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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많이 베푸십시오. 홍 일 기자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그것은 은총입니다.” 오웅진 신부는 이 짤막한 말을 가슴에 새기며 일생 동안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오갈 데 없는 이들에 대한 그의 변함없는 사랑과 헌신은 “꽃동네”라는 이름으로 결실을 맺었다. 지난 26년간 꽃동네는 우리 사회가 이룩한 급격한 경제발전과 산업화의 그늘에서 소외된 모든 이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왔다. 꽃동네는 오웅진 신부가 사제서품을 받은 70년대 중반, 걸인들을 돕기 위해 주머니돈 1300원을 털어 자그마한 집을 지으면서 시작되었다. 그후 오웅진 신부는 꽃동네와 함께 걸어오며 사회복지분야에서 그 누구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다. 현재 수도자와 봉사자를 합쳐 5000여 명이 살고 있는 꽃동네는 그 규모로 봤을 때 더이상 “동네”라 부르기 어렵다. 드넓은 40만 평 부지에 연수원과 사회복지대학교, 그리고 복지종합시설을 갖춘 한국의 대표적인 복지시설이 오늘날의 꽃동네이다. 젊고 의욕적이던 오웅진 신부는 어느새 얼굴에 주름이 굵게 패인 5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지만 그의 열정만은 예나 지금이나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모른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명동성당 근처에 있는 꽃동네 서울 사무실에서 오웅진 신부를 만났다. 조르기만 하면 뭐든지 줄 것 같은 인상을 가진 그에게 어떤 “통찰”을 구해도 될 듯싶었다. 그래서 오신부로부터 행복한 삶이란 무엇이며, 그가 꽃동네를 운영하면서 얻은 지혜와 한국 사회복지제도의 현주소에 대해 들어보았다. Q 많이 바쁘시죠?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오웅진 : 많이 바쁠 건 없고 그냥 주어지는 대로 사는거죠. 꽃동네에 계속 머물면서 일도 보고 여러 곳에서 강연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Q 꽃동네를 세울 당시 이야기를 좀 해주십시오. 오웅진 : 1976년, 제가 사제서품을 받고 충북 음성군에 부임했을 때 일입니다. 어느 날 저녁, 노을이 물들어 가는 성당 앞에 앉아 있는데 허리가 구부정한 할아버지가 어깨에 큰 자루를 메고 걸어가는 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어 홀린 듯이 뒤따라가 보았죠. 그랬더니 그 할아버지는 어느 천막으로 들어가셔서 거기에 있는 걸인들한테 자신이 하루 종일 구걸해온 음식을 나눠주시는거예요. 그분이 바로 꽃동네 정신,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그것은 은총입니다”를 몸소 실천하신 최귀동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날 밤 저는 잠을 못 이뤘습니다. ‘나도 어려운 사람을 위해 평생을 살겠다고 결심했는데, 건강도 좋고 직책도 있는 내가 못할 것이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다음날 곧바로 가진 돈 1300원을 털어 시멘트를 사서 천막이 있던 그곳에 걸인들이 살 수 있는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집에서 걸인 18명을 보살펴 드렸죠. 차츰 꽃동네의 규모가 커지면서 전문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중에 정신병요양원, 결핵요양원, 노인요양원, 알코올중독자요양원, 심신장애인요양원, 그리고 병원까지 차례차례 생기게 된것이죠. Q 꽃동네에는 “사랑의 연수원”이라는 교육시설이 있는데,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오웅진 : 하다보니 이 일이 한도 끝도 없는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자꾸 걸인들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연구해보니 결국 사랑의 결핍에서 생기는 것이더라구요. 그때 사람들에게 사랑을 가르쳐줘야겠다는 어떤 사명감이 생겼습니다. 사랑의 연수원은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입니다. 이곳 연수원에는 행복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가르칩니다. 우리가 행복이라는 단어는 많이 쓰지만 그에 대한 제일 보편타당한 정의를 내려주거나 그것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곳은 어디에도 없더란 말이죠. Q 행복이 무엇인지 정말로 궁금합니다. 오웅진 : 행복이란 것은 만족스런 삶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욕구가 충족돼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죠. 