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9월 23일 충북 음성에 위치한 꽃동네를 방문하였습니다. 임광규 변호사님의 1주기인 2019년 8월에 방문하였으니 5년 만에 방문한 셈입니다. 임변호사님은 시대의 양심이요, 신앙인의 표상이셨던 분입니다.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일부 정치사제가 관여한 모략과 음해로 음성의 꽃동네가 국고금 편취 등의 터무니없는 혐의로 기소되자 한결같이 변론을 맡아 분전하셔서 22만명의 무죄탄원서가 산같이 쌓이는 진통끝에 2008년 고법에서 완전무죄를 이끌어내셨습니다. 또한 꽃동네가 오늘날 4,000여명에 이르는 갓난아기, 병자, 노숙자를 수용하는 세계적인 시설로 자라난 데에는 세 명의 성인이 있었습니다. 최귀동 할아버지, 오웅진 신부님, 신상현 수사님이 그들입니다.
최귀동할아버지는 일제시대 부자집 외동아들로 태어나서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북해도 탄광에 끌려가 극심한 배고픔과 강제노역을 겪다가 한국으로 송환됩니다. 혈혈단신, 병든 몸으로 한국 땅에 버려진 최귀동 할아버지는 강제징용 시의 구타, 고문등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렸으나 동냥으로 연명하며 간혹 정신들 때마다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도착합니다. 자신이 살던 집에 도착하니 부모님은 이미 저 세상 사람이었습니다. 귀한 외동아들을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잃은 부모님은 충격으로 몸져누운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후 할아버지는 40년간 오로지 옷 한벌과 동냥사발에만 의지하여 길가에 쓰러져 있는 행려병자들을 다리 및 움막에 모아 무려 18명을 부양하게 됩니다. 우연한 기회에 쓰러져 가는 움막에서 다른 걸인에게 밥을 먹이고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한 오웅진 신부님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오신부님은 자신이 가진 전 재산 1,300원으로 시멘트 한 부대를 사서 냇가의 모래와 물을 섞어 블록을 만들고 집을 지어 1976년 11월 15일 ‘사랑의 집’ 방 5칸에 걸인을 입주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 병든 노인들을 모아서 꽃동네를 시작한 이후 많은 수도자와 봉사자들이 죽어가는 행려병자들을 거두어 치료, 재활시켜 사회에 복귀시키는가 하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갓난아기에서 임종을 앞둔 노인까지 수용하여 보살피고 있습니다. 2013년 오신부님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로마에서 알현하게 되었고 꽃동네 방문을 요청하여 2014년 8월 교황님은 124인의 시복식 당시 꽃동네 ‘희망의 집’을 방문하십니다.
1955년 충북 음성군에서 태어난 신상현 수사는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 자라나 가톨릭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88년 내과전문의가 되었습니다. 그는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안락하고 풍요로운 길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1989년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에 입회하여 지금까지 꽃동네에서 환자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20여년 전에는 모두가 꺼리는 에이즈 환자를 40일간 피를 닦아내고 대변을 닦아내는 등 지극정성으로 돌보아 환자가 그의 품안에서 눈물을 흘리며 “수사님 저는 행복합니다.”라고 고백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꽃동네의 병원장을 맡고 있으며 이 시대의 진정한 슈바이처라고 하겠습니다.
오요한이라는 40세의 뇌성마비 청년은 세살 때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꽃동네에 맡겨졌습니다. 그는 말 한마디 하려면 온몸을 뒤틀어야 하고 우리들의 안내를 맡은 신상현 수사님이 무슨 말이라는 것을 방문자에게 설명해야 할 정도로 중증 장애인입니다. 2014년 교황님이 꽃동네 방문 시에 오요한을 면담하시면서 그의 뺨에 뽀뽀를 하셨고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할 것을 청하신 이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교황님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오요한은 행복한 얼굴로 미소를 띄며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로 자신은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첫째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용서하였고, 둘째 기도할 수 있어서 행복하며, 셋째 남을 도울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비록 중증 장애인이지만 한 때 철이든 후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해 원망과 분노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머니를 용서하고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을 찾은 적없는 어머니를 기다립니다. 오요한은 자신이 아니라 남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그를 방문하여 무엇이든지 바라는 바를 말하면 들어주겠다고 말하면 그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병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말하는 진정으로 착한 심성을 지녔습니다. 필자가 오요한의 손을 꼭 잡자 그는 너무나 행복한 모습으로 필자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사지가 멀쩡한 우리자신도 조금만 신체가 고장나고 불편하면 온갖 불평을 하는데 태어나서 침대생활만 해온 오요한은 아름다운 천사의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대하고 있습니다.
꽃동네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도 오요한의 웃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웅진 신부님은 사람은 믿을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한다고 이르셨습니다. 비록 세상이 혼탁하더라도 꽃동네에서 봉사하시는 많은 수도자와 봉사자를 볼 때 저는 이들이 있어 이 나라에 평화가 있으며 하느님의 자비가 결코 이 세상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사랑합시다.” (요한1서 4, 17-18)
(2024.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