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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 놓아라!
김원율 안드레아 (송파동본당)
  내려 놓아라!
 
 고승 탄산스님의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탄산스님과 한 젊은 스님이 강가에 이르러 한 아름다운 여인이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에 탄산스님이 "제가 건네드리죠" 하며 젊은 여인을 안아 강을 건넌 후 내려 놓았다. 여인은 웃으며 "스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계속해서 반나절을 걸었다. 이 때 젊은 중이 탄산스님에게 "우리처럼 출가한 사람은 여색을 가까이 할 수 없는데 아까 왜 그런 짓을 하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탄산스님은 "아! 그 여인을 두고 하는 말이냐? 난 벌써 내려 놓았는데 넌 아직도 안고 있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탄산스님이 그 여인을 건네준 것은 결코 그 여인을 안고 싶어서가 아니었으므로 마음에 아무 것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젊은 스님은 반나절이 지나도록 그 여인을 내려 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젊은 스님처럼 번민과 고통을 내려 놓지 못하고 안고 있다.
 
 예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 : 28)고 말하였다. 로마의 압제에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분노와 증오, 절망감만이 가득했다. 예수는 그들에게 평화를 찾고 마음의 짐을 내려 놓으라고 설교하였다. 이리하여 그의 말씀은 절망에 가득 찼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음(Good News)으로 받아 들여졌던 것이다.
 
 숲에 서있는 나무는 스스로 고통을 만들지 않는다. 흐르는 물에게 고통은 없다. 이 세상 아무 것도 스스로 고통을 만드는 것은 없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도 인간처럼 그렇게 많은 고통에 시달리지 않는다. 인간은 관념에 집착하면서 헛된 생각에 사로 잡혀 스스로 고통을 만들어 낸다.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욕망과 번뇌에 사로 잡혀 끝없는 번뇌와 고통을 만들어낸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열매가 맺힌다. 자연은 보이지 않는 법칙에 따라 돌고 돈다. 그리고 아무도 이를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로지 ‘나’의 감정, ‘나’의 생각에 억매여서 자연의 법칙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고 집착에 매달리며 욕망과 번뇌를 내려 놓지 못하고 있다. 인간이 얼마나 허망한 집착에 빠져 있는가 하는 사실을 필자가 기억하는 사건들을 통하여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1988년 서울에서는 건국이래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인 하계올림픽이 열렸고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 4위의 성적을 거두었으며 올림픽 기간 중 국민의 응원열기와 환호의 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그러나 인생사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작은 그늘도 있는 법, 올림픽후 이어서 장애인 올림픽이 열렸고 얼마 후 신문에 조그맣게 난 기사에 눈이 끌렸는데 필자에게 그 기사는 가슴 아픈 하나의 비화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장애자 올림픽의 심볼마크는 홍익대 미대 출신의 어느 가난한 미술학도가 응모하여 최 우수작을 받음으로써 장애인 올림픽을 상징하는 로고로 채택되었었다. 이는 필자가 보아도 장애인들의 희망과 불굴의 의지를 표상한 것으로 상당히 뛰어난 예술성과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영광의 주인공은 올림픽이 끝난 얼마 후 불의의 사고로 아까운 재능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의 아버지는 시중은행 지점장 출신으로 보수적인 은행원의 가치를 간직한 분이라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식에게 법대에 진학하여 법관의 길을 갈 것을 권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미술학도로서의 꿈을 가졌던 그는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미대에 진학하여 미술을 전공하였고 대로한 부친은 자식에 대한 모든 지원을 끊어버렸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학비를 벌면서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술학도로서의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마침내 어려움 끝에 장애인 올림픽의 심볼마크에 자신의 작품이 선정되는 영광까지도 안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청년은 그 후 하숙방에서 밤늦게 까지 작업에 열중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불행히도 난방을 위해 켜둔 연탄가스의 사신(死神)에 걸려 그만 생을 마감하고 만 것이었다. 그 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후회와 슬픔으로 통곡하였으나 이미 저승으로 간 아들이 살아 오리는 만무하였다.
 