인간의 욕구라는 것이 워낙 다양하긴 하지만 여러모로 연구하고 종합해본 결과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더라구요. 그건 바로 소유하고 싶은 욕구, 지배하고 싶은 욕구, 사랑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인간이라면 이 세 가지 욕구는 누구나 다 갖고 있죠. 그런데 이 욕구란 것이 끝이 없습니다. 소유욕을 봅시다. 사글세를 살던 사람이 전세방으로 옮겼다고 해서 그 욕구가 충족되는 게 아닙니다. 자가용도 사고 싶고, 또 그걸 갖고 나면 욕구는 계속 커져서 세상 것을 다 내 것으로 해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천상의 것마저 자기가 다 가지려고 하죠. 지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배하면 할수록 더 지배하고 싶어집니다. 또 사랑의 욕구란 것도 대단한 것입니다. 엄마는 사랑하는 자식이 아프면 ‘내가 차라리 아팠으면 좋겠다’고 하잖아요. 이러한 욕구들이 충족되어야만 인간은 만족하고, 또 만족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Q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오웅진 : 일반적으로 인간은 남을 소유하고 지배하고 싶어하면서도 자신은 누구한테도 소유당하길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소유하고 지배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소유를 당하고 지배를 당하게 됩니다. 제가 대한민국 걸인부터 시작해서 전세계 걸인들을 다 연구해봤습니다. 걸인들의 공통점은 달라고만 할 줄 알고(소유와 지배만 생각하지) 베풀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만났는데 상대방이 계속 나를 소유하고 지배하려고 하면 그 사람이 싫어집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됩니다. 걸인들을 보면 부부생활도 못하고 자식하고도 못 살아요. 오로지 달라기만 하고 주질 않으니까요. 반면에 사랑이라는건 베푸는 것인데 그게 그렇게 좋습니다. 어느 날 초등학교 동창 한 명이 저를 보러 꽃동네로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는 학창시절 자기가 점심을 굶고 있을 때 하나도 안 먹은 도시락을 건네준 저를 잊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그 보답을 하려고 국수 한 트럭을 싣고 왔다고 하더라구요. 40년 전에 도시락 점심 한 끼 준 것이 국수 한 트럭이 되어 수천 명이 먹고도 남을 상으로 되돌아온 것이죠. 남에게 베푸는 삶, 바로 사랑을 베푸는 삶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삶이고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Q 예나 지금이나 오웅진 신부님과 꽃동네를 따로 떼어 생각할 수가 없는데요. 이렇게 큰 시설을 운영하시면서 어려움은 없습니까? 오웅진 : 제가 지금 꽃동네에서 모시고 있는 환자가 음성, 가평, 서울을 합쳐서 4000명이 되는데 하루에 먹이고 입히고 하는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갑니다. 오늘 하루만 견딘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내일도 살아야 되고, 그리고 또 그 다음날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26년을 살았단 말입니다. 환자와 돈, 봉사자 이 셋의 조화가 맞았기 때문에 꽃동네를 유지할 수 있었던겁니다. 그런데 이중에서 한 가지만 있으면 세 가지가 동시에 해결되는데 그게 뭔지 아십니까?제가 신부가 된 첫해였습니다. 하루는 군청직원이 앰뷸런스에 환자 한 명을 싣고 왔더라구요. 그런데 그 사람이 뼈와 가죽만 남고 살이 하나도 없었어요. 영문을 들어봤더니 연세가 70도 넘은 이 할아버지가 평생을 머슴으로 살았대요. 소여물을 쑤려고 뜨거운 물이 담긴 그릇을 들고 가다가 넘어져서 100도 이상되는 뜨거운 물에 살이 익어버린거예요. 주인은 그 할아버지를 읍사무소에 맡겼고 그뒤 군청과 병원에서 서로 그 할아버지를 떠넘기다가 결국엔 걸인들과 사는 저한테 보낸거죠. ‘귀신의 아버지’인 신부(神父)까지 안 받아주면 누가 받아주겠습니까? 그래서 제 방으로 모셔와 몸을 닦아드리는데 구더기가 썩은 엉덩이 부분에 수도 없이 많아요. 곁에서 지켜보던 신자들은 어찌할 바 모르고 있는데 제가 신문지를 깔고 핀셋으로 하나하나 뗐지요. 작업을 다 끝내고 책상을 보니까 돈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거예요. 신자들이 감동해서 있는 거 없는 거 다 털어놓은거죠. 그때 제가 깨우친 사실이 이겁니다. ‘이렇게 어려운 환자들을 그냥 놔둔다는게 말이 되나? 그들을 돕다보면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서 봉사자가 되고 돈이 들어오는데.’ 