해서 그가 말하는 부분은 확실히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문장 속에 「빈」이라는 지명이 들어 있는 것을 空(공)이라는 뜻으로 잘못 풀어 읽었다가 엉뚱한 뜻이 되어 한동안 애를 먹었던 기억이 되살아나 그런 경험을 이야기했더니 그는
〈그런 거 너무 많지. 안 그러우?〉하며 좌중을 돌아보았다. 그의 말을 신호로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의 이런 의견은 우리가 그냥 묵살할 일이 아니라 대응책을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특히 그는 컴퓨터로 글을 쓰는 지금이 〈종이가 발명되어 셰익스피어 시대가 열린 시대〉보다 더 중요한 轉機(전기)이므로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미래의 예술을 창시한 우리가 낳은 천재의 말이다. 경청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20년도 더 전에 쓴 칼럼이다. 이제는 백남준도 고인이 되었고 그를 기리는 모임이 생겨 일주기의 기념 글 집을 낸지도 한참 되었다.
<돈을 진. 선. 미의 밖으로 모는 모순된 사상>
그런데 오늘 L씨의 말을 들으며 잊었던 그의 말이 생각나서 들추어 보았더니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젊은이들의 국제 경쟁력을 위한 國字政策(국자정책)에 대한 고 백남준의 의견의 살아 있는 증언 같은 것을 L씨에게서 들은 것 같은 느낌이다.
한미 FTA가 체결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한 일 중에서 이 일만은 놀라운 결단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에 싸여 있다. 아닌게아니라 어쩐 일로 그가 FTA 타결 같은 일을 해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옴 직 할만 한 일이다.
이 일을 계기로 젊은 세대들에게 부과된 「국제 경쟁력」이라는 말이 피를 말리는 실감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과격한 저항이다. 아니, 이 FTA 체결로 인해서 직접 피해를 보는 사람들의 심정은 과격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보다는 그들을 업고 이상한 행적을 하는 정치세력들의 행동이 해괴하고 고약하다. 이런 이상한 짓을 하며 세월을 낭비하기에는 우리 앞에는 참 많은 과제와 숙제가 산처럼 쌓여 있다.
상업이라면 그것을 필요 惡(악) 쯤으로 규정해야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것처럼 잘못 인식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도 이런 해괴한 분위기가 만든 왜곡의 현상일 것이다.
그래서, 돈 버는 일에 생명을 걸고 있는 사람들이 돈을 우습게 보는 것처럼 행동하는 위선의 몸짓을 하며 이중적 인격 분열을 일으키는 것도 우리 사회고 현실이다. 그런 일들이 젊은이들을 혼돈된 가치관 속에 길을 잃게 만든 것은 우리 기성세대인 셈이다.
역사가 시작되기 수만 년 전부터 도구를 사용하여 삶을 도모하기 이전에 상업적인 인간이 먼저 등장했다는 인류학적 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런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본능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인간적 眞善美(진선미)의 가치에 어긋난 것인 것처럼 보아야 하는 우리의 잘못된 현상은 많이 고쳐져야 할 일인 것이다.
<선진국은 예외 없이 商人의 나라
商人들은 신용사회를 낳았다>
근대적 경제활동의 주체인 商業(상업)이 등장한 이후에 생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용어에 대해 언급한 어떤 글을 읽었다. 그것에 의하면 이른바 信用社會(신용사회)라는 개념은 상업행위가 낳은 것이라고 한다.
그 이전의 농경사회나 물물교환 수준의 시장체제에 머물 때에는 우리 한자 권 문화에서 이런 개념의 말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의롭고 청결한 사회를 지칭하는 말에 「신용사회」처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선진국인 나라는 예외 없이 상인의 나라다.
FTA는 말하자면 장사를 하는 조건을 좋게 개선하기 위한 국가적 조건 조성의 일인 것이다. 그런 환경과 여건을 마련하고 나면 이제는 경쟁력을 키워가기 위해 멈추지 말고 노력해야 한다.
<언어 속에 한자어를 내재 하고 있는 우리에게
한자실력은 커다란 자원이고 힘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언어 속에 한자어를 내재하고 있는 우리에게 한자실력은 커다란 자원이고 힘이다.
그런 한자가 젊은이들의 국제적 안목을 넓히고 수준을 향상시키는 일에 기여한다는 심증을 우리는 함부로 피력할 수도 없는 우리 사람들의 태도는 한심하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경우와 비교하면 그렇게 외면하고 아닌 것처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한다.
한편의 칼럼만 남기고 잊었던 백남준의 國字論(국자론)을 새겨 보며 스스로 무신경하게 보낸 세월이 반성된다.
3不(불) 정책이 교육의 무너뜨릴 수 없는 교두보라고 시대착오적인 주장을 하는 집권 세력이 FTA를 체결했다는 일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이 있거나 말거나 생각 있는 사람들이 모여 우리의 국자정책도 진지하게 짚어 볼만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