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마태 5,13-16)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것을 주문합니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길에 버려지듯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본래의 기능을 잃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결국 버려집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당시에 누구를 두고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민족, 이스라엘, 그러나 선민(選民)이 선민답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민족, 이스라엘 민족에게 신명기 등에서 하느님이 내리신 교훈은 이방인, 고아, 과부 등 권세없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읽기만 하여도 머리가 아픈 레위기의 잡다한 정결례, 속죄제물, 친교제물 등의 규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유대 사회의 지도자들을 향해서도 소금의 역할을 하라고 주문하셨습니다. 유대 사회의 지도계층은 사제나 율법학자들이었으나 그들은 형식적이고 겉치레뿐인 의식에 집착하였으며 심지어는 과부들의 가산을 등치고 힘없는 이들을 핍박하였습니다(마르 12,40). 사제들은 부모께 해드릴 공양을 코르반(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이라는 핑게를 대어 제단에 바치게 함으로써 부모에 대한 효도마저 못하게 막았습니다(마르 7,11).
이런 인간군상을 보시고 예수님은 마땅히 자기 본분을 지켜야 할 사제나 율법학자들이 개인의 안락과 호의호식에만 집착하는 풍조를 안타깝게 여기셨습니다. 스승이 스승답게, 지도자가 지도자답게 백성을 가르치고 모범을 보일 때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라고 제자에게 이르신 참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중 가장 위에 있는 사람은 왕이며 이스라엘의 왕좌는 하느님께서 맡기신 자리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왕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왕은 하느님을 대리해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이번주 수요일(2월 4일) 1독서의 말씀을 보면 다윗왕이 요압이라는 이스라엘 장군을 시켜 인구조사를 하였는데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서 7만명이 흑사병으로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2사무 24,2-17).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왜 인구조사가 하느님께 그토록 큰 죄악이 되는가?
인구조사의 목적은 첫째 세금을 거두는 것이고 둘째 징병대상이 되는 장정의 수를 파악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구조사의 궁극목적은 왕권의 강화입니다. 인구조사는 결국 자신의 왕권을 튼튼히 하고 부국강병의 영광을 하느님이 아니라 다윗 자신이 가지려는 속셈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래서 야훼 하느님의 분노를 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7만명이나 죽었음은 이스라엘의 임금이 교만하였고 선민의 왕답지 못하였기 때문에 생긴 비극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빛입니다. 이처럼 여러분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치어 그들이 여러분의 좋은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도록 하십시오.” 이 말씀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간디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는 사랑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싫어한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오만함과 이중적인 태도를 보고 실망했던 것입니다. 식민지 백성앞에서는 오만하고 군림하며 교회에 가면 거룩한 성도인체 하는 그들의 이중성에 간디는 더없이 환멸을 느꼈던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할 때 교회가 세상을 성화(聖化)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속화(俗化)시킵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질려면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의 타락을 막고 세상의 어두움을 비추는 대안(代案)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 답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려면 산상설교의 진복팔단의 가르침을 따르면 됩니다(2월 1일자 오늘의 복음 마태 5,1-12). 마음이 가난한 삶, 온유하고 자비를 베푸는 삶, 평화를 이루는 삶을 살 때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026. 2. 8. 연중 제5주일에 김원율 안드레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