그때부터 확신을 갖고 길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한 사람 두 사람 모셔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깨달은 이치는 환자들이 많아지면 봉사자들도 그만큼 많이 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봉사하러 왔다가 봉사자가 부족하면 그게 알려져서 봉사자들이 더 오니까요. 또 봉사하러 왔다가 봉사자들이 많으면 다시 사람들이 돈으로 갖고 옵니다. 그래서 밥하려고 창고를 열어보면 쌀이 떨어질 때가 없어요. 그래서 꽃동네는 봉사자도, 돈도 떨어지지 않죠. 즉 환자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겁니다.(웃음) Q 선진국은 사회복지제도가 발달해서 국가가 나서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돌봐줍니다. 우리나라는 복지가 주로 자선단체나 개인의 자선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인데요.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오웅진 : 바람직하다 아니다는 결론적인 생각이고 그렇게 된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예컨대 호주라든지 캐나다 같은 나라는 근대에 남의 나라로부터 침략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국가에서 쉽게 사회복지를 시작할 수 있었지요. 우리나라는 전쟁을 겪었죠. 그래서 복지라는 것이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처음 시작됐습니다. 그때는 국가가 돈이 없었으니까 외국에서 원조를 받은 밀가루 같은 구호물자로 죽을 쑤어서 밥해주는 것이 고작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입니다. 제가 꽃동네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어요. 사회복지법이 70년대에 만들어졌지만 법만 만들었지 국가적인 혜택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경제부흥이 있었던 70년대말이 지나고 8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야 사회복지의 중요한 틀이 갖춰집니다. 우리 꽃동네만 해도 1984년도부터 국가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Q 현재 우리나라 사회복지제도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오웅진 : 오늘날 대한민국의 지도를 보면 어느 시, 도에는 복지시설이 너무 많고, 어떤 곳은 하나도 없는 불균형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국가에서 도시계획을 할 때 요양원, 양로원, 고아원, 갱생원 같은 사회복지시설을 고려해야 균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죠. 그러나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보조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개인이 시설을 세우려고 하면 국가에서 재정적으로 일정 비율을 보태주는 형식이죠. 그렇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가 더 어려운 것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점점 더 복지사회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에는 절대 빈곤층이 문제가 되었지만 현재의 복지는 상대적 빈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시급한 관건입니다. 절대 빈곤은 뻔히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구호만 제대로 되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상대적 빈곤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노사분규, 노인문제, 학대받는 아내와 아이들, 소년소녀가장 등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단 말이죠. 그래서 요사이 생겨난 것이 기초노동, 기초생활보장법입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복지의 형태가 많이 다양해졌죠. Q 한국 사회가 점점 살기 좋아지고 있다고 생가하시는지요? 오웅진 : 흔히 평균수명을 복지의 척도 중 하나로 봅니다. 그런데 어느 연구기관에서 낙태되는 아이들의 수명까지 고려한 조금 특이한 평균수명을 냈습니다. 그 결과 원시인들의 평균수명이 18세였고 현대인들의 수명이 16세로 나왔습니다. 낙태되는 아이들의 수명까지 합산하니 오히려 원시시대 때보다 평균수명이 더 떨어지더란 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낙태되는 아기들의 수가 4000명 정도이고, 1년에는 약 150만 명입니다. 