 우리는 자식사랑이 유별난 민족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정말 그 자식 사랑이 순수하게 자식의 참된 행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식을 남부럽지 않게 일류 대에 보내고 또 그에 걸 맞는 명문가의 배필을 맞아들여 남 보기에 버젓한 혼례식을 올리고 자신의 가문이 명문가라는 것을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자식에게 온갖 교육열성을 다 쏟는 것은 아닌지 차분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필자가 지금도 기억하는 희대의 패륜사건이 하나 있는데 2002년 5월 분당에서 발생한 교수 아들의 부친 살해사건이다. 그 교수는 부부가 모두 세칭 일류 대를 나와서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렸고 그야말로 일류 명문 가정이라 할 만하였다. 그리고 교수 본인의 자존심도 한없이 높았다. 그러나 모든 세상일이 자신의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의 아들이 자신이 그토록 바라는 일류 대를 가지 못하고 속된 말로 빌빌거렸던 것이었다.
 
 그의 아들에 대한 실망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틈만 나면 아들에게 가혹하리 만치 그것도 끝없이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는 자식에게 집안 명예에 "X칠하는 놈"이라는 욕설을 서슴지 않았고 이에 그 청년도 거의 미칠 지경이 될 만큼 시달렸다. 그리하여 이 청년은 군대에 입대하기로 하였고 사건 당일도 친구와 저녁 겸 술을 한차례 하고 집으로 들어 왔는데 이 날도 부친의 훈계는 가혹하고 끝없이 이어졌다. 결국 잠자리에 누운 아들은 드디어 환청을 듣기 시작하였다. 분노와 증오심은 끝 간데 없이 치달았고 결국 생각은 생각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 청년은 분노로 통제불능이 되고 말았다. 결과는 자식으로써 아버지를 죽인 패륜사건으로 귀결되고 말았고 비극의 여파는 그 옆방에서 잠자던 할머니 마저 살해하는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우리는 많은 경우 "집착을 버려라" 고 하는 교훈을 인생에서 한 두 번은 듣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교훈을 들었으면서도 자신의 집착은 집착이 아니라 합리적인 인생의 방향이고 이 길만이 자식을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이의 실행에 온갖 무리 수를 다 하고 있다.
 
 우리는 명예, 돈, 그리고 남의 눈을 의식하는 체면문화에 사로 잡혀 무엇이 내 인생에 있어서 정녕 중요한 것이고 무엇이 나에게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인지 잊고 살고 있다.
 
 우리는 건강이 중요하다고 하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살고 있다. 그러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절제와 섭생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몇 사람이나 실천하고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천 년을 살 것 같은 착각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강철 같은 체력을 가진 사람도 함부로 몸을 굴리면 그 어느 날 갑자기 생을 달리 하는 경우가 왕왕 생긴다. 필자의 고교 친구 중에도 술을 과하게 들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친구가 둘이나 있다. 그들은 무척이나 건강했던 친구들이었으므로 필자의 친구들은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고까지 하였었다.
 
 심장의 세포는 간과 달라 한번 손상되면 다시 재생되는 법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술은 심장세포를 약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술을 과하게 하고 찬물로 샤워하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는 경우도 발생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결국 동물과 같다. 먹이를 먹은 뱀을 햇빛을 차단한 독 속에 가둬 놓으면 먹은 것을 다 토 해낸다고 한다. 동물은 햇빛이 있는 동안 활발하게 활동하나 해가 지면 활동을 멈추고 쉬게 된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저녁은 일찍 귀가하여 집에서 가족과 같이 식사하면서 적당량을 먹는 것이 건강에 좋고 장수하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한국사람에게 있어 저녁은 모든 사교와 입신 양명의 수단이며 일찍 귀가하는 것은 그만큼 생존경쟁에서 뒤쳐지는 것을 의미할 만큼 세상은 각박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한번 친하면 적당하게 친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없이 친해야 하고 술자리는 1차가 아니라 2차, 3차로 이어지며 이에 따라 섭취하는 고기나 식사량도 엄청나게 많아진다. 그러나 어느 한의사가 쓴 책에 따르면 밤에 술과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은 바로 몸에 독(毒)을 쌓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또 문제는 이러한 밤의 술자리나 연회가 일주일에 한번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밤 이어진다는 점이다.
 
