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요한 8,1-11)은 매우 유명한 ‘간음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올리브산에 가셨다가 예루살렘 성전으로 내려오시니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두번째 예루살렘에 가셨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이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가운데 세워놓고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은 모세율법에 의하면 돌을 던져 죽이라고 했는데 스승님 생각은 어떠십니까?”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들은 돌을 던져 죽이라고 하면 관용과 사랑을 내세우던 예수님을 위선자로 몰아가려 하였으며, 로마법정에 고발할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형은 로마의 총독만이 허락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인을 용서하라고 하면 모세율법을 어긴 죄목으로 종교지도자회의에 고발할 생각이었습니다. 이는 바리사이들이 “황제에게 세금을 내어야 합니까, 내지 말아야 합니까?”(마르 12,14)라는 질문을 통해서 예수님을 옭아매려고 했던 상황과 유사해보입니다. 세금을 내지 말아라 하시면 로마 제국에 대한 반역으로 고발할 생각이었고, 내라고 하면 예수님을 로마에 대한 부역으로 열성당원에게 고발할 심산이었죠. 예수님의 답변은 저 유명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드려라”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의 속셈을 알아채셨습니다. 추측컨대 그들은 이러한 상황을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하여 악의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시던 때와 장소에 맞추어 간음한 여인을 데려왔다? 어딘가 이상하며 작위적인 느낌이 듭니다. 간음한 여인을 투석형에 처하기 위해서는 약혼한 여인이거나 결혼한 여인이어야 했습니다. 결혼한 여인이 비밀리에 간음한 현장을 바라사이들이 덮쳤다?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아마 약혼한 여인이었을 터인데 당시 시대상황으로보면 약혼한 여인은 기껏 16세 정도의 어린 여인이었을 겁니다. 아마도 남자와 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간음으로 몰려 붙잡혀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당시 여자는 법정에서 증언할 권리조차 없었습니다. 불쌍한 여인은 공포와 두려움에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예수님의 자비에 온전히 자신의 목숨을 맡겨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혀 땅에 무엇인가 쓰셨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무엇을 쓰셨을까요? 그런데 마침 주일 다음날 (4월7일) 독서말씀이 다니엘 예언서입니다. 예언서에서는 음흉한 원로재판관 둘이서 절세의 미인이며 정숙한 여인 수산나에게 음욕을 품고 그녀를 범하려다가 실패하자 도리여 거짓 증언으로 그녀를 간음한 여자로 고발합니다. 수산나는 죽기 전에 하느님을 찾고 그녀의 기도에 하느님이 응답하셔서 다니엘 예언자를 보내십니다. 다니엘 예언자는 두 원로 재판관을 따로 떼어놓고 심문합니다. “당신이 수산나라는 여인이 젊은 남자와 간음하는 현장을 목격하였다고 하는데 무슨 나무 아레에서 그리 하였소?” 그러자 한 원로재판관은 “유향나무 아래요.”라고 답했고 한 사람은 “떡갈나무 아래요.”라고 답했습니다. 이들은 그동안 수없이 이스라엘의 딸들을 상대로 이런 식으로 음욕을 채어 왔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수산나 대신에 처형되게 됩니다.
아마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쓰셨을 걸로 짐작됩니다. “그대들은 다니엘 예언서를 읽어보지 못하였소? 이 여인이 어느 나무아래에서 남자와 간음하였소? 이에 정확히 답하지 못하면 그대들이 죽음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이요.”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들의 가슴을 떨게 만들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실제 현장을 본 목격자가 없었습니다. 간음죄는 쌍벌죄입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간음 상대인 남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몸을 일으켜 세우시고 그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크게 일갈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대 죄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들의 심장에 비수처럼 꽃혔습니다. 바리사이나 율법학자 들은 그들의 우월한 종교적인 지위를 기화로 수없이 힘없는 이스라엘의 딸들을 농락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돌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 둘 떠나갔고 현장에는 예수님과 그 여인만 남게 됩니다.
이 일화에는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초기 교회에서 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 부활의 첫 증인, ‘마리아 막달래나’로 잘못 인식한 것입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재위 590-604)는 간음한 여인, 바라사이 시몬의 집에서 눈물로 참회했던 베타니아의 마리아를 마리아 막달레나와 혼동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강론에서 참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마리아 막달레나를 창녀로 묘사하였고 성녀는 무려 1,400년간 창녀로 잘못 인식되었습니다.
1969년 바오로 6세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베타니아의 마리아와 간음한 여인과 별개의 인물임을 선언하였고,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사도중의 사도’로서 중요한 사도의 역할을 하였음을 선언하였습니다. 마침내 2016년 교황 프란치스코는 예수님 부활의 첫번째 증인 마리아 막달레나의 기념일 7월 22일을 축일로 격상하는 교령 ‘사도들의 사도’(Apostle of the Aposles)를 발표함으로써 교회는 공식적으로 마리아 막달레나를 사도의 반열에 올렸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감동적인 생애는 필자가 집필한 소설 ‘마리아 막달레나의 노래’에 담겨있습니다.
(2025. 4.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