때가 되면 살아서 나올 연약한 인간을 죽이는 것입니다. 겉으로 살기 좋아진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정신문화는 더 후퇴했다고 봐야죠. 그런데도 그런 것에 대해서 우리 언론매체는 다루지 않아요. 어떤 탤런트가 마약했다고 대서특필하면서 사람을 죽이는 낙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이 시대에 가치의 전도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덕의 가치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서로 건강할 때는 잘 살다가 병이 들면 가차없이 상대방을 버립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30%입니다. 또 이혼하면서 자식을 버리기도 합니다. 그건 자신만을 위해 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지난해 3월,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천사의 집과 유치원이 꽃동네에서 개교했지요. 저의 소망은 꽃동네의 규모가 작아지는 것인데 그게 그렇게 잘 안되네요. Q 우리의 기부와 봉사 문화가 변해야 한다는 말들을 합니다. 무엇이 문제인지요? 오웅진 : 우리나라는 정의 문화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동정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내주면서도 받는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받는 사람도 무시당하기는 싫다 이겁니다. 그래서 사람을 대할 때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동정심을 사랑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다 화를 입게 됩니다. 정과 사랑은 다릅니다. 사랑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나 실행하지 못합니다. 나한테 잘하는 사람한테 잘하는 건 짐승들도 하는겁니다. 사랑은 나한테 잘못하는 사람한테도 잘해줘야 하는겁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늘의 뜻을 따라 사랑을 해야지 자기 뜻대로 하는 건 사랑이 아닙니다. Q 주제를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신부님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신다는데 그런 성격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오웅진 : 중학교 도덕교과서를 보면 삶의 유형을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이기적인 삶, 또 하나는 개인적인 삶, 다른 하나는 이타적인 삶입니다. 예전부터 “씨도둑질 못한다”고 우리 할아버지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일생을 살다가 돌아가신 분이었습니다. 우리 아버님, 어머님도 그렇게 사셨지요. 우리 가족은 삼대째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조상들로부터 복을 받은 것이지요. 어릴 때부터 저는 남한테 베푸는 데 흥미가 있었어요. 그래서 일가친척집에 심부름을 갈 때면 눈깔사탕 하나라도 사들고 갔죠. 작은아버지댁에 가는데 버스비를 아껴 사탕을 사곤 마구 뛰는겁니다. 그러니 작은아버지는 제가 얼마나 귀엽겠어요. 6·25동란이 났을 때였으니까 사실 자기 조카가 와도 먹을 게 없어서 힘들었을겁니다. 그런데도 저를 집에 못 가게 붙잡고, 갈 때는 온가족이 제게 무엇인가를 조금씩 주었죠. 그걸 갖고 집에 가면 형제들에게 나눠주었고요. 지금도 서울에 매주 한번씩 올라오면서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을까 궁리를 합니다. Q 만약 사제가 안되셨다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실까요? 오웅진 : 사제의 길을 가지 않았어도 전 이 일을 했을겁니다. 6·25동란이 나고 제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였습니다. 하루는 학교를 가려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쌀이 없어서 밥을 못 지으시는거예요. 그 전날 저녁에 죽 한 그릇 먹은 것으로 학교를 가자니 참 힘들더라구요. 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고 ‘너는 크게 될 사람인데 아침 한 끼 굶었다고 학교를 안 가서야 되겠느냐’며 갔다오면 쌀밥 한 사발 해놓을테니까 어서 가래요. 쌀밥 한 그릇에 4시간 걸리는 학교를 왔다갔다 한거죠. 워낙 배가 고프니까 공부가 안되고 책을 잡으면 하얀 쌀밥만 보이더라구요. 학교가 끝나서 돌아오는데 한 10리쯤 오니까 너무 허기져 하늘이 노랗게 보이더라고요. 이러다가는 큰일나겠다 싶어 둑으로 내려가서 물을 실컷 마신 다음 다시 둑을 올라갔는데 어디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거예요. 