 생전에 세계 4대 생불이라고 일컬어 졌던 숭산 대선사의 설법에 따르면 오늘날 세계가 이처럼 살육이 횡행하고 불안한 것은 동물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영혼은 영원불멸하고 윤회하는데 사람들이 옛날에는 수렵과 한정된 자원으로 고기를 먹는 회수가 일년에 몇 차례 안될 정도로 제한적이었으나 지금은 스위치 한번으로 몇 만마리의 소가 도살될 정도로 많은 육류가 사람에게 제공되게 되었다. 이처럼 죽어간 동물의 영혼은 천 만 마리 중에 한 마리 꼴로 인간의 몸을 빌려 환생하는데 이러한 동물의 영혼을 빌려 태어난 사람은 동물의 사고를 하게 되고 이러한 것이 세상사의 불안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또한 고기를 과다 섭취하면 인간의 영혼은 맑아지지 않고 점차 사고가 동물을 닮아간다고도 하였다.
 
 물론 위대한 불제자의 설법을 우리 같은 범인들이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 하더라도 건강이라는 관점에서도 육류의 과다섭취는 우리 몸에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특히 한국인들은 건강이나 정력에 좋다 하면 온갖 종류의 기화요초(奇花妖草)나 희귀동물을 종류를 가리지 않고 취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천연기념물이나 희귀동물이 남아나지 않는다. 필자는 이런 사람들이 과연 부인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정력에 좋다는 동물을 찾는지 의문이다. 이렇게 죽어간 희귀동물들과 이를 섭취하는 사람간에는 악의 업보를 쌓는 것이 되므로 이들이 내세에 어떤 모습으로 환생할 지 필자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로 서울 근교의 러브호텔은 만원이 되고 서울은 점점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로 변하고 있다. 그리하여 막 굴리고 쇠약해진 몸을 일시에 회복시키기 위해 무언가 독특한 남이 모르는 건강법을 찾게 되고 이러한 일에는 수전노도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건강은 이처럼 듣지도 보지도 못한 희귀동식물로 건강이 일시에 회복되는 건강한탕주의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절제와 섭생으로 건강을 돌보아야 함은 너무나 평범하면서도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필자는 약 10여년 전부터 충남아산에 있는 성모복지원에 가서 뇌성마비 장애아를 위해 봉사활동을 하여왔었다. 당시 필자는 식사도 제대로 삼키지 못해 뱉어내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 해도 얼마나 큰 하느님의 은총인가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아이들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로 결심하였다. 그 후 필자는 아이들에게 한번도 공부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아내는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오로지 아이들에게만 헌신하였고 지극한 정성으로 아이들을 키웠다. 아내는 아이들이 유아기를 벗어날 무렵에는 침대에서 동화책을 읽어주었고 아이들이 커서 학교 갔다 돌아 올 때에는 반드시 집에 있다가 애들을 맞이하여 준비했던 간식을 주곤 하였다. 아내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 엄마는 반드시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교훈처럼 지키고 실천하였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얼른 숙제를 끝내고 밖에 나가 저녁 먹을 때까지 고무줄 넘기, 사방치기 등 정신 없이 놀았다. 심지어는 저녁 먹는 것을 잊을 정도로 열심히 놀았다. 그러나 아내는 정성으로 아이들을 키웠으나 애들에게 학원을 여러 곳 보내거나 공부하라고 타이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착했으며 또 건강하게 자랐다. 필자는 아이들이 커오면서 애들에게 단 한차례 소리 지른 적도 없었다.
 
