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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보면 삼위일체를 보는 것입니다
김원율 안드레아 (반포1동)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제가 오래전 어느 삼위일체 대축일에 신부님이 강론 중에 다음과 같이 농담조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 있습니다. 

“강론준비와 고백성사 주는 것 빼면 신부노릇 할만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강론 준비하면서 힘든 경우가 많지만, 특히 삼위일체 강론을 준비할 때면 어떻게 강론을 풀어가야 신자들이 잘 이해할까 머리를 싸매게 됩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신학적으로만 풀려고 하면 한없이 어렵게 되며, 삼위일체 교리는 머리로 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요한1서 4,16)라는 말씀을 가슴으로 받아들여야만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성하께서는 2005년 12월 선포하신 회칙(回勅),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9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사랑을 보면 삼위일체를 보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창에 찔리신 분(요한 19,37)을 바라보며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요한 3,16) 외아들을 보내시어 인간을 구원하신 하느님의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면서 ‘숨을 거두셨습니다’(요한 19,30). 그것은 부활하신 다음에 성령을 보내주시리라는 예고였습니다. (요한 20,22) 이는 성령의 분출을 통하여 믿는 이들의 마음에서 흘러 나올 ‘생수의 강들’(요한 7,38-39)에 대한 약속을 실현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바닷가의 소년이 조개껍질로 망망대해의 바닷물을 담는 것처럼 삼위일체의 신비는 인간의 노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랑을 알면 삼위일체를 이해하게 된다고 그의 삼위일체론에서 이야기하였습니다.
 
부부는 두 몸이 아니라 한 몸이며, (마르 10,8참조)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합니다. 부부는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한마음 한 몸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미움과 볼신이 쌓이면 부부는 한마음 한 몸이 아니라 서로 갈라져 별개의 몸이 되고 마음도 멀어집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외아드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아드님은 십자가 상에서도 고통을 잊고서 자신을 못박는 병사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느지 모릅니다.”(마태 27,46, 마르 15,34)고 기도하셨을 때, 천주 성부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셨습니다. 또한 “다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시며 숨을 거두셨으나 이는 약속하신대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기 위한 예고였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20,22). 성부, 성자, 성령이 사랑으로 완전히 결합되고 일치하셨으므로 삼위일체를 이루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아버지 안에 머무른 것처럼 우리도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면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게 됩니다. (요한 15,10) 완덕을 이룬 성인들은 하느님과 저 높은 곳에서 영혼으로 하느님과 일치를 맛본 분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지극히 사랑하였고 하느님 사랑을 공동체 이웃과 나누었으며 공동체와 한 몸으로 사랑을 실천하신 분들이었습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써 다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실을 잊고 이 세상이 원하는 것, 권력, 명예, 재물에 모든 힘과 정력을 쏟음으로 세상의 저주와 불행을 스스로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세상’은 인간의 목적지가 아닙니다. ‘세상’은 하느님의 ‘사랑’을 잃어버리고 하느님의 ‘진노’가 머문 인간세계를 가리킵니다. 성모찬송 기도(묵주기도 후렴)에서 ‘귀양살이 끝날 때에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님 뵙게 하소서.’라고 우리가 기도하듯 인간세계는 인간이 귀양살이 하는 곳입니다. 본향은 사랑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이 계신 곳입니다. 

야고보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절개없는 자들이여, 세상과 우애(友愛)를 쌓는 것이 하느님과 적의(敵意)를 쌓는 것임을 모릅니까?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는 자는 하느님의 적(敵)이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4)

(2024. 5. 26. 삼위일체 대축일에)

입력날짜 : 2024-05-21 (23:14), 조회수 :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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