그때 저는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무섭고 안타까운 장면을 봤어요. 피난을 가던 사람이 비행기 폭격을 당해 다리 한 짝이 떨어져나가 길 위에 누워 있는겁니다. 알고 보니 그 사람과 그의 딸이 새우 한 마리를 놓고 서로 먹으라며 옥신각신하고 있는거예요. 그때 그 광경을 보면서 저는 ‘앞으로 공부해 정치가가 되어서 저렇게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러나 국민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집안 형편이 더욱 나빠져 중학교는 꿈도 꿀 수 없게 됐죠. 국민학교때 담임선생님이 제가 중학교를 못 가고 집에 있으니까 어느 날 편지와 함께 혼자서 공부할 수 있는 학습서인 강의록을 저한테 보내셨어요. 편지를 읽어봤더니 “친애하는 오웅진군, 젊어서 고생은 금 주고도 못삽니다. 배워야지 삽니다”라고 써 있더라구요. 그런데 혼자 집에서 공부하는 게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대전으로 올라가 신문팔이를 하면서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어느 날 8·15 광복 기념행사 때 오기선 신부님이라는 분이 대통령한테 훈장을 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신부님이 전쟁 통에 고아들 3000명을 도운 공로로 상을 받는 것을 보고 저는 큰 감동을 받았죠. 그때 저는 ‘정치가가 아니라 천주교 신부가 되어 걸인들을 도와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오신부님이 계신 대흥동 성당을 찾아가 매일 새벽미사를 드렸는데 100일째 되는 날 천주교 신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학교를 끝마치고 군대에 갔다온 뒤 신학교를 나와 신부가 되기까지의 33년이란 세월은 꽃동네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기간이었던 셈이죠. Q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가장 크게 후회되는 일은 무엇입니까? 오웅진 : 저는 아직 후회라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는데 스트레스가 뭔지도 모르고, 콤플렉스가 있다고 하는데 콤플렉스가 뭔지도 모릅니다.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데 무슨 후회나 스트레스가 있겠어요. 저는 꽃동네에서 일하는 것이 저의 전부이기 때문에 노는 것처럼 여겨져 괴로운 게 없습니다. Q 신부님도 쉬실 때가 있을텐데요. 여가시간은 어떻게 보내십니까? 오웅진 : 대전에 있는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제가 강의를 한 10년 이상 했을겁니다. 한번은 제가 강연을 하다가 “여러분, 세계를 위해서 가장 크게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많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몇 시간이나 공부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말하길 자기는 19시간 공부한다는거예요. 그러니까 모두들 놀라더라고요. 사실 대단한 것이죠. 그런데 제가 그 얘길 듣고 껄껄 웃으면서 “그렇게 크게 될 사람이 겨우 19시간 공부해서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하고 말하니까 이 사람이 속상해갖고 “신부님은 그러면 꽃동네에서 하루에 몇 시간 동안 일합니까?” 하고 되묻는거예요. 그래서 제가 “전 하루 24시간을 일합니다” 하고 대답하니까 학생들이 막 소리를 지르면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냐는겁니다. 그런데 저는 화장실에 가서도 꽃동네 일을 생각하고, 밥먹으면서도, 운전하면서도 일을 합니다. 저는 심지어 꿈속에서도 그 일을 계속합니다. 깨어나면 또 하고요. 듣고 보니 말이 되죠? 이제까지도 그렇게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계속할겁니다. 사실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죽어서 더 많이 합니다. 많은 추종자들이 그 정신을 이어받아 따르잖아요. Q 약간 철학적인 질문입니다만, 지하철에서 동냥을 하는 장애인들이나 아이들과 마주치게 되면 자선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오웅진 :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적극성을 띠면 됩니다. 제가 보좌신부로 있을 때 어떤 남자가 찾아와 자기 부인이 다리 밑에서 애기를 나았는데 우유 살 돈이 없으니까 돈을 좀 달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조금만 기다리세요. 옷 갈아입고 금방 같이 갈테니까. 우유만 사줄 게 아니라 여관방에라도 있게 해야지 산모를 그대로 둘 수 있나요.” 그랬더니 그 남자가 겁이 나서 도망가버렸어요. 그렇게 거짓말하는 사람은 의심나면 안 주면 되는겁니다. 