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신학은 가톨릭 교리에 반한다.
거대한 거짓: 사회주의에 관한 교황 베네딕트 16세의 회..
투자와 공동선 Investment and the Commo..

Pope proposes serenity of Mary..
On The Unfolding of God's Self..
Pope Says Liturgical Abuses De..

종북(從北)구조의 본질과 수술법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이사장 문재인)'
서울수복 기념식에 불참한 골수좌익분자 박원순 서울시장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복거일
삼성경제연구소
임광규..

기사 확대 기사 축소
예수님의 얼굴은 해처럼 밝게 빛나셨습니다(마태 1,2)
김원율 안드레아 (반포1동)
 

오늘 복음(마태 17,1-9)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사건을 접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얗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오늘 복음은 전합니다. 

 

엘리야와 모세는 한때 예수님의 신원(身元)을 나타내는 예언자였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을 누구냐고들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제자들은 사람들이 엘리야 예언자, 또는 예레미아 예언자 등으로 생각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마태 16,14). 그리고 신명기 18장 15절에서 모세는 “주 너희 하느님이 너희 동족가운데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제2의 모세가 올 것을 예고하였습니다. 

 

실제 마태오 복음이 헤로데의 유아학살, 예수님 가족의 이집트로의 피신과 탈출을 기록한 것은 예수님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2의 모세로 자리매김하기 위하여 삽입한 것이라고 합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신명기 18,15의 말씀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거룩하게 변모하실 때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고 구름속에서 하느님이 말씀하신 것과 내용이 일치합니다. 

 

엘리야와 모세, 이들의 공통점은 살아생전 영광된 모습을 누렸던 것이 아니라 고통과 인고의 세월을 보냈으며 마지막에 영광스럽게 육신이 승천하였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아합왕 부인 이제벨의 박해를 피해 40일간 굶주림과 고통을 겪으며 호렙 산으로 피신하였으나, 마지막에 병거에 실려 회오리 바람에 실려 승천하였습니다(2열왕 2,11). 모세 역시 유다백성과 함께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건너가기 전에 운명하였으며, 유다의 민간신앙에 따르면 승천하였다고 합니다. 실제 신명기 34,6은 ‘오늘날까지 아무도 그가 묻힌 곳을 알지 못한다’고 기록하여 이러한 승천의 믿음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예고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사야서 52,14 ‘야훼의 종의 넷째노래’는 ‘그의 모습이 사람같지 않게 망가지고 그의 자태가 인간같지 않게 망가져 많은 이들이 그를 보고 질겁을 하였다’고 읊었습니다. 이어진 53,2-3에서도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고 서술하였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 쓰신 ‘나자렛 예수’를 읽으면 예수님을 ‘진짜 라자로’(루카 17,19-31 참조)로 묘사하였습니다. 라자로는 비참한 가난의 표상같은 이였습니다. 부자집 대문앞에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있었고 부자집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고”(히브 13,12), 벌거벗긴 채 십자가에 매달려 군중들의 조롱과 멸시를 받았으며 피와 상처로 얼룩진 그의 육신을 사람들은 보았습니다(‘나자렛 예수’ 276쪽).

 

그러나 ‘진짜 라자로’는 부활하였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미리 부활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시고 부활의 희망을 각인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 말씀의 참된 의도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사건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단순히 고통과 죽음만을 향해 가는 여정이 아니라 부활의 기쁨과 영광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임을 의미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지상에서 드러난 하늘나라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현세의 삶이 부자집 대문 앞에서 굶주림과 싸웠고 개가 와서 그 종기를 핥았던 라자로, 광야를 40년간 헤맸던 이스라엘 민족, 호렙산을 40일간에 걸쳐 굶주림과 목마름에 시달리며 걸어가야 했던 엘리아 선지자(先知者)와 같은 모습일 수 있습니다. 지금 나비가 되기 전의 애벌레와 같은 삶이 우리의 몫일 수 있습니다. 고치를 뚫고 나오려고 몸부림치는 나비의 성충처럼 현실의 각박함은 미래의 희망을 앗아가버릴 정도로 비참함을 우리에게 안겨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마침내 나비의 성충이 고치를 뚫고 나왔을 때 나비는 오색영롱한 무지개빛 구름아래 찬란한 황금빛 날개를 펴고 창공을 아름답게 비상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님과 함께 부활할 때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의 변모 사건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로 엮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모습으로 창조된 존재이고(과거),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현재), 내세에 부활함으로써 이 변화가 완성됩니다(미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바뀐다는 것은 이룰 수 없는 헛된 소망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계명이며 꼭 이루어지리라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이 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2026. 3. 1. 사순 제2주일에 김원율 안드레아


입력날짜 : 2026-03-01 (07:50), 조회수 : 478
 백자평쓰기
 * 성명 * 비밀번호
 * 내용
 
*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기사와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원수를 사랑 하여라~
성령은 비둘기처럼 내려 오..
성령님은 어떻게 우리에게 오..
하느님은 인간을 하느님의 형..
하느님은 존재 하시는가?
글이 없습니다.
중국 전교여행을 회상하며
원수를 사랑 하여라~
성령은 비둘기처럼 내려 오..
하느님은 존재 하시는가?
성령님은 어떻게 우리에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