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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과 육신
김원율 안드레아 (반포1동)
 

오늘 복음(요한 4,5-42)에서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가에서 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그곳은 사마리아의 시카르라는 마을이었으며 때는 정오 무렵이었습니다. 해는 중천에 떠있었고 황량한 사마리아의 길은 건조한 모래 바람과 함께 예수님의 육신에 갈증을 일으켰습니다. 

 

그때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려 왔으며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물을 청합니다. 그러자 여인은 “선생님은 유다 사람이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물을 청하십니까?”라며 의아해합니다. 당시의 관습으로는 남자가 처음 보는 여자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금기시되었고, 또한 유다인은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기원전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한 후 그들 10개 지파는 유다민족의 순수한 혈통을 지키지 못하고 아시리아에 동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여인에게 이르십니다. “지금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나 목마를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 여인은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고 말하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물을 청합니다. 아마도 여인은 육신을 다시는 목마르게 하지 않는 ‘마법의 물’을 연상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와 비슷한 예가 오늘 복음의 바로 전(前) 장(章), 요한복음 3장 니코데모라는 유다인 최고의회 의원과의 대화에도 나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라고 하시자 니코데모는 말합니다.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여기에서 그들은 영혼과 육신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혼의 갈증을 적셔줄 물을, 니코데모에게는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함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남자에게 5차례나 버림받았으며 영혼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동네 여자들이 아침에 밥을 짓기 위하여 물을 길으며 다른 여자들과 말을 나누었으나 이 여인은 여자들의 수군거림을 참지 못하여 혼자서 외롭게 그것도 해가 중천에 떠오른 정오무렵에 물을 길으려 나왔던 것입니다. 여자는 이로 인해 외로움을 느꼈고 자신의 영혼의 갈증을 적셔줄 영혼의 물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과거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가르침이 여자의 내면에서 샘물이 되어 영원히 영혼의 갈증을 치유해줄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인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불렀으나 그의 정체를 깨닫고 예언자, 그리스도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동네의 사마리아인들에게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언하며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영혼의 가르침은 내면에서 깊은 반향을 울리고 그것이 영원한 샘물, 기쁨이 되어 우리를 구원합니다. 육신은 찰나의 순간 지속될 뿐이나 영혼은 불멸합니다. 인류가 생성된 이후 수많은 생명이 죽고 사라졌으나 그들은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바로 존재의 근원, 영혼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파도가 바위에 한번 철썩 부딪히고 소멸되는 것 같으나 그들은 소멸된 것이 아닙니다. 넑고 푸른 바다, 대양(大洋)으로 돌아갑니다. 파도는 그 존재의 근원, 즉 바다란 광대무변한 존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영혼은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니코데모는 최고의회 의원이라는 체면때문에 남의 눈을 피하여 밤에 예수님을 찾아 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불며,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영으로 태어난 이도 이와 같습니다.”고 말씀하시어 영으로 다시 태어난 이는 명예나 남의 평판에 구애되지 않는다는 영적 자유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의 목적을 어디에 둡니까? 자신이 모범적인 신앙인, 신앙적 영웅이 되려고 하는 분은 없습니까? 신앙의 목적은 자신이 놀라운 일을 하고, 남에게 인정받으며 존경받는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신앙인은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는 영적 자유를 지녀야 합니다. 그냥 한발짝이라도 하느님께 다가서는 것, 하느님의 사랑과 일치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영혼의 갈증을 면하고 마침내 영혼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사마리아 사람들이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이 한 말 때문이 아니오. 우리고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요한 4,42)

 

2026. 3. 8. 사순 제3주일에 김원율 안드레아 


입력날짜 : 2026-03-08 (07:02), 조회수 :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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