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루카 24,46-53)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인근 베타니아 근처에서 제자들에게 강복하신 후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신약 중 유일하게 주님의 승천을 시각적(視覺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말씀인 사도행전 1장 1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은 예수님의 승천을 다른 어떤 복음보다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사도들이 하늘을 유심히 보고있는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갈릴레아 사람들아, 왜 하늘만 쳐다보고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천사의 말씀에서 큰 교훈을 얻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늘로 오르시는 모습을 사도들에게 보여주셨고 그들은 한동안 넋을 잃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마지막에 하늘에 오르심으로서 영광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각인(刻印)되셨지만, 우리는 승천의 영광만을 바라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는 한편, 천사가 사도들에게 이르셨듯이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두발은 땅을 굳게 딛고 서있어야 합니다.
천사의 말에 정신이 깨어난 사도들은 그후 용약하여 주님의 복음을 전합니다. 주님께서 하늘에 오르시기 전에 사도들에게 분부하신 대로, (사도행전 1,8) 그들은 성령의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처럼 모두 하늘에 올라 영광스럽게 되었으나, 그들의 지상에서의 사명은 고통과 수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셨듯이 예수님을 따른다는 이유로 그들은 온갖 박해와 고난을 받았고, 마지막에는 순교함으로써 진리를 증거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수난 전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나를 먼저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요한 15,18) 제 명대로 삶을 누린 요한마저도 백색순교로 일컬어질 정도로 그의 삶은 박해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하늘나라의 영광을 바라보지만 우리의 발끝은 땅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어떤 경우 비참할 정도로 가난과 결핍, 소외와 무관심 등 땅위의 고통이 뒤따르는 삶을 강요당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살아 생전 자신의 눈앞에서 영광을 맛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신심에 맞같는 어떤 기쁨과 영광을 바래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하늘로 오르셨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주님을 느낄 수 있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코린토2 6,16) 주님은 하늘로 오르셨지만 또한 우리의 마음속에 계십니다. 이는 성령의 형태로 주님이 우리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중국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것이 기적이 아니요, 물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다. 우리가 땅위에 발을 딛고 걸어가는 것이 바로 기적이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引導)를 받아 땅위에 두발을 딛고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며,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고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나자렛, 갈릴레아, 예루살렘 어디에도 계시지 않습니다. 하늘아래 어디에나 성령이 일하시는 곳에 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 이 넓은 세상 어디에서나 이웃을 섬기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에게 배려와 사랑을 보내는 곳에 예수님은 계십니다. 자신을 과시하지 않으며, 겸손되고 희생의 삶을 사는 곳 어디에서나 예수님은 계십니다.
교회 전례상으로도 6월 8일 성령강림 대축일까지 부활시기라 하여 이 50일의 기간을 부활의 기쁨을 간직한 기간으로 우리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의 승천이 나에게 어떤 뜻으로 다가오는지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2025. 6. 1. 주님께서 하늘로 오르신 날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