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인연, 한수산 씨 따님과의 만남
오늘 주일미사에 참례하면서 주보를 보니 3쪽에 한수산 크리소스토모 씨의 글이 게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체험에 관해 쓴 책, ‘용서를 위하여’에 대해서도 짧은 언급이 실렸습니다. 이를 읽으며 저는 옛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1993년경 동경지점에 근무하고 있을 때 동경한국학교에 다니던 첫째 딸이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왔습니다. 그때 딸은 나에게 “아빠, 얘 아빠가 유명한 소설가래.”하고 저에게 말하길래, “그래 아빠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데.”하고 물으니 딸이 그 친구에게 묻더니, “한수산 씨래”라고 답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때 딸의 친구에게 “나도 부초(浮草)라는 아버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고 그분을 좋아하는 팬”이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이분이 필화사건 이후 동경으로 와서 지낸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읽은 적이 있는데 오늘 그분의 따님을 만나게 되다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경 ‘용서를 위하여’를 읽었습니다. 한수산 씨와는 이메일로 한 두차례 제가 따님 친구 누구의 아빠라는 사실과 그분의 책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필화사건, 그리고 용서를 위하여
한수산 씨는 5공화국 시절 필화사건으로 서빙고동 보안사 분실에서 말과 글로써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모진 고문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이 체험을 바탕으로 ‘용서를 위하여’라는 자전적인 책을 썼습니다. 당시 고문이 얼마나 혹독하였는가는 책을 읽는 순간 제3자인 제 자신이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 순간 한수산 씨는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사랑과 평화와 같은 이 세상의 모든 추상명사는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한수산 씨는 그 후 이들을 용서하고자 하였으나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신앙에 귀의하기 위하여 천주교 교리를 수강하였으나 결국 마지막 순간에 이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세례를 포기하고 맙니다. 누가 한수산 씨를 믿음이 약해서 가해자들을 용서하지 못한다고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용서는 하느님만이 할 수 있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느 신부님의 강론에서 ‘인간은 인간을 용서할 수 없다. 오직 내 안에 있는 하느님만이 용서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하느님이 상대를 용서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1960년대 일본의 미우라 아야꼬라는 작가가 쓴 ‘빙점’이라는 소설이 공전의 힛트를 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인간은 인간을 용서할 수 없다. 오로지 신만이 인간을 용서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던져주고 있습니다.
참된 용서를 보여 주였던 한수산 씨
고문의 아픈 기억으로 괴로워하며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었던 한수산 씨는 나자로 마을의 이경재 신부님을 만나고 백두산에서 천지를 바라보면서 이들을 용서함과 동시에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아! 최양업’등과 같은 가톨릭에 관련되는 글만을 쓰기로 결심합니다. 그후 그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당신의 도구로 쓰시기 위하여 자신에게 그와 같은 시련을 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그 순간 전율을 느꼈다고 그의 책 ‘용서를 위하여’에서 썼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한 사람의 깊은 성찰과 이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용서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마태 18,22)
(2024. 9.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