하지만 정말로 어려운 사람들은 도와줘야죠. 그래서 저는 그 사람들이 사는 데를 다 따라가봅니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죠. Q 어떤 사람은 부잣집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살아가는 반면, 장애인으로 태어나 평생을 고통받다 죽거나,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 심지어 악하게 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봤을 때 과연 세상이 공평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오웅진 : 사람들은 다만 껍데기로 세상을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장애인이든 병자든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입니다. 육체는 그걸 따라가는 것일 뿐이죠.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육체가 병들고 장애가 있어도 하느님은 우리 안에 함께 계십니다. 꽃동네에 배영희씨라고 전신불수에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여인이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시를 썼어요. 그 시의 한 구절이 이렇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아무것도 아는 것 없고, 건강조차 없는 작은 몸이지만 나는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지을 수 있는 죄악 피해 갈 수 있도록 이 몸 묶어 주시고, 외롭지 않도록 당신 느낌 주시니/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세 가지 남은 것은 천상을 위해서만 쓰여질 것입니다…” 배씨는 19살 때 일을 하면서 야간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어느 날 원인모를 병으로 시력을 잃게 되었고 나중에는 온몸을 까딱하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도와줄 이가 없어 꽃동네에 오게 되었는데 이곳에 와서 많은 친구들이 생겼죠. 배영희씨는 그런 친구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아름다운 시를 들려주며 사랑을 베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현대인은 상대적 빈곤의식 때문에 많이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한 예가 노사분규지요. 현대중공업 하면 한국에서 제일 강성노조 아니었습니까? 그곳 직원들 2만 5000명이 전부 다 한번씩 1박 2일 코스로 3년 4개월에 걸쳐 이곳을 다녀갔습니다. 그 다음에 노조가 화합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2013년까지 물량이 밀려 있어요. 또 현대가 기아를 인수했잖아요. 거기서도 1만 3000명이 식구들까지 해서 다 다녀갔어요. 사람들은 꽃동네에 와서 이곳 사람들이 주어진 대로 기쁘게 웃으면서 사는 모습을 보며 변화합니다. 사랑할 수 있다는 긍지를 갖고 살게 되면, 물질과 육체만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됩니다. Q 마지막으로, 꽃동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좀 이야기해주실 수 있는지요. 오웅진 : 꽃동네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걸인, 중증장애인, 정신질환자, 노약자, 병든 이, 버려진 아이들. 그런데 모나게 행동하는 사람이 없고 모두들 기쁘게 살아갑니다. 사람은 베풀면 꼭 보답해요. 아무리 악한 사람도 사랑해주면 삶이 변하지요. 또 꽃동네는 규율이 없습니다. 그리고 울타리도 없죠. 지금도 무엇을 하라고 시키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깨우는 사람도 없는데 모두들 새벽 5시가 되면 일어나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이불을 개고 자기 주위를 청소하고, 밥을 갖다가 다른 불편한 사람에게 먹입니다. 그리고 장애인끼리는 장애가 없습니다. 시각장애인은 혼자 못 다니잖아요. 그래도 힘은 있으니까 휠체어를 밉니다. 휠체어 탄 사람은 눈은 잘 보이니까 “앞으로 가, 뒤로 가” 하면서 둘이 산책을 하는겁니다. 서로 화합해서 같이 사는 모습이죠. 그 사람들이 작품을 만드는 것을 보면 대단해요. 그 작품을 보고 누가 이걸 장애인이 만들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손을 제대로 못쓰는 사람도 컴퓨터를 끌어다놓아주면 사용합니다. 손이 없어도 발가락으로 뜨개질을 하고 수도 놓고 다 해요. 꽃동네는 참 신비로운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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