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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율법을 폐기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김원율 안드레아 (반포1동)
 

뉴욕의 한 아파트에 사는 어느 한국인이 겪은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아파트 문을 나서는데 옆집의 유대인이 난처한 표정으로 도와달라고 하여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실수로 냉장고에 연결된 전기줄을 발로 차서 플라그에서 전기줄이 뽑혔는데 이를 다시 꼽아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한국인이 자신이 직접 꼽지않고 왜 남에게 부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불을 피우지말라는 안식일 율법에 어긋난다는 이야기를 해주더랍니다. 정말 기가 막힙니다. 유대인이 율법의 민족이라고 하지만 이건 정도가 과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마태 5,17-37)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우스꽝스러운 유다의 율법을 폐기하지 않고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십니다(5,17). 이는 우리에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마태오 복음서가 율법을 중시하는 이유는 복음이 주로 유다계 그리스도인을 독자로하여 씌여졌으며, 집필장소도 유다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이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유다계 그리스도인 가운데 수구파(守舊派)는, 율법은 종말에 이르기까지 유효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도 율법을 철저히 지켜아 한다는 지론을 펼쳤는데 그런 지론이 예수님 말씀에 나타납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거니와,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5,18) 

 

그런데 마르코 복음서는 마태오 복음과 그 궤를 상당히 달리합니다. 마르코는 이방계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집필하였으며, 집필장소도 이태리 로마로 인식됩니다. 그래서 마르코는 유다교와의 강한 결별을 자신의 복음서에서 표현하였습니다. “아무도 새 천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마르 2,21) 는 예수님 말씀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담은 신생 그리스도교가 유다교 전통과 공존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 2,22)는 예수님 말씀도 새 계약에 의한 새로운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는 마르코 복음사가의 뜻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오는 수구파의 율법유효론을 수용했지만 (17-19절), 한편으로는 비판적 입장을 취하여 유다교 율법학자들이 풀이한 율법이 유효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 풀이하신 율법만이 유효하다고 보았습니다(5,20). 그리스도인의 의로움이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의로움보다 앞서야 함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풀이하면서 밝혀주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 함을 뜻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말씀하신 율법은 십계명에 관련된 것이었고 사실상 잡다한 정결례, 음식, 제물, 안식일에 관한 규정을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실제 2월 11일자 복음말씀(마르 7,14-23)에서 예수님께서는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마르 7,19)고 기록하여, 사실상 금지하는 음식에 대한 율법의 규정을 폐기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마르 2,28)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안식일에 대한 해석의 전권(全權)을 예수님이 지니고 있음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늘복음 5,21-48에서 밝히신 여러 금령(禁令)의 계명,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는 모두 십계명에 관한 것입니다. 이에서 예수님께서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을 넘어서 율법의 참뜻을 밝히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의 금령을 (출애 20,13)을 한결 심화(深化)시켜 동족의 형제에게 분노하는 것조차 금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불씨가 큰 불씨가 되고 작은 미움이 큰 미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금령(禁令)은 여인을 흑심을 품고 바라보지도 말라는 명제(命題)로 발전하였습니다. 마음에서부터 죄의 씨앗을 없애려는 예수님의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결혼을 신성시하셔서 불륜을 저지르는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경우 이는 아내를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5,32). 예수님의 결혼관은 “부부관계는 하느님이 맺어주신 것이므로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계속 유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혼은 물론이고 아내를 소박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 또한 밥만 태워도 이혼장을 쥐어주고 아내를 내쫓을 수 있다는 율법의 규정을 완전히 폐기한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예수님의 복음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전례의 외관, 기도의 형식 등에 집착하는 ‘바리사이적 사고’에 젖어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묵상해야 합니다. 기도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서 드리는 것이 최상의 것입니다. 

 

말씀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뜻, 믿음의 핵심은 바로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이 하느님이 되게 하려 하심이다 Deus fit homo ut homo fieret Deus’입니다. 우리가 신적(神的)인 영역에 들어간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한없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전례, 기도의 형식에 집착하기보다 우리의 마음이 자유로운 영(靈)의 무애진인(無碍眞人)의 상황에 있어야 함을 우리는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2026. 2. 15. 연중 제6주일에 김원율 안드레아


입력날짜 : 2026-02-15 (12:08), 조회수 : 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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