 우리에게는 남을 보고 자신의 주관을 지킬 수 있는 평상심이 필요하다. 옆집의 아이가 학원을 두 군데 보내면 우리 집 아이는 학원을 세 군데 보내야 하고 옆집의 아이가 밤 12시에 자면 우리 집 아이는 밤 한시에 재워야 경쟁에서 이긴다는 한없이 어리석은 생각을 사람들이 하고 있다. 그러나 학원공부는 밥을 떠먹여 주는 공부이며 학원에 중독되면 스스로 연구하고 고민하여 얻어지는 공부의 결과를 기대할 수 없어 나중에는 현저히 학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공부는 집중력이 중요하다. 밤에 잠 안자고 공부하여 학교에서 남들 수업 받을 때 졸면 그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필자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소리는 안 했지만 단지 아이들에게 한 이야기는 "학교가면 선생님 말씀 열심히 들어라" 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이렇게 수업태도가 진지한 아이들은 처음 본다고 선생님들로부터 칭찬받을 만큼 수업태도가 올발랐다. 또한 잠 오면 눈 부벼가며 공부하기 보다 잠 푸근하게 자고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라고 일러 주었다. 따라서 아이들은 자연적으로 맑은 정신으로 집중력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그리고 둘 다 일류대학에 진학했다. 큰 애는 연대 영문과를 졸업했고 작은 애는 서울대 독문학과를 졸업했다. 이는 필자가 딸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뜻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학원공부를 시키면 아이들은 학교공부가 시들해진다. 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을 학원에서 미리 배웠으니 학교에서 새로 배우는 호기심도 없어지고 학교공부가 시시해져 점점 학습의욕도 없어지는 것이다. 이는 아이에게 독약처럼 해로운 것이다. 왜 부모들이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그 많은 학원에 보내지 못해 안달하는지 필자에게는 수수께끼이다. 지금 학원을 다섯 개 여섯 개를 다니게 해도 어차피 대학갈 때 공부를 지금 가르칠 수는 없다. 오히려 대학갈 때는 공부에 진절머리가 나고 염증이 나서 책이 보기도 싫어 질 수 있다. 부모들이 멀리 보고 현명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고 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가족의 건강이요 화목이다. 그러나 우리는 곁가지를 좇느라고 얼마나 많은 번민과 미움과 질시와 고통으로 날을 보내고 달을 보내고 해를 지새우는가? 필자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최근에는 숭산스님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책을 읽고 있다. 필자가 숭산스님을 알게 된 것은 미국 뉴저지주의 중산층가정 가톨릭 신자 가정에서 태워났으나 후일 하바드 대학원 재학시절 숭산 큰스님의 설법을 듣고 감동하여 화계사 스님으로 출가한 현각스님의 책 "하바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숭산스님의 가르침은 한결같다. "나는 누구인가?" "오직 모를 뿐"이라는 화두를 잡고 참선을 행하여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자신의 몸을 자신으로 착각하고 살 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렌터카에 불과하고 일정기간 지나면 폐차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 갈 뿐이다. 참 나는 이 렌터카를 운전하는 우리의 영혼이며 이 영혼은 영원불멸이므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를 알면 부처가 된다. 이를 가리켜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언제나 이 순간 밖에 없다.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 불교의 깨달음은 경전을 읽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념, 철학, 교리는 내려 놓아라. 부처마저도 내려 놓아라. "오직 모를 뿐"이라는 마음으로 수행하라. 경전에나와 있는 말에 집착하지 말라. 생각을 끊어라. 참선을 할 때에도 참선에 집착하지 말라.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본성을 깨닫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 즉 "내려 놓아라"고 하는 것, 이 것이 숭산스님의 가르침이다.
 
 우리는 자신의 일에만 신경을 쓰면서 살아도 자신의 구원을 이룰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일에 관심을 쏟고 살고 있다. 남을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이 조물주 앞에 섰을 때 얼마나 당당하게 자신이 생전에 선한 일을 많이 행하였는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또한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앞서 스스로 얼마나 덕을 쌓기 위해서 노력했는가에 대해서 답할 수 있는가? 그런 다음 타인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전부 내려 놓아야 한다. 명예욕, 번민, 질투심, 남에 대한 의심, 이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생활이 진심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끝없는 번민과 욕심과 분노로 이 세상을 살아 갈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탄산스님이 젊은 스님에게 했던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에게 해보자. "너는 아직도 그 여인을 안고 있느냐? 내려 놓아라!"
 
입력날짜 : 2007-01-31 (20:16), 조회수 : 3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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