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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우리에게 감각적 기쁨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김원율 안드레아 (반포1동)
 
오늘은 성령강림대축일입니다. 저는 성령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삼위일체의 한 위격으로서의 성령, 성령의 역사나 본성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일반적으로 신자들이 느끼는 것, 그리고 신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영성생활의 오류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신자들은 성령의 존재를 일상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신비적이며 특별한 것으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가 일상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양심의 소리요, 이웃을 사랑하는 맑은 마음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1서 3장 9절에서 봉사자의 자격을 ‘깨긋한 양심으로 믿음의 신비를 간직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티모테오1서 4장 2절에서는 양심이 마비된 거짓말쟁이들의 위선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악령과 마귀들의 가르침에 혼을 빼앗기고 믿음을 저버린다고 했습니다. 성령에 대해서도 잘못된 가르침에 의해 신자들이 정신을 빼앗기고 믿음을 저버리게 됩니다. 

성령의 역할은 우리에게 감각적인 위로, 감미로운 맛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전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으나, 성령의 참된 역할은 마음의 단맛을 추구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16세기 위대한 영성신학자였던 십자가의 성요한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가르멜의 산길’, ‘어둔 밤’ 등 불멸의 묵상집을 남겼습니다. 그는 자신의 묵상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영성생활의 초보자들은 마치 하느님이야말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분으로 여긴다. 성체 배령(拜領)시나 영성수련에서 하느님으로부터 감각적인 것을 느끼고, 하느님으로부터 단맛을 찾으려 한다. 이것은 아주 중대한 결함이며, 하느님의 조건에도 매우 어긋나는 것이고, 아직 신앙이 정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십자가의 성요한, 어둔밤 40쪽) ‘우리의 영혼이 신앙의 눈으로 하느님을 바라본다면 하느님께서는 감각적 기쁨을 자주 없애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둔밤 49쪽)

기도나 영성수련에서 감각적 위로를 찾는 것은 영신적 초보자가 하는 짓이며, 어린아이가 캔디나 초콜릿을 찾는 바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하바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 현각 스님이 세계 3대생불이라고 칭송하는 숭산스님은 ‘선(禪)의 나침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참선을 ‘완벽한 정적과 축복’같은 것이라고 믿는다. ‘오, 지금 모든 것이 평화로워! 너무 좋아!’ 이런 종류의 생각은 아주 나쁜 병이다.” 이는 어떤 상황에 대한 집착이며 이런 종류의 평화에 집착하면 지혜는 자랄 수 없다고 숭산스님은 단언합니다. 매일 매일을 살아가면서 평상심을 갖는 것이 진정한 선이며 움직이지 않는 마음, 항심(恒心)을 갖는 것이 수행의 본질입나다. 

저는 10여년전에 어느 성령 세미나에서 한 청년이 갑자기 대성통곡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좀 의외의 현상이라고 생각되었으나 그 청년이 오랜 기간의 방황끝에 주님을 영접하였다고 생각하고 좋게 해석하였습니다. 그런데 한달쯤 지나서 그 청년은 성당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숭산스님의 말씀에서 보듯이, 중요한 것은 언제나 움직이지 않는 마음, 항심(恒心)입니다. 성령을 추구하고 따른다면서 우리는 마음의 동요를 겪는 적이 많습니다. 성령이란 일시적인 힐링이나 울음을 터뜨리는 카타르시스같은 감각적인 것으로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신심이란 겸손과 인내를 가지고 하느님 앞에 머무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황홀경에 빠져 하느님의 신비를 체험했다고 한다든지, 환시를 보았다며 영적인 탐욕과 교만에 빠지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이고 감각적인 위안이 될 수 있으나 지속되는 평상심, 움직이지 않는 믿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영혼이 감각의 껍질에 머무르고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영성생활의 초보자, 피상적이며 감각적인 사람들이 영적 교만에 가득차서 저지르는 대표적인 오류(誤謬)입니다. (어둔밤 64쪽, 가르멜의 산길 153-158쪽)

성령은 하느님의 영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로 가톨릭교회는 사랑, 기쁨, 평화, 온유, 인내, 절제, 친절, 선행, 진실을 들고 있습니다. (갈라티아서 5,22-23, 성요셉 출판사 ‘성령께 드리는 9일기도’) 또한 성령의 7가지 은혜로 슬기, 깨달음, 의견, 굳셈, 지식, 효경, 두려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령께 드리는 9일기도’) 불교에서는 고통을 없애고 열반에 이를 수 있는 덕(德)으로 6바라밀행(波羅蜜行)을 들고 있습니다. 육바라밀이란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의 여섯가지이며 큰 틀에서 볼 때 성령의 은혜나 그 열매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성령과 함께 하는 수련이나 참선에서 참가자들은 완벽한 정적과 방해받지 않는 상태를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틀린 게 아니지만 이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집착일 따름이며 그 본질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갖느냐가 중요하며, 이는 순간 순간 움직이지 않은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요한은 ‘가르멜의 산길’에서 하느님 사랑의 맛을 본 영혼은 피조물과 세상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감각의 정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움직이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는 이성(理性)이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하여 가능합니다. 이성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영혼의 밤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지성(知性)이나 이성에 의해 경험하거나 도달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024. 5. 19. 성령강림대축일에)

입력날짜 : 2024-08-26 (23:22), 조회수 : 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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