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11월 위령성월을 맞이하였습니다. 얼굴이 시립게 차갑게 몰아치는 삭풍, 말라빠진 늦가을의 잎사귀, 발밑에 수북이 쌓인 낙엽, 이러한 것이 만추의 을씨년스러운 풍경과 더불어 한층 사람들의 정서를 메마르게 하고, 우리의 몸을 움츠려들게 합니다.

이때 인간은 필연적으로 죽음을 생각합니다. 죽음에 맞닥뜨려 인간은 비로소 진실해지며 자신의 본모습을 되찾습니다. 그때까지 자신을 자신이 아닌 그 무엇으로 포장하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 갖은 애를 썼던 노력이 한갓 덧없는 한여름밤의 꿈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자신의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인간은 더할 나위없이 회한에 몸부림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게르하르트 로핑크라는 영성신학자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한평생 쌓아올린 모든 자기기만과 환상이 일순간에 붕괴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숨겨두었던 가면들이 벗겨질 것이다. 우리 스스로에게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연기해 보이던 모든 것을 우리는 이제 중지해야 한다.”

세상을 다갖겠다는 탐욕과 열망, 명예가 자신을 구원하는 메시아라는 환상이 일순 소멸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평생 신기루를 좇아왔음을 깨닫고 한없이 괴로워합니다. 숨을 멈추게 되는 순간 인간은 가쁘게 숨을 내쉬며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이 숨결이 단 몇 시간이라도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미약하게 들이마시는 숨을 고통속에서나마 계속 들이마실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그 무엇보다 귀중한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한 채,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자신의 가치를 단 일전이라도 더해주지 못하는 명예, 재물과 지위를 얻기 위해 무자비하게 세상에서 경쟁하며 추구해왔던 데 대한 후회와 회한이 쓰나미처럼 밀려들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살아 생전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하느님을 배반한 데 대한 두려움과 고통에 몸부림치며 마지막을 맞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 평소 우리가 호흡하는 이 숨결이 하느님의 숨결이라는 것을 느껴온 사람은 아버지에게 돌아간다는 편안한 심정으로 미소를 띄면서 숨을 아버지에게 돌려드리고 생을 마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만드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진흙은 이 세상에서 가장 흔하고 쓰잘데 없는 것인데 왜 하느님은 인간을 흙으로 만들었을까요? 왜 아름다운 황금이나 대리석이나 금강석이 아니라 흔하디 흔한 진흙으로 인간을 만드셨을까요? 

우리의 일상은 대부분의 경우 무의미하며 반복적이고 기계적으로 되풀이되는 일상으로 채어져 있습니다. 거의 매일 먹고 자고 양식을 얻기 위해 일하며 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진흙과 같이 너무나 사소해서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무의미하고 사소하고 평범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상의 무료함을 잊기 위하여 또는 영혼의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무언가 위대한 것, 장엄한 것, 거창한 것을 행하고자 하며 해가 뜨면 덧없이 사라지는 아지랑이처럼 허망한 명예와 갈채, 남의 인정을 추구합니다. 

풍진(風塵)세상이란 말이 있듯이 인간은 어찌보면 이 세상에서 바람에 날리는 먼지와도 같이 허망하고 하잖은 존재입니다. 우리의 오래된 가요중 희망가라고 있습니다. “이 풍진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과연 그렇습니까? 부귀 영화를 누리면 인생의 모든 꿈을 이룬 것입니까? 이 세상에서 부귀 영화를 누리면 저 세상에서의 구원도 저절로 이루어집니까? 그가 임종시에 부귀 영화를 누린 데 대하여 감사하고 만족하면서 눈을 감게 될까요?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진흙 속에 하느님께서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욥 성인은 다음과 같은 말로 지금 우리가 내쉬고 들이마시는 숨결이 하느님의 것임을 고백하였습니다. “나에게 목숨이 붙어있는 한 하느님의 숨이 내 코에 붙어있는 한, 맹세코 나는 거짓을 이야기하지 않으리라!” (욥기 27,3) 

하느님의 숨결, 이는 인간의 영혼으로서 영원불멸의 존재입니다. 이 쓰잘데 없는 진흙 속에 하느님의 숨결이 부어 넣어짐으로써 인간은 숨을 쉬게 되고 생명체가 되었습니다. 또한 창세기 1장 27절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음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는 인간에게 당신의 영이 불어 넣어져 인간 내면의 모습이 영원하신 창조주와 닮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으며 우리가 내쉬고 들이마시는 들숨 날숨이 하느님의 숨결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일상은 의미없고 단조로우며 지루한 생활의 반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하찮은 육신 안에 하느님의 숨결이 부어졌다는 사실, 곧 하느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일상의 사소함에서 귀한 것, 평범함에서 비범함을, 일상적인 것에서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어떤 명예, 재물도 더 이상 우리의 이 하느님의 숨결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세상이 주는 명예, 재물, 쾌락과 갈채, 이러한 것에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숨결을 느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이 아닌 남을 연기할 필요도 없으며 자신이 아닌 그 무엇이 되고자 하는 노력을 중단해야 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 자신이 아니고 오로지 남의 생각에 내가 어떻게 투영되고 비춰지는 지의 허상에 사로 잡혀, 내가 아닌 남의 인생을 살았던 사람은 죽음에 임하여 회한(悔恨)과 환멸(幻滅)에 휩쌓일 것입니다. 그러나 일상에서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았던 사람, 평소 일상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끼며 생을 영위해왔던 사람에게는 죽음이 하느님께 돌아가는 순간임을 깨닫고 편안히 숨을 거둘수 있을 것입니다. 

고인이 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소개합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인생은 삶에서 죽음으로 나아가는 여정(旅程)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의 인생은 죽음에서 삶으로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2025. 11. 1. 위령성월 첫날 아침에 김